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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앤셜리 ≪
이 책 제목을 참 잘 지었다.
날씨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모아놓았는데,
약간 알랭드보통이 지은 책을 보는 것 같은 느낌.
서양인의 관점에서 보는 날씨 이야기라, 약간 거리감 느껴지기도 하다.
동양인의 관점에서 보는 날씨 이야기 책도 따로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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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빗속에서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는 우선, 비를 "기분 좋게" 음미하기 위해서는 "산책, 방문, 사냥 혹은 여행 계획"이 없어야 한다고 단언하는데, 이런 계획들은 비로 인해 '방해받을' 우려가 있으므로 기분을 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런 상황을 즐기기 위해서는 "이 비는 한없이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하다. 사시사철 비 때문에 되는 일이 없다고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라고 투덜대는 것을 삼가야 하고, "비에 젖은 사람이 빠져들 수 있는 모든 비이성적 사유를 피해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비를 음미하려면 "정신은 여행을 하고 몸은 쉬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의 눈에 비친 이 기쁨들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따. "나는 예컨대 소나기가 내릴 때, 이끼가 내려앉은 오래된 담장 위로 물이 똑똑 떨어지는 것을 볼 때, 바람이, 비의 미세한 떨림과 뒤섞여 윙윙대는 소리를 들을 때 기쁨을 맛본다. 밤에 들리는 이 쓸쓸한 소리들은 나를 달콤하고 깊은 잠으로 빠져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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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 관한 연구>의 저자는 좀 더 나아가 본격적인 분석을 하기에 앞서 또 다른 세 가지 기쁨을 묘사한다. 첫 번째 기쁨은 몸과 관련된 것이다. "날씨가 궂을 때에는 비가 오는 광경을 보는 내게 비를 피할 보금자리가 있다는 것으로, 바람이 불 때에는 따뜻한 침대 속에 있다는 것으로 나 자신의 인간적 비루함이 가라앉음을 느낀다. 소극적인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두 번째 기쁨은 보다 각별히 영혼과 관련된다. 바람을 동반한 비는 "광대한 무한"의 인상을 준다. 먼 곳에서부터 당도한 이 비는 -작가가 그렇게 썼기에 이제야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이지만- 다시금, 멀리 떨어진 동방의 '타타르의 식물'까지도 기름지게 해줄 것이라는 기분 좋은 생각을 하게 한다. 요컨대 비는 영혼의 여행을 가능케 하며, 베르나르댕 드 생피에르가 썼듯이 몸은 비록 "휴식을 사랑하여 더욱 고요하고 더욱 안전할"지라도, "이 지성의 여행은 내 영혼을 그 본성대로 확장시킨다".
11-13p
작가인 주베르는 1779~1783년에 기록한 그의 <수첩Carnet>에서, 화가인 발랑시엔은 학생들을 위한 교재에서 제각기 시선의 즐거움에 천착하고 있다. 비는 자연의 여러 구성 요소들을 채색한다. 비는 그 요소들에 예기치 않은 아름다움을 부여하고 사람은 그 아름다움을 만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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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 나무, 바위에 밴 습기가 자아내는 이런 갈색조는 모든 사물의 인상에 덧입혀진다. ... 외투를 입고 모자를 눌러쓴 채 인적없는 오솔길을 천천히 걸어가는 나그네는 주변의 모든 것에서 강한 인상을 받게 되는데, 그 모든 것은 그의 시야와 상상력 속에서 확대된다. 시냇물은 불어 있고 풀은 더 무성하며 바위의 윤곽은 더 뚜렷해진다. 하늘은 지상에 더 가깝게 낮아지고 모든 사물은 더 좁아진 지평 안에 갇혀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더 커지는 것이다.'
발랑시엔의 글에 따르면 비는 자연의 사물에 광채를 부여한다. 그러나 이 광채가 즉각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을 포착하고 한껏 누리기 위해서는 조금 기다려야 한다. 나무들이 스스로 껍질과 가지를 말리고, 습기로 인해 거무스름하게 진해진 색을 떨쳐낼 시간을 줘야한다. 한 시간 후가 "바로 그 순간"이다. 이것이 발랑시엔의 견해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그리하여 늦추어진 비의 효과 덕분에 "조금 전엔 고개를 숙이고 시들어 있던 나뭇잎들이 줄기 위에서 다시 몸을 일으켜 생생하게 빛나는 초록을 치장을 한다. (...) 이끼와 잔디는 에메랄드빛으로 뒤덮인다." 비가 그친 후 다시금 힘차게 지저귀는 새소리를 듣는 것은 중세부터 익히 강조되어온 기쁨이다.
14-15p
1790년 7월 14일, 바스티유 함락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파리에서 열린 혁명과 시민 연맹 축제는 혁명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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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에 리츠는 한눈에 보기에도 열악한 이런 기상 상태에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섬세하게 분석했다. 물론 혁명의 지지자인지 반대자인지에 따라 그 반응은 완전히 달랐다.
이날 온종일 반혁명과 귀족들은 비를 즐겼다. '대홍수','폭풍우'로 불린 이 비는 행복을 위협했다. 진실과 풍요의 상징인, 특히 영광의 상징인 햇빛이 사라졌다는 것은 그들에게 중요한 의미였다. 나쁜 날씨는 하늘이 혁명파에 반대한다는 신호였다. 말하자면 신은 반혁명파들의 편에 있다는 것이었다.
리바롤은 "비에 젖은 의원들의 딱한 처지"를 비웃었다. 반혁명파 언론들은 무질서와 혼란, 떠밀리는 인파, 회랑 아래로 몸을 피하는 구경꾼들,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어 '윤곽'이 다 드러나게 된 여인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묘사하는 것을 즐겼다.
처음엔 그저 좀 실망했을 뿐인 시민군과 의원, 민중은, 혁명파 언론의 말을 빌자면, 비 오는 하늘에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될 수 있는 한, 한눈에 보기에도 열악한 날씨에 대해 침묵하려고 해보았다. 그러나 곧 집단적인 행동이 해석을 뒤집는다. 앞으로 있을 19세기 비의 정치사에 영향을 미칠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소나기가 쏟아지는 가운데 병사들과 시민들이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대부분 무장을 한 오륙만 명의 사람들이 보여준 이러한 행동은, 비는 해를 끼칠 수 없고, 악천후라 해서 혁명에 대한 열정을 억누를 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왕은 비를 맞으며 제단으로 올라가는 것을 거부했던 반면, 춤은 민중의 인내심을 보여주었다. 이 춤으로부터, 19세기 악천후의 정치사에 있어 중요한 데이터가 만들어졌다. 공유된 경험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함께 비를 젖는다는 사실은, 결속을 확인하는 것이다. 고위 관리들도, 병사들도, 구경꾼이었던 민중도, 모두 젖은 채 비를 조롱했다. 비는 감성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 더구나 이 단합의 날 오후 늦게 모습을 드러낸 햇빛은, 축제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30-31p
세간에 '시민왕' 으로 여겨졌던 루이 필리프 1세에게는 '프랑스의 왕' 이 아닌 '프랑스 국민의 왕' 이란 이름이 붙여진다. ... 1831년 6월 12일, 왕이 메츠의 경시청 마당을 떠나려 하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망토를 달라고 했다. 그러나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국민병이 도열한 가운데 루이 필리프는 열병하기로 결정했다. 잠시 후에 빗줄기는 더욱 거세졌다. 왕은 파리에 있는 왕비 마리 아멜리에게 이 같은 편지를 썼다.
'조마사가 그 자리에서 망토를 가져다주었소. 그러나 그곳엔 인파가 엄청나서 나는 그것을 다시 가져가라고 말했소.
병사들은 망토를 입지 않았기에 나 역시 입고 싶지 않아 그것을 다시 가져가라고 손짓했고, 총명한 국민들이 내 생각을 번개같이 알아채고는 "브라보!", "국왕 만세!"를 외치는 소리가 울려퍼졌소. 이 일화는 순방 여정 내내 각지로 퍼져 나가게 되었소.'
31-32p
자연보호에 대한 꿈이 확대되어 강박적으로 따라다니던 1970년대는 소나기의 기쁨을 재발견했다. 1973년의 어떤 글에서는, "소나기가 지나갈 때 얼굴, 목, 팔에 미지근한 비를 맞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빗물은 대기의 오염층을 지나지 않기 떄문에 (거의) 깨끗합니다. 빗물은 피부를 부드럽게 하고 긴장을 풀어주는 놀라운 효과를 발휘합니다. 진정한 미용 샤워를 무료로 즐기세요." 라고 했다.
88-89p
눈을 맛보다, 보다, 만지다
우리의 감각에 많은 몫을 부여해보자. 눈은 어쩌면 감각의 도움 없이는 가장 정의하기 어려운 기상 요소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발로 눈을 건드려보고, 그 냄새를 맡고, 바라보고, 그 안에서 뒹굴어보고, 그 고요에 귀 기울여보는 것은, 사실 눈의 정체를 이해하는 것" 이다.
126p
안개에 관한 말들
매몰의 장소로 보이는 연무는 많은 작가에게 영감을 주었다. 뜨거운 땅에서 짙은 안개가 올라올 때, 모파상의 단편소설 <물 위에서>의 화자는 모든 것에서 단절된 채 "조금씩 물 위헤 낮게 깔리며 매우 짙고 하얀 안개로 뒤덮이는" 강물을 바라본다. 그는 계속 바라본다. "강물도, 내 발도, 배도 더 이상 보이지 않고, 갈대밭의 윗부분만 보였다. 더 멀리로는, 달빛에 몹시 창백해진 들판이 보였다. ... 나는 독특한 흰색 면보 속에 허리까지 매몰된 것처럼 보였다."
176p
안개, 창의력의 근원
우리에게는, 안개를 통해 열린 창작의 공간과 그것이 상상력에 미친 작용이 그 미학적 기능보다 더욱 소중하다.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는 "안개에 싸인 풍경은 더욱 광활해 보이고 상상력을 북돋우며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베일에 가려진 소녀와 흡사하다" 라고 썼다.
188p
대망의 뇌우
터너 예찬자이자 과학과 예술을 결합시킨 또 한 명의 위대한 인물 존 러스킨, 그의 조금 뒤늦은 경험은 이러하다. 그는 여기서, 브레방의 샘에서 산사태를 일으킨 진짜 뇌우를 대면했을 때 느꼈던 자신의 격한 감정을 회상한다.
'웅장하게 이어진 피라미드 같은 산봉우리들이 하나씩 하나씩 차례로 하얗게 덮인 눈을 벗으며 영광을 되찾았다. 그것은 불의 영광이었다. 어떤 그림자도 어둠도 없었다. 얼음 봉우리, 눈 덮인 산, 바윗덩어리, 바위를 뚫고 들어오는, 구름 속에서처럼 빙하의 프리즘을 꿰뚫는 석양빛 속에서 모든 것은 불덩이였다. 좀 더 아래쪽에서는 뇌우가 몸을 떨며 묵직하게 으르렁댔고 숲은 저녁 바람에 술렁이며 물결쳤으며 골짜기에서는 불어난 강물이 섬광을 발하며 찰랑거렸다.
232p
일기예보와 열광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쉬지 않고 날씨를 지배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은 결국 알랭 지요 페트레에 따르면, 은연중에 현재 진행되는 것을 제어하며 늦추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는 한 학회에서 "일기예보는 우리를 안심시킨다. 그것은 미래가 있는, 생명을 보장해주는 담보이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259p
계절예찬
우리는 하늘이 부과하는 해, 바람, 눈, 안개, 비 등을 견뎌내야 하지만, 또한 그 의미를 바꾸고, 그것들을 상상하고 동경하며 미화할 줄 안다. 저마다 각자의 대기 현상이 있는 것이다. 방과 후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간식 마들렌의 맛과 같이 계절들은, 그것을 회상하는 동시에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함꼐 매우 선명한 친근함을 드러낸다. 그리고 동시에, "이젠 계절이 없어졌다" 고 하는 표현은, 현재의 시간과는 결코 같아질 수 없는데다 항상 모순되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된 표현을오 이해될 수는 없다. 콜레트는 "그 시절에는 혹한과 폭서가 있었다. (...) 어떤 겨울도 이젠 순수한 백색이 아니다" 라고 썼다. 그 집단적 상상력을 채워주는 시적인 연상들에도 불구하고, 그 기반과 정의조차 흔들리는 계절들은 장치 위협받을 위험에 처해있다. 하지만 조용히 흘러가는 나날 속에서, 계절들은 우리에게 단조의 나지막한 소리로 인생의 축소판처럼 작은 교훈을 언제나 들려줄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어야 할 것이다. 계절들은 흐르는 세월과 모든 사물, 그리고 우리 자신의 노화를 말해주는 동시에, 때로는 안심되고 때로는 걱정스러운 모습이지만, 언제나 다시 돌아와 우리에게 '반복'이라는 역설적인 선물을 선사하는 것이다.
28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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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의 맛 : 비, 햇빛, 바람, 눈, 안개, 뇌우를 느끼는 감수성의 역사
알랭 코르뱅 등저/길혜연 역 | 책세상 | 201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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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ber: 420/4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