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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셜리 ≪
스팸메일은 우리의 신뢰감을 갉아먹는다. 나는 친구들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 첫 몇 문장을 읽으면서 이것이 정말로 내 친구들이 쓴 것인지를 판단하기 위해 소량의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는 것이 싫다. 우리는 잔뜩 경계 태세를 갖춘 채 21세기의 디지털화된 삶을 살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점점 많은 의사소통은 일종의 튜링 테스트이자 의심의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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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스퍼드 대학교의 철학자 존 루카스는 만약 기계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우리가 막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계가 그만큼 지능적이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가 또는 적어도 많은 인간들이 너무나 무뚝뚝하기 때문일 것" 이라고 말했다.
요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튜링 테스트는 기술의 진보를 측정하는 척도이기에 앞서, 그리고 그것이 제기하는 철학적, 생물학적, 도덕적 물음들에 앞서, 근본적으로 소통 행위에 관한 검사이다. 그렇기 떄문에 튜링 테스트가 제기하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은 매우 실제적인 것이어야 한다. 우리는 언어와 시간의 제약 소에서 어떻게 하면 최대한 의미 있게 서로 관계를 맺는가? 공감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누군가가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와 우리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되는 것은 어떤 과정을 통해서인가? 이것들이 튜링 테스트의 가장 핵심적인 물음, 다시 말해 인간다움의 가장 핵심적인 물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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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들의 세계에서 우리는 비밀번호, 개인식별번호PIN,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가장 친한 친구의 이름 같은 내용을 근거로 신분을 확인한다. 그러나 인간들의 세계에서 우리는 얼굴, 목소리의 음색, 필체, 서명 같은 형태로 근거로 신분을 확인한다.
이때 말투는 특히 중요하다. 최근에 나는 친구로부터 다음과 같은 이메일을 받았다. "이메일로 다른 도시의 한 장소를 빌리려는 중이야. 나와 메일을 주고 받은 녀석이 나를 사기꾼이나 괴짜로 여길까 봐 이메일을 쓰면서 내가 '인간적'이고 '실제' 사람으로 느껴지도록, 특히 '비익명적'으로 느껴지도록 초긴장을 하며 최선을 다했지. 정말 섬뜩한 일이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 나는 메일만으로 그가 내 친구임을 알 것 같다. 시대착오적인 '녀석fellow' 이란 표현이나 '초긴장hyperaware' 또는 '비익명적nonanoymous' 같은 단어를 하이픈 없이 독특하게 붙여 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기 떄문이다.
그러나 인터넷의 시대를 맞이해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점점 더 우리 자신으로부터 분리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곧 온라인 보안을 위협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남극의 펭귄들은 15만 마리의 펭귄 떼 가운데서 자신의 새끼가 부르는 소리를 정확하게 분별한다고 한다. 우리가 저마다 지닌 독특한 말투를 다림질하듯 없애버린다면, 문학을 위해 좋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위해서도 결코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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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함의 형태와 내용
나의 오래된 대학 친구인 에밀리는 공항을 빠져나와 집으로 가던 중에 시내에서 친구와 점심을 먹게 되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는 그 친구의 동료이자 내 여자 친구이기도 한 사라도 함께 있었다. 그날 저녁에 나는 에밀리와 함꼐 저녁을 먹게 되었는데, 내가 두 사람을 서로 소개시켜주기도 전에 에밀리와 사라가 이미 서로 만났다는 사살이 너무 재미있다고 말했다. 내 기억으로는 "너희 둘이 서로를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정말 놀랍군." 이라는 식으로 말했던 것 같다. 그러자 에밀리는 이렇게 대답했다. "글쎄, 내가 사라를 알게 되었따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 같은데, 그것보다는 '사라가 어떤 사람인지 보았다' 또는 '사라의 행동을 보았다' 고 말하는 것이 사실에 더 가깝지 않을까?"
나는 에밀리의 이런 정확한 구별에 눈이 번쩍 뜨였다.
어떤 살마에 대해, 그 사람의 기질이나 성격, 또는 살아가는 방식에 대해 감sense을 잡는 것과 그 사람에 관해서 아는 것은 엄연히 다른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이 어디에서 자랐고 형제자매가 몇 명이나 되며, 전공이 무엇이었고, 직장이 어딘지 등에 대해 아는 것은 별개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안전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친밀함에서도 우리는 형태와 내용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44-45p
불쾌한 고객 서비스 사례
전화할 때마다 또는 재연결될 때마다 나는 다른 상담원과 대화해야 했으며, 상담원들은 한결같이 나의 환불 요청에 대해 퉁명스럽게 반응했다. 어쩌다 겨우 나를 이해해줄 만한 상담원과 연결되어 일종의 관계를 쌓으면서 내가 점점 더 '비익명적인' 존재가 되는가 싶기도 했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상담원과 연결되면 다시 익명의 존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래서 또다시 이름, 계좌번호,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주소 등을 말하고 내가 왜 전화했는지를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했다.
튜링 테스트에 참여하는 봇들의 제작방식을 알아보면, 울가 다른 사람들과 접촉할 때도 인간적이지 못한 경우가 너무나도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아가 왜 우리가 그렇게 되어쓰며 또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점차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 상호작용의 조각들을 무작정 끌어모은다고 해서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일회성 데이트나 스피드 데이트를 50번 한다고 해서, 또는 사무적인 통화를 50번 돌아가며 한다고 해서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오크 나뭇가지들을 서로 갖다 붙인다고 해서 오크 나무가 자라는 것이 아닌 것처럼 파편화된 인간성은 인간성이 아니다.
63-64p
비익명과 익명
잡탕 대화와 진정한 대화의 차이가 연속성의 유무에 있다면, 적어도 이 경우에 해결책은 매우 간단하다. 한 가지 일에 대해 한 상담원을 배정하면 된다. 즉 똑같은 사람이 한가지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보도록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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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끊지 않은 채 15분 정도 지나자 플라스틱 덮개를 누르고 있던 손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만약 덮개를 누르고 있는 내 손가락이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또는 그녀가 제어장치의 버튼을 잘못 건드리거나 통신서비스 업자의 네트워크에 어떤 돌발 사고라도 일어난다면, 나는 다시 익명적인 존재로 돌아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불특정한 고객으로, 아무 특징도 없는 개인으로, 그저 하나의 번호로 다시 돌아갈 것이며, 같은 여성 상담원과 다시 연결되는 일은 좀처럼 없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다시 전화를 절어서 내 문제를 다시 설명해야 할 것이며 계약상 내가 불리하다는 얘기를 다시 들어야 할 것이고 사정을 봐달라는 부탁을 다시 해야 할 것이다.
64-6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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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ber: 447/4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