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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 우종학
≫ 글쓴이 : 앤셜리 ≪

우연히 목자님 책장에서 발견하여 빌려 읽게된 책인데,
놀라운 이야기의 책이었다.

저자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로, 진화론을 믿는 크리스찬 과학자이다.
(예일대 천체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한다.)

진화론을 믿는 크리스찬 과학자라~
다들 의아해할 수 있겠지만, 이 분의 책을 읽고 나서,
과학과 종교에 대해 그동안 궁금했던 부분이 약간은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이 책의 저자는 하나님이 진화라는 방법을 사용해
생물들을 창조했다고 보는 유신론적 진화론을 이야기한다.
그동안은 무조건 진화론은 성경에 위배되는 이론이다 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생각해보니 유신론적 진화론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물론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했다는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다소 황당스러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기독교 내에 창조과학회라는 곳에서는 무조건 진화론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유신론적 진화론이 좀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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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개정판 서문
프롤로그: 나는 왜 이 책을 쓰게 되었나?
1부 … 과학에 대해 고찰하다
1. 과학과 기독교, 하나만 택하라고?
자칭 무신론자 박 기자의 생각 | 박 기자, 한 교수를 인터뷰하다
2. 과학과 신앙에 대해 오해하는 것들
과학과 신앙, 꼭 양자택일해야 하는가? | 진화론 대 진화론?
대부분의 과학자는 무신론자? | 갈릴레오 재판, 종교가 과학을 억압한 예가 아니다!
3. 중립적인 과학에 대해 꼭 짚고 넘어갈 점
과학은 자연현상을 다룬다 | 자연현상에는 신이 필요 없다? | 빈틈을 메우는 하나님이란?
4. 과학을 숭배하는 무신론자들
설계 논증에 사용되는 반쪽짜리 설계 개념 | 진화는 신의 설계를 반증한다?
2부 … 성경과 과학, 함께 생각하다
5. 성경에 대한 세 가지 이해: 한 교수의 강의1
성경과 자연은 하나님이 주신 두 가지 책 | 성경 해석은 필수 | 성경은 과학 교과서가 아니다
6. 과학과 기독교, 적일까 남남일까 동지일까?: 한 교수의 강의2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세 가지 견해 | 각 견해에 대한 비판
7. 창조과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창조과학자들이 진화론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
8. 진화 이론, 제대로 알기
진화 이론에 대한 잘못된 반증들 | 진화의 증거들
9. 지적설계 비판
지적설계 운동의 배경 | 지적설계론의 논증과 비판 | 지적설계 논증의 확률 계산
10. 창조 기사 이해하기
창세기 1장 다시 읽기 | 인류의 기원 | 박 기자의 결론
11. 책을 마감하며: 진화 창조론 이해하기
패러다임의 변화 | 우주 진화는 창조의 과정이다 | 진화, 진화 이론, 진화주의
보수적인 기독교 입장 | 진화적 유신론의 견해 | 과학의 창으로 창조를 보다
부록: 더 깊은 공부를 위하여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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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과학과 신앙 중에 꼭 하나만 선택하라고 누가 그러던가? 당연히 둘 다 선택해야지. 물론 거기엔 제대로 된 과학과 신앙이라는 전제가 필요하지. ... 과학과 신앙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야. 과학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얼마든지 크리스천이 될 수 있네. 아니, 오히려 크리스천이기 때문에 더더욱 과학에 매진할 이유를 찾게 되거든. 그런 생각을 갖는 크리스천 과학자는 사실 주위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어
21p

생명체들의 변화 과정을 연구하는 진화 이론 자체는 무신론 혹은 유신론이 아니라 그저 과학일 뿐이라네. 신이 우주를 창조했는지 아닌지를 다루는 세계관적 논의와 신이 창조를 했든 신 없이 우주가 생성되었뜬 어떻게 우주가 만들어졌는지를 다루는 과학적 논의는 분명 다른 차원에서 해석해야 하는 것이지
29p

창조과학의 입장처럼 과학과 신앙을 갈등 관계로 보는 입장이 기독교의 유일한 견해가 아니라는 것은 신앙과 과학에 대한 입문서들을 한두권 읽어봐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사실이네. 물론 그런 책들에서도 대다수의 크리스천들이 기독교의 다양한 입장들에 대해 무지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지. 창조 과학도 기독교적인 견해임은 분명하네. 하지만 그 외의 다른 견해들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는 것이지. ... 예를 들어, 창조주가 진화라는 방법을 사용해 생물들을 창조했다고 보는 유신론적 진화론의 입장을 꼽을 수 있지. 과학 이론으로서 진화론을 받아들이지만, 과학이 찾아낸 결과가 바로 창조주가 세상을 창조한 방식이라고 보는 입장이지. 또 다른 입장으로는 창조주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창조했는가 하는 문제는 과학이 다룰 문제일 뿐 창조주를 믿는 믿음과는 무관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네. 이런 견해를 상호독립의 입장이라고 부르는데 창조주를 믿는 믿음이 중요할 뿐이지 창조가 과연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는 문제는 신앙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지. 또 무신론 자체는 거부하지만 과학으로서의 진화 이론을 아무 문제없이 받아들이면서도 매우 신실한 신앙을 가진 크리스천들을 나 개인적으로도 많이 알고 있다네.
30-31p

과학이 무신론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더불어 과학이 유신론이 틀렸다고 가르쳐 주지도 않는다 는 것이 나의 주장이지.
32p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 도킨스와 같은 무신론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야. 오히려 많은 과학자들은 무신론자라기보다는 과학이 다룰 수 있는 대상만을 진리의 영역으로 받아들인다네. 과학이 밝힐 수 있는 것까지만 받아들이겠따고나 할까. 그 외의 영역, 예를 들어 초자연세계나 신의 존재와 같은 문제는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는 열린 생각을 갖거나 혹은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을 취하는 과학자들도 많지. 반면, 신의 존재를 믿는 많은 과학자들도 공존하지. 그러니까 단지 과학 활동을 한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그들이 유신론자인지 무신론자인지 분별할 수는 없네.
유신론자가 하건, 무신론자가 하건, 무슬림이 하건, 크리스천이 하건, 과학의 실험결과는 같아야 한다는 것이 과학의 전제야. 왜냐하면 신의 존재를 믿건 믿지 않건, 물은 100도에서 끓고 과학은 누구에게나 같은 답을 주기 때문이지. 과학 실험 결과가 과학자의 신앙에 따라 달라질 수 없다는 점을 보면 과학은 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어. 그렇기 때문에 과학 활동을 하는 과학자들을 싸잡아서 자연주의자나 무신론이라고 할 수는 없지.
...
적어도 신의 존재와 같은 초자연적 영역은 과학이 다룰 대상이 아니라는 혹은 다룰 수 없다는 것을 과학자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지. 물론 창조과학자들은 대부분의 과학자들 의견에 동의하지 않네. 그들은 세속에 물든 과학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과학이라면 그 과학을 통해서 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다는 쪽으로 많이 기울여져 있지.
33-34p

갈릴레오의 재판이 진행되었을 당시, 태양중심설의 과학적 우월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네. 갈릴레오의 생애 말기에 요하네스 케플러가 행성들의 운동을 관측한 방대한 자료를 가지고 행성들의 궤도를 정확하게 측정했어.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에 상당한 수정이 필요하게 되었지. 결국 수정된 태양 중심설은 지구 중심설보다 훨씬 정확하게 행성들의 위치를 예측했고 그 결과, 과학적 입지를 굳히게 된 것이지.
하지만 그것은 후대에 일어난 일이야. 그러니까 결국, 갈릴레오의 재판은 과학적으로 우월함이 판명된 태양중심설이 종교의 권위에 눌려 금지된 재판이라고 할 수 없다네. 다시 말하지만, 태양 중심설이 지구 중심설보다 과학적으로 더 나은 이론이라는 것이 당시에는 입증되지 않았고 그래서 아직 과학계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라는 거지.
39-40p

불행하게도 과학과 종교를 보는 관점은 마치 갈릴레오의 재판을 오해했듯, 단순화된 흑백 논리가 많네. 내 생각에는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도 그런 면이 있지.
42p

니고데모의 안경 (신국원, 한국IVP)
홍길동 대학에 가다 (한국IVP)
창조 타락 구속 (한국IVP)
신과 자연 기독교와 과학 그 만남의 역사 (상,하)(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45-46p

"과학이 다루는 자연세계 즉 신이 필요없는 자연세계만을 받아들이는 것이 과학적인 태도 아닌가요?"
"글쎄, 그런 태도는 어찌 보면 과학에 너무 의존하는 것처럼 들리는군. 과학이 다루지 못하는 세계를 무조건 없다고 할 수는 없지 않나. 자네, 부모님을 사랑하나?"
"물론입니다."
"그럼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게."
"참.. 그렇게 말씀하시니... 할 말이 없네요. 날카로우시군요. 영화 콘택트에 나오는 대사를 그대로 인용하시는군요."
"미국의 저명한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쓴 마지막 소설이 원작인 그 영화를 자네도 보았군. 그래. 과학이 다루지 못하는 많은 지식과 경험의 영역이 있네. 과학이 다룰 수 없는 그런 영역들을 다 부정하는 것은 과학에 눈이 먼 어리석은 태도라고 할 수 있지. 과학적인 증거가 없다고 해서 신에 대한 존재나 초자연적 세계를 부정할 수는 없어."
52p

신의 활동을 상상할 때 우리는 주로 마술사의 이미지를 많이 그린다네. 물론 신은 마술사처럼 뭔가를 즉각적으로 만들어낼 능력이 있지. 하지만 신이 자연 현상을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도 없지 않은가? 가뭄에 목이 말라 죽어 가는 사람 앞에 기적적으로 냉수 한 그릇을 선물해 주실 수도 있지만 먹구름이 몰려와 비를 내리게 하는 자연현상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물을 공급해 줄 수 있지 않은가. 자연 현상이 일어나는 원리가 과학적으로 규명되었다고 해서 그 자연 현상에는 신이 관련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지? 오히려 신을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연현상을 과학적으로 규명한 것은 신이 자연을 움직이는 원리를 발견해 냈을 뿐인 것이지.
54p

아기가 탄생하는 것을 생각해보세. ... 아기가 자라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신이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그 과정을 우리가 더 깊이 이해하게 된거라고 볼 수 있지. 신이 생명을 탄생시킨다는 믿음은 의학적 지식이 증가한다고 해서 약해지는 것은 아니란 말일세.
55p

원인을 알 수 없었던 현상을 신의 행위로 여겼다가 과학이 발전하면서 그 현상의 인과관계가 밝혀지자, 이제는 그 현상이 신과는 상관없다고 여기는 태도들 말이야. 다시 말하면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던 빈틈을 기적 등과 같은 초자연적인 신의 행위로 설명했다가 나중에 그 현상의 인과관계가 과학적으로 밝혀지면, 그 현상에 관해서는 신의 역할이 없어지게 되는 것이지. 이것이 바로 빈틈의 하나님이라는 개념이네.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을 신의 기적과 같은 행위로 설명하는 경우를 일컫는 말이지.
하지만 나중에 과학이 발전해서 설명이 가능하게 되면 신의 역할이 박탈당하기 때문에, 많은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빈틈의 하나님과 같은 태도를 매우 우려한다네. 한마디로 말한다면, 과학이 밝혀내지 못한 빈틈을 함부로 신의 기적으로 메우지 말라는 충고라 볼 수 있지. 이런 충고 자체는 매우 신중히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네.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을 초자연적 현상으로 규정해 신의 기적으로 설명하는 일이 역사적으로 비일비재했고 사실 현재도 그런 일은 벌어지고 있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이런저런 현상을 봐라. 이 현상 자체가 신을 입증하는 것 아니냐' 뭐 ㄱ런 태도들 말일세. 그러나 만일 나중에 과학이 발전해 그 현상의 인과관계가 밝혀내면 어떻게 되겠나?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겠지. 신의 역할이라며 나팔을 불었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게 되는 셈이야.
그러나 내가 말하려고 하는 점은 비록 자연 현상으로 설명되더라도 그 밑바탕에 깔린 신의 역할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점이네.
...
문제는 탈신화화의 정도가 지나쳐서 무신론까지 가게 되는 것이지. ... 바람직한 것은 인과관계에 의해서 예측 가능한 자연세계와 또 신이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초자연적 현상, 두 가지 모두를 인정하는 태도라 할 수 있네.
60-62p

쿼크, 카오스 그리고 기독교 (SFC출판부)
64p

신이 생물을 창조할 때 시계공처럼 일할 수밖에 없었다면 그런 신의 존재는 도킨스와 같은 무신론자들에 의해 무력화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신이 꼭 시계공이 시계를 만들 듯 생물들을 창조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거든. 진화와 같은 우연하고 무목적인 것처럼 보이는 방식을 사용해서 생물들을 창조할 수도 있지. 결국 도킨스는 마술사적 이미지를 부여하는 설계 논증을 격파하는 데 성공했는지는 몰라도 실제로 더 넓은 의미의 신의 설계, 그러니까 진화와 같은 방식을 통해서 생물들을 창조할 수 있는 신의 설계를 무너뜨린 것은 아니라네. 옥스퍼드 대학의 '알리스터 맥그래스' 라는 복음주의 신학자도 최근에 도킨스를 비판한 <도킨스의 망상> 이라는 책에서 윌리엄 페일리의 설계 논증이 갖는 문제점들에 대한 우려가 이미 19세기 기독교계 안에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지. 맥그래스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고 신학자가 된 인물인데, 그의 책은 자네에게 큰 도움이 될 걸세.
72p

과학에서 사용하는 우연이라는 말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우연이라는 말과는 차이가 있어.
보통 누군가 의도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 우연이라고 하지. 그러니까 우연히 발생한 사건은 누군가 계획(혹은 설계)한 것이 아니라는 뜻이 되지. 그런 의미에서 따져 본다면 진화가 우연이라고 할 때 진화는 신의 설계일 수 없다는 뜨싱 되네.
하지만 과학에서 사용하는 우연이라는 개념은 그런 개념이 아니지. 과학에서는 가능한 여러 가지 일 중에 하나가 발생하는 것을 우연이라고 표현하네. 꼭 그 일이 일어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가능성 중에 하나가 실현되는 것이지.
예를 들어 복권 같은 것이 그 경우라네. 어떤 사람이 산 복권이 당첨되었다고 가정해 보세. 꼭 그 사람이 당첨되어야 할 필요는 없지. 복권을 산 많은 사람들이 당첨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중에 그 사람이 당첨된 것일 뿐이야. 이런 것을 우연이라고 하지. 그럼 이렇게 우연이라고 설명되는 현상이 설계를 배제한다고 생각하나? 그건 아닐세. 어떤 사람이 복권에 당첨된 일은 많은 가능성 중에 한 가지가 실현된 우연한 사건이라는 과학적 설명이 가능하지만, 신이 우연한 사건을 이용하여 특정한 사람이 복권에 당첨되게 했다고 볼 수도 있거든. 즉, 신이 그렇게 의도(혹은 설계)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지. 그러니까 과학적으로 봤을 때 우연한 사건이라고 해서 신의 의도(넓은 의미에서의 설계)를 배제할 수는 없고 그래서 우연과 설계는 양립할 수 있는 거야.
실제로 성경을 보면 이런 예가 많아. 하나님이 제비뽑기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알려주는 경우가 꽤 있거든. 제비를 뽑아서 한 사람이 당첨되는 것은 과학적으로 볼 때 외부의 통제나 방향성이 없이 발생하는 우연한 사건이지만 하나님은 그 사건을 사용해서 자신의 뜻을 드러내시거든. 그러니까 눈과 같은 생물의 복잡한 구조들이 진화라는 우연한 현상들을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해도 신은 얼마든지 자신의 설계를 수행할 수 있는 것이지.
74-75p

<다윈주의자가 기독교인이 될 수 있는가?> (청년정신)
8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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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 과학과 신앙에 얽힌 해묵은 편견 걷어 내기
우종학 저 | IVP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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