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쓴이 :
앤셜리 ≪
성경에 나오는 인자라는 표현에 대해서 그동안 아무 의미없이 읽었었는데~ 큰 의미가 있는 단어였다.
----------------------------------------------- memo
죄의 본질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옳지 않은 태도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의 개념에는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자기 의지에 의하여 그리고 자기 힘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에게서 생명을 받은 존재입니다.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생명의 영위를 위해 창조주 하나님에게 의존하는 태도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올바른 태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께 의존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특권은 항상 의무를 수반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내세우며 "하나님께 의존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성도들은 그분께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설교를 우리는 흔히 듣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의존과 순종은 이보다 훨씬 더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의존은 그분에 대한 순종으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의존은 곧 그분에 대한 순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4p
인간은 짧은 시간에 제한된 존재이기에 늙고 병들고 죽는 고난을 겪게 되고, 지혜가 제한되었기에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부란과 근심에 사로잡힙니다. 힘이 제한되었기에 좌절과 실패와 결핍을 맛보며, 사랑이 제한되었기에 다른 사람들과의 갈등 속에서 고통을 당합니다. 이 고난들은 분명히 죽음의 증상들입니다. 이 모두는 인간이 자기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께 대항하여 자기 주장을 함으로써 그와의 관계가 끊어지고, 그로부터 분리되어 시작된 죽음의 '병균'이 역사하며 인간들에게 일으키는 증상들입니다. 자기 주장을 하려는 의지로 자기 생명의 창조주인 하나님에게서 분리된 인간은 생명의 근원인 땅에서 분리된 뿌리뽑힌 풀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그 풀은 그 속에 들어 있는 제한된 수분과 영양분이 있을 때까지만 잠시 살다가 곧 말라 비틀어져 죽고 맙니다. 그의 생명의 근원인 땅에서 더 이상 수분과 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풀이 땅에서 뽑히는 순간 그 풀의 죽음은 사실상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잎사귀가 마르고 꽃이 떨어지고 시들어 가는 현상을 가리켜 그 풀 속에서 역사하는 죽음의 증상들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그의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올바른 관계를 단절하고 스스로를 스스로에게 닫아 버렸더라도 그는 자신 속에있는 제한된 자원에 의해 얼마 동안은 계속 존재합니다. 그러나 자원의 제한성 때문에 존재는 고난으로 얼룩지고, 자원이 고갈되어 감에 따라 말라 비틀어지는 풀 한 포기처럼 되어 무덤에 묻히고 맙니다. 17-19p
스스로 '하나님같이' 될 수 있다는 사탄의 꾐에 빠져 하나님에 대해 '자기 주장'을 하고 그분으로부터 소외되어 사탄의 종으로 자기의 제한된 자원에 갇히게 된 인간은 자신의 자원의 빈곤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서는 자신의 자원을 늘릴 수 있는 한 가지 길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것은 곧 다른 사람의 자원을 빼앗는 길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굴종시켜 그들의 자원으로 자신을 섬기도록 하여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려는 것입니다. 21p
죄에는 두 가지 죄가 있습니다. 원죄와 실행 죄입니다. 지금까지 다룬 것은 원죄입니다. 자기를 하나님으로부터 닫아버리는 것이 원죄라면, 원죄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서의 죄를 실행 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행 죄에는 생각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죄(예를 들면 증오, 시기), 말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죄(남을 욕하고 남에게 상처 주는 언어), 행동으로 나타나는 죄(폭력)가 있습니다. 생각에서 말로 그리고 행동으로 죄가 발달할수록 파괴력이 큽니다. 23-24p
이제 인간은 자기를 스스로 닫아버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무한한 자원에서 분리되어서 자기의 제한된 자원에 갇혀 모든 악과 고난의 상태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이란 인간이 이러한 악과 고난의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24p
우리가 불안해하거나 증오 속에서 마음에 평안이 없다든가 다른 사람과 상처를 주고받는 고난 속에 있다든가 하는 사실은 죽음의 그림자가 이미 우리에게 드리워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과 분리된 사람은 사실상 이미 죽은 것입니다. 만일 인간이 스스로의 자원으로 생명과 행복을 추구하고 영위할 수 있다면 구원받아야 할 아무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악과 고난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이유 곧 구원받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제한된 자원 때문에 얼어나는 악과 고난을 우리의 그 제한된 자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입니다. 26p
우리가 가진 자원이 제한되어 있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악과 고난의 문제를 그 제한된 인간의 자원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논리적 모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구원은 인간의 내재된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 밖에 있고 우주 밖에 있는 하나님으로부터만 올 수 있습니다. 우리 밖에서, 우리를 위해서 구원의 힘이 와야 합니다. 우리 밖의 무한한 힘을 가진 초월자로부터 우리를 위해 오는 것이어야만, 즉 오직 은혜로 올 때 우리 인간에게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복음'은 바로 이러한 제한된 자원 속에서 죽어 가는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 밖에서 우리를 위하여 오셔서 구원을 이루셨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28-29p
예수의 가르침이 한마디로 잘 요약된 곳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마가복음 10장 45절입니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 이 말씀은 구약의 두 예언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7장 13절 이하와 이사야 53장입니다. "인자(人子)"라고 번역된 것은 다니엘서를 반영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물로 주러 왔다"고 기록된 것은 이사야서를 반영한 것입니다. 우리말로 인자라고 한 번역은 상당히 애매합니다. 정확히 하려면 "그 '사람의 아들'"이라고 표현해야 합니다. ... 먼저 '인자'라는 칭호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인자' 라는 칭호는 에수님의 인성을 강조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란 칭호는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한다는 일반적인 견해가 있는데, 사실 이 견해는 잘못된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고대 교회로부터 그렇게 가르쳐 오기는 했지만, 그 고대 교회가 주로 희랍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인자' 라는 예수님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던 것입니다. 즉 희랍 사람들이 히브리어의 숙어가 무슨 말인지를 제대로 모르는 바람에 고대 교회부터 잘못 가르쳤던 것입니다. '인자' 라는 칭호에 대한 두 번째 오해는 이 칭호가 유대문서, 특히 묵시문학에 유행하던 메시아에 대한 칭호 가운데 하나였다는 주장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스스로를 이렇게 '인자'라고 불렀을 때 자기가 곧 메시아라는 것을 밝힌 것이었다고 주장하는 책들을 펴내기도 하는데,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이 말은 도대체 칭호로 쓰인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유대 문서에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더러 나오기는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처음으로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에 '그'라는 관사를 붙인 표현, 즉 "그 '사람의 아들'"을 하나의 칭호로 만들었습니다. 따라서 이상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이 칭호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푸는 열쇠는 '그'라는 지시 관사에 있습니다. 유대 문서에 '사람의 아들'이란 말은 많이 나옵니다. 이 말은 단순히 '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셈족 언어의 숙어입니다. 칭호가 아니었습니다. 이 표현에다 예수님이 '그' 라는 관사를 붙임으로써 자기가 어느 특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음을 나타냈고, 그리하여 '그' 라는 관사와 더불어 "사람의 아들"은 하나의 칭호가 되었습니다. 다니엘 7장 13절에 '사람의 아들'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말은 시편8편에도 나오고 에스겔서에도 여러 번 나옵니다. 다니엘이 환상 가운데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 앞에 구름을 타고 오는 한 분을 보는데, 그분이 '사람의 아들'같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람의 아들'이라는 말은 칭호가 아닙니다. 어떤 한 분 이 나타났는데, 그분이 사람같이 생겼다는 의미의 표현입니다. 그분이 구름을 타고 왔다는 점에서 신적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름은 오직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에만 동반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나타나도 구름을 타고 나타났다는 말은 없습니다. 구름이 나타나는 현상은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현상입니다. 따라서 다니엘서 문맥을 보면, 구름을 타고 오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신적 존재' 임을 알 수 있으며 그 신적 존재가 '사람 같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그 '사람의 아들'"이라 하셨을 때, 그리고 종말에 구름을 타고 천사를 동반하고 와서 이 세상을 심판하는 이로 나타난다고 하셨을 때, 분명히 다니엘 7장 13절을 두고 하신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런 신적 존재라는 말씀입니다. 다니엘 7장 3절에서 다니엘이 환상 가운데 본 사람과 같이 새긴 신적 존재가 7장 18절 이하에 해석되어 있는데, 그분이 종말 때에 하나님의 진정한 백성의 대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자기를 "그 '사람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자기가 바로 다니엘의 환상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아들들을 창조하고 대표하는 분이시믈 미리 나타내신 것입니다. 33-37p
이상의 내용을 알기 쉽게 간단히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 자신과 자신의 과업에 대한 이해는 마가복음 10장 45절에 가장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아들'"응ㄴ 섬김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섬기기 위해, 그리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속물로 바치려고 왔습니다. 여기서 "그 '사람의 아들'"이란 구약의 다니엘 7장 13절에 나오는 "한 사람의 아들 같은" 존재를 가리키는것으로서 예수님이 자기를 "그 '사람의 아들'" 이라고 부르셨을 때, 그 분은 사실 자기가 다니엘 7장 13절에 나오는 바로 "그 '사람의 아들'"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40p
과거에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파괴한 죄에 대한 대가를 예수님이 내 대신 치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내가 진짜 죄에 대한 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내게 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 5: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에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믿음으로 우리는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72p
바로 여기에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문제가 있습니다. 믿음에 윤리를 내포하지 않은 이것이 한국 교회의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믿음은 있다고 하나 윤리가 없습니다. 윤리를 내포하지 않은 믿음은 구조상 헛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믿음으로 의인이 되고 하나님께 의존하고 순종하는 올바른 관계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능력과 자원으로 살게 되었다는 실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하나님에 대한 순종 없이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하나님께 의존한다고 주자하면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하나님께 대한 의존입니까? 단지 자기 꾀에 대한 의존일 뿐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상상해 낸 것을 자기가 믿기 때문에 결국 자기를 믿는 것입니다. 전지하시고 사랑이 완전하신 하나님은이 길로 가는 것이 생명의 길이라고 하는데, 나는 자꾸 저 길로 가야 내게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에게 축복해달라고 하나님께 새벽 기도도 드리고 철야 기도도 열심히 합니다. '하나님도 내가 이용할 수 있다. 내가 열심히 기도하면 하나님도 꼼짝 못하게 할 수 있다.'는 식의 생각, 바로 이것이 내 꾀의 절정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교만이요 하나님과 가장 크게 분리된 상태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의존은 순종으로 표현됩니다. 앞에서도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의 상태입니다. 그런데 순종 없는 믿음, 새로운 하나님의 시민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런 윤리가 없는 믿음은 곧 거짓 의존이며 거짓 믿음입니다. 바로 미신입니다. 결국 순종이 없는 믿음, 윤리가 포함되지 않은 믿음, 이것이 곧 미신입니다. 한국에 그리스도인이 천 만명이나 있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데, 그리스도인이 천만 명인 한국이 왜 이 모양입니까? 암담하기가 날이 갈수록 더합니다. 천만명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는 사업하는 사람, 정치하는 사람, 학자, 의사, 변호사 등 별별 사람들이 다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진정 자기 사업장에서, 정치 분야에서, 자기의 학문하는 데서 구원의 첫 열매를 받은 하나님의 시민으로 살면서 순종으로 표현되는 믿음을 지녔으면 이 나라가 이처럼 암담하겠습니까? ... 교회를 자꾸만 가르는 정치꾼 목사들, 돈 뜯기가 전공인 모리배 부흥사들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이런 자들의 가르침을 받는 평신도들의 신앙과 삶이 건전하겠습니까? 강요된 헌금으로 교회는 날로 부유해지나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은 날로 더 외면되는 현실로 인해 멍들어 있는 사회가 한국입니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은 한국의 많은 교회들의 성경에서 삭제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92-95p
바울이 사도직을 김당하기 위해 그 얼마나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까? 돌로 침을 받고 매맞음을 당하고 파선이 되는 고난, 헐벗고 굶주리는 고난, 감옥에 갇히는 고난 등 말입니다. 이 고난을 사도 바울은 겉사람이 후패해져 가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이 겉사람은 이 세상에 속하는 옛 아담적인 죄인을 말합니다. 이 죄인이 실제로 썩어져 가고 닳아 버립니다. 이 세상의 고난을 통하여 닳아 버립니다. 무엇을 마구 문지르면 닳듯이 닳습니다. 곧 십자가에서 일어난 믿음을 통해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그 구원 사건이 실재가 되는 과정입니다. 옛사람이 점점 그리스도인의 고난을 통해 닳아져 갑니다. 그러면 반대로 속사람이 날로 새로워집니다. "겉사람은 후팬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후 4:16).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여 생겨 난새로운삶이 날로 새로워집니다. 102p
--------------------------------------- 목차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이유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가 예수의 살모가 죽음과 부활은 구원의 사건이다 예수의 구속적 죽음에 대한 해석의 성경적 범주들 하나님의 구원의 주관적 적용 구원의 종말론적 구조 예정과 지키심
---------------------------------------- 구원이란 무엇인가 김세윤 저 | 두란노아카데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