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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앤셜리 ≪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걸려있지만,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옛날 우리 그림들에 대해 그려진 배경과 느낌을 자세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전문용어가 간간이 섞여 있어, 지루한 부분도 좀 있었지만,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동양화 한 점 한 점에 대해 음미해볼 수 있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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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책을 펴내며
꼭두새벽 작은 소반 위에 정화수 한 사발을 정갈하게 길어 놓고 아무도 모르게 소망을 빌었던 옛 아낙의 손길은 언제나 천지신명과 일월성신을 향하고 잇었다. 그렇듯 곱고 깨끗한 마음결이 우리 옛 그림은 물론 음악과 무용, 옛 건축과 도자기 그리고 때묻은 목가구며 선인들이 짜낸 낡은 멍석자리 위에도 아직껏 고스란히 스며 있다.
11p
옛그림의 표구
족자는 세로로 길어서 깊고 그윽한 풍경을 담아내기에 알맞다. 가로로 긴 서양화와는 달리 사람의 몸 모양처럼 세로로 긴 형태를 가진 족자를 보면서 나는 뜬금없이 우리 선인들이 자연 속 세상 만물을 사람 대하듯 깊이 있게 바라보셨구나 하는 생각에 젖는다. 세로쓰기라는 글쓰기 방식도 마찬가지다. 나는 가로로 읽을 때보다 세로쓰기를 읽을 때 글 내용 한 줄 한 줄에 더 깊이 몰두하는 자기 자신을 느낀다. 우리 눈은 가로로 긴 까닭에 액자가 한눈에 현상을 파악하는 열린 풍경이 되지만, 족자는 거꾸로 위아래를 오르내리면서 자연과 대화를 나누는 깊은 상념을 가능케 하는 고급 형식을 이룬다.
두루마리는 가로가 길다. 아주 긴 경우에는 10m에서 심지어 50m에 이르는 것도 잇는데, 오랜 시간을 들여야 가까스로 둘러볼 수 잇는 광대한 천지 수백 리의 풍경을 간단히 한 화폭에 담는다. 옛 사람들이 자연을 바라본 드넓은 시야가 그 안에 담겨 있거니와, 두루마리를 펴고 접응ㄹ 때무녀, 감상 행위에 시간이 끼어들어 실제의 유람과 흡사한 시공간의 동시 체험을 가능케 해준다. 더욱이 두루마리는 내 마음대로 앞뒤로 움직이며 넓게도 좁게도 펴서 볼 수 있다. 이때 그림의 시공간은 바로 나만의 내밀한 경험으로 바뀌는 것이다.
56p
김홍도의 <마생청앵도>에 담긴 해맑은 동심
"어린이는 모두 화가다. 화가란 커서도 바로 그 이런이의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 20세기 회화의 거장 피카소의 말이다. 죽기 전에 그는 또 말했다. "만약 불교에서 말하는 환생이라는 것이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면, 나는 내 친구 장다첸(1899~1983)과 같은 중국화가가 되고 싶다. 그래서 길고 부드러운 양모필을 손에 쥐고서 소매를 썩 걷어올려 일필휘지 마음 가는 대로 편안한 그림을 그리고 싶다." 그리고 "그림을 다 그린 다음에는 다시 한 번 그 붓을 들어 화폭 한 구석에 정감 어린 시를 유려하게 적고 싶다"고 말이다. 현대 서양미술의 최고봉이라는 피카소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그림과 글씨와 문학의 잉ㄹ치, 그것은 우리 옛 풍류 화가들의 일상적인 삶의 방식이었다.
87-88p
정약용의 <매화쌍조도>
이 글은 정조께서 하사하신 김홍도의 부채 그림을 묘사한 것이다. 당대 최고의 화가 단원 김홍도가 그린, 석 자나 되는 큰 부채를 선물로 받았던 사실에서 정조가 얼마나 선생을 아꼈던가를 알 수 있고, 따라서 그가 이 소중한 하사품의 형상을 잘 기록해두려 한 착실한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러나 필자가 재미있게 생각하는 것은 정약용의 그림을 보는 눈이다. 위 글은 마치 생물학자가 새로운 표본 대상을 발견해서 보고하느 ㄴ글인 양, 기술의 정확함에 흠잡을 데가 없다. 그러나 동시에 참으로 놀랄 만큼 딱딱한 문체를 구사함으로써 에술 작품이 가지는 특유의 멋스러움은 완전히 증발시켰다. 다산 선생처럼 <매화쌍조도>를 묘사한다면 나도, "매화꽃은 모두 36송이로, 활짝 핀 꽃이 6송이, 부풀어올라 막 벙그는 것이 4송이, 크고 작게 봉오리진 것이 26송이" 라고 써야 할 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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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다산 정약용 선생은 부친이 일찌감치 간파하신 대로 과학적인 두뇌 쪽이 훨씬 특출했던 모양이다. 물론 서민들의 삶의 아픔을 예리하게 그려내는 훌륭한 시인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그림의 멋과 풍류를 맛보고 즐기는 화가로서의 적성은 다소 모자랐던 것이 아닌가? 하지만 누구나 존경해 마지 않느 ㄴ다산 정약용 선생 같은 대학자에게 이렇게 어눌한 면이 있다는 사실은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에게 작은 위안이 되기도 한다. 소중한 것은 멋들어진 솜씨보다 착한 마음 씀씀이가 아닐까?
172-173p
민영익이 <노근묵란도>를 그린 까닭
난은 예부터 고고한 인격자를 뜻했다. 특히 왕조시대에는 임금을 향한 충신의 일편담심을 상징하는 꽃이었다. 일찍이 <예기>에 "5월 여름에 난초를 모아 우려낸 향기로운 물로 몸을 씻어 깨끗이 한다."고 하였다. 또 <주역> 계사전에는 "마음을 함께하는 착한 사람의 말은 그 향내가 마치 난초와 같다"는 글이 있으니, "그런 까닭에 착한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갖가지 난초가 놓인 방에 들어가는 것과 같아서 오래 있으면 저절로 그 향내가 몸에 베게 된다."는 말이 나왔다. 이로부터 훌륭한 벗끼리의 사귐을 일러 지란지교라 불러왔다. 난꽃은 이른 봄에 피지만 추운 겨울에도 그 고결한 모습은 한결같다.
179-180p
조선과 이조
사대란 어디까지나 사소事小, 즉 큰 나라의 작은 나라에 대한 도덕성과 예의를 바탕으로 한 관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병자호란 이후 조선 조정은 이미 멸망한 명나라에는 사대를 표방하였으나, 현존하는 강대국 청나라에 대해서는 그 연호를 쓰지 않았다. 저들에게는 사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굳게 지녔던 것이다. 또 <노자>를 보면 "큰 나라가 작은 나라에 낮추면 작은 나라의 신뢰를 얻게 되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낮추면 큰 나라의 신임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대국은 자기를 낮추어 신뢰를 얻고, 소국은 자기를 낮추어 신임을 얻는다." 고 하였다. 똑같이 자신을 낮추는 상호주의가 적용되는 것이다.
동아시아의 사대주의는 힘에 의한 주종 관계가 아니라 평화적 외교 관계였다. 또 사대주의는 반드시 사소주의와 작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오랜 역사에서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예의 정신에 근본을 둔 관행이었다. 사대주의의 참된 의미를 생각하면, 그것은 소국이 대국과 현실적 관계를 가질 때 자기의 독립성과 이익을 유지하려고 취했던 대응 방식이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먼저 대국의 도덕성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며, 저들이 강압을 가하면 과감히 창검을 들고 저항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대주의를 표방했던 조선은 일찍이 명나라의 요동지역을 수복하려고 정벌을 꾀했던 일조차 있었다. 일본은 사소를 가리고 사대만을 부각시키고, 자율성 대신 타율성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여 식민지 백성의 자기 비하 감정을 더더욱 조장하였던 것이다.
사대주의의 참뜻을 아무리 강조해도 조선의 주체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모름지기 우리의 현실을 돌이켜보아야 한다. 남의 옷을 입고, 남의 음악을 듣고, 남의 술을 마시며 남의 춤을 추면서, 심지어 영어를 국어로 쓰자고 하는 우리가 주체적인가?" 내 땅 항복판에 외국 군대를 들여놓고, 저들이 우리 땅을 더럽혀도 말 한 마디 못하면서, 저들이 내 백성을 다치게 해도 따지지 못하는 우리가 더 독립적인가? 핵을 가지면 어린애 칼 쥔 격이라 걱정되니 제 스스로 재발 않겠다 맹세하고, 미사일 연구는 발사 거리를 남의 허락을 맡고 그만큼만 진행한다. 심지어 전력, 통신 등 기간산업까지 외국이 살 수 없으면 선진국이 아니라 하니, 이 모든 상황을 옛날과 비교해서 누가 조선을 사대주의 국가라 말하는가? 나는 두렵다! 조선을 '이조' 라고 부르는 후손의 나라가 과연 백 년이나 가겠는가?
206-207p
참을 그린 조선 초상화
이웃 중국의 초상화를 보면 대체로 실물보다 더 훌륭해 보이게끔 과장해 그리는 경향이 있다. 화장한 듯 수려한 면모에 유난스레 치켜 올라간 누썹과 눈매, 그리고 잘 다듬어진 수염 끝만 눈여겨보아도 대상 인물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한눈에 드러난다. 반면에 일본의 초상화는 세부 처리가 지극히 세밀하면서도 전체적으로는 자못 추상화되어 있어서 대상 인물의 실제 모습을 전하는 데 관심을 두었다기보다 오히려 정해진 하나의 형식미로 완성시키는 데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이싿.
위 두 나라의 작품에 비해 보면 조선의 초상화는 그야말로 문자 그대로 일체의 변형을 허용하지 않는다. 얼굴이 잘났으면 잘난 대로, 추하면 추한 대로, 검버섯이 있으면 있는 그대로, 심지어 곰보라면 곰보, 사팔뜨기라면 사팔눈까지 있는 그대로 그려낸다. 이 준엄한 사실 정신, 바로 "스스로 속임이 없는 성실함" 이 늘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터럭 한 올만 달라도 그 사람이 아니라"는 정직함 속에서 겉모습 속에 담겨진 성실함의 실상, 즉 학문과 수양의 깊이와 경륜의 폭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213-2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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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오주석의 책『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2』출간에 부쳐
책을 펴내며
1. 소나무 아래 산중호걸 김홍도의
-옛 그림의 표구
2. 화폭에 가득 번진 봄빛 김홍도의
-문인화, 옛 선비 그림의 아정한 세계
3. 겨레를 기린 영원의 노래 정선의
4. 딸에게 준 유배객의 마음 정약용의
5. 부리뽑힌 조국의 비애 민영익의
-조선과 이조
6. 한 선비의 단아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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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옛그림 읽기의 즐거움 2
오주석 저 | 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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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ber: 283/4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