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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 홍대용 선집 - 김아리 편역
≫ 글쓴이 : 앤셜리 ≪

조선후기 실학자인 홍대용의 글들을 모아놓은 책으로,
이 책도 돌베게 우리고전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특히 중국의 유리창이라는 거리에서
우연히 중국의 지식인들을 만난 이야기는
참으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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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간행사
책머리에

진정한 선비
자신을 경계하라
진정한 선비
독서의 방법
스승 김원행
'혼천의'를 만든 나경적 선생
악관 연익성

왕세손과의 대화

'나'와 동아시아에 대한 새로운 성찰
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봐
'오랑캐'에 대하여
일본도 성인의 나라다
우리나라의 노래
금강산이 아니라 바다를 보라

실학의 모색
쓸데없는 연구, 쓸데없는 저술들
숲 아래서의 경륜
천문 기구 '혼천의'

중국 벗들과의 교류
기이한 만남
선비의 사귐에 대하여
독서
10년 만에 도착한 편지
양명학의 의의
모든 사상은 마음을 맑게 하고 세상을 구제한다는 점에서 합치한다
이단의 학문에 대하여
중국의 세 벗

중국 견문기
서양과의 만남
관상대
북경의 유리창
중국의 시장
중국의 기계 제도

허자, 의무려산에서 실옹을 만나다 : 새로운 세계관의 모색
의무려산으로 간 허자
사람과 만물은 평등하다
우주와 지구에 대한 새로운 인식
자연과 문명
모든 민족은 평등하다

해설
홍대용 연보
작품 원제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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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진정한 선비
세상에서 말하는 선비는 세 부류다. 경학을 하는 선비, 문장을 하는 선비, 과거 시험 공부하는 선비가 그것이다. 오늘날 재주 있는 선비라고 부르는 '재사'(才士)는 과거 시험을 치르기 위해 시와 문장을 공부하여 벼슬과 명예를 구하고자 애쓰는 사람이다. 이는 내가 말하려는 진정한 선비가 아니다. 문장을 하는 선비인 '문사'(文士)는 경전의 글귀를 따 쓰고, 반고와 사마천의 말을 그대로 사용하여 쓸데없는 말을 꾸민다. 그리하여 당세에 추앙받고, 또 후세까지 명예가 이어지길 바란다. 이도 내가 말하려는 진정한 선비가 아니다. 경학을 하는 선비인 '경사'(經士)는 말이 고상하고 분명하며, 몸가짐도 단정하고 엄숙하다. 그리고 끊임없이 요순 시대의 정치와 공자와 맹자의 학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리들은 그런 점을 보고 관직에 추천하니 점점 관직이 높아지고 봉급도 많아진다. 그러나 그들의 행실을 자세히 살펴보면 안으로는 어두운 곳에서도 속이지 않는 도덕이 없고, 밖으로는 세상을 다스릴 재주가 없으며, 속은 텅 비고 아무것도 없다. 그 역시 내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선비가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선비란 다음과 같아야 한다. 반드시 도덕과 정의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예법을 따른다. 대단한 부귀가 주어져도 그의 뜻은 흔들리지 않고, 고생스런 가난도 그의 즐거움을 꺽지 못한다. 천자도 감히 신하로 삼지 못하고, 제후도 감히 친구로 삼지 못한다. 출세하여 덕정을 펴면 온 세상이 혜택을 받게 되고, 벼슬하지 않고 조용히 은거하면 그의 덕이 천년을 밝힌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참된 선비라 할 수 있다.
24-25p

독서의 방법
문자를 대충 보는 사람에게는 의문이 없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것은 의문이 없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의문이 없는 데서 의문이 생기고, 맛이 없는 데서 맛을 느껴야 독서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독서할 때 의문을 만들어 내려고만 해서는 안된다. 단지 차분한 마음으로 읽어 나가되 의문이 없다고 걱정하지 말 것이다. 그러다 의문이 생기면 다른 서적을 참조하거나 고증하면서 반복하여 연구한다. 꼭 문자에만 매달리지 말고 어떤 일을 할 때 시험도 해 보고 놀면서도 생각해 보며 걸어 다닐 때나 앉아서나 누워서나 수시로 연구하고 탐색해야 한다. 이렇게 계속해 간다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적어지고, 설사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어도 이런 연구와 탐색을 먼저 해 본 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해할 수 있다.
독서한다는 사람들 중에 다음과 같은 경우를 볼 수 있다. 쓸데없이 목소리를 높이거나, 어수선하게 뒤섞으며 읽거나, 억지로 글자와 문구를 뽑아내거나, 입에서 나오는 대로 어려운 것을 들추어 낸다거나, 다른 사람의 대답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딴 데로 넘어가선 돌아보지 않거나, 일문일답하면 그것으로 끝이고 더 이상은 생각하지 않는 경우, 이런 경우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독서를 통해 얻고자 하는 뜻이 없는 것이니 더불어 학문할 수 없다.
성현의 글을 볼 때에는 옛사람들의 해석을 상고하고 참조한 뒤, 그것을 나에게 돌이켜 적용할 수 있는 적당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성현들의 지혜를 선망하며 따라가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마치 바늘이 몸을 찌르는 것 같아야 한다. 옛 분들의 독서는 대개 이러한 근본이 있었으니 이렇게 하지 않으면 모두 거짓 학문이 되고 만다.
29-30p

스승 김원행
선생께서는 자애로우면서도 감히 범할 수 없는 기상이 있으셨고, 인정이 많으면서도 감히 꺾을 수 없는 용기를 가지셨습니다. 옛사람이 말한 '멀리서 바라보면 위엄 있고 앞에서 만나 보면 온화하다' 라는 모습을 선생에게서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34p

있는 그대로의 중국을 보자
강희 이후 청나라는 백성을 안정시키고 제도를 간단하게 해서 중국을 진압하고 복종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나라의 새로운 제도가 100년 동안 중국 사람들에게 익숙해져서 과거의 전통처럼 편하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제가 만난 항주 사람들이 중국 사람으로서의 의리를 지키지 못하고 높은 벼슬을 주면 달려가는 사람이라고 심하게 꾸짖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만약 이런 이유로 저들을 만주족을 따르는 짐승으로 여기고 중국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는 어진 군자의 마음씀씀이가 아닙니다. 그들이 명나라에 대한 충성과 의리를 지키지 못했다고 할 수 있지만, 예부터 천하의 대세는 늘 뒤바뀌어왔던 것입니다. 세상이 바뀐 뒤에도 과거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복식 제도가 변한 것에 대해서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화젯거리로 삼을 뿐만 아니라 가끔 우리의 옷차림을 보고 명나라 옛 제도라고 말하며 부끄럽게 여기는 기색이 있었습니다. 또 명나라와 청나라 교체기의 일을 말할 때에는 웅ㄹ분을 털어놓았습니다. 제가 직접 대해 본 그들은 청나라 오랑캐가 된 부끄러움을 마치 은나라의 신하가 주나라 종묘에 제사를 지내는 것처럼 나라가 망한 것보다 더 슬퍼했습니다. 이야기 중에 시국과 관련된 조심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는 머리를 숙이고 대답이 없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상할 게 없습니다. 그리고 중국은 우리보다 큰 나라이고 중국인들은 뛰어난 재주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저처럼 보잘것 없는 자와도 옛 친구를 대하듯 흉금을 터놓고 즐기더군요. 이렇게 툭 트이고 시원시원한 기상이 취할 점이 있어 서로 오가며 마음을 기울여 가깝게 지낸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67-68p

쓸데없는 연구, 쓸데없는 저술들
어려서 배우고 커서 실천하는 것이 유학자의 본마음입니다. 그런데 만약 실천하지도 못하고 밝히지도 못할 처지에서 후세를 걱정한다면, 부득이 글을 지어 후세 사람들을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남보다 우월하려고 힘을 들이고, 박식함을 자랑하기 위하여 쓸데없는 글을 써야 한단 말입니까?
...
대개 사람의 마음과 능력은 한계가 있는 법이고, 참된 도리란 끝이 없으므로 일에 맞게 계획을 세워 밖으로 실제의 사업을 펴야 합니다. 또한 조용히 수양하며 안으로 근본에 대한 참된 공부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조차도 평생 부지런히 애쓰는 것이 고작 글줄이나 본다거나, 아니면 이 책 저 책 뒤적이며 고증하는 정도입니다. 일은 게을리 할지언정 글을 많이 읽지 못할까 걱정이고, 근본은 날로 거칠어 가도 저술을 많이 못할까 두려워합니다. "일을 하고 남은 힘이 있으면 글을 배운다" 라고 한 성인의 가르침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랩니다.
옛날 학자들은 책이 없어서 걱정이었고, 오늘날 학자는 책이 너무 많아서 걱정입니다. 옛날에는 책이 없어도 영웅과 현자가 배출되었는데, 지금은 책이 많아도 인재가 날로 줄어듭니다. 어째서 고금이 이처럼 다른 걸까요? 사실은 책이 많은 게 화근입니다.
85-86p

모든 인민이 일하는 나라
인품에는 높고 낮음이 있고, 재주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다. 그 높고 낮음에 따라 단점을 버리고 장점만 쓴다면 세상에 전혀 못 써먹을 재주는 없다. 면에서 가르친 뒤 그중에서 뜻이 높고 재주가 많은 자는 조정에서 쓰이게 한다. 자질이 둔하고 별 볼일 없는 자는 시골에서 쓰이도록 하는데, 그중 아이디어가 좋고 솜씨 좋은 자는 공업에 종사하게 하며, 이익에 밝고 재물을 좋아하는 자는 상업에 종사하게 하여, 모사를 좋아하고 용맹이 있는 자는 군인이 되게 하고, 소경은 점을 치게 하며, 궁형 당한 자는 문을 지키게 하여서 벙어리, 귀머거리, 앉은뱅이라도 모두 일자리를 갖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놀면서도 먹고 입으며 일하지 않는 자는 나라에서 벌주고 마을에서도 버려야 한다.
...
우리나라는 본래부터 명분을 중요하게 여거서 양반은 아무리 어렵고 굶주려도 팔짱 끼고 죽치고 앉아만 있ㅇ르 뿐 농사일을 하지 않는다. 간혹 성실하게 일하고 부지런히 실업에 종사하여 몸소 천한 일을 하는 살마이 있으면 모두 나무라고 비웃으며 무시한다. 그래서 자연히 노는 백성은 많아지고, 일하는 자는 줄어든다. 이러니 재정이 궁핍해지고, 백성이 가난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마땅히 법 조항을 엄격히 정해 사농공상 어디에도 종사하지 않으면서도 놀모먹는 자에 대해서는 관에서 벌칙을 마련하고, 사회가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재능과 학식이 있다면 비록 농부나 장사치의 자식이 정부에 들어가 앚아도 분수에 넘치는 일이라 할 수 없고, 재능과 학식이 없다면 비록 고관의 자식이라도 하인이 되는 것을 한탄할 수 없다. 위와 아래가 힘을 다해 함께 그 직분에 힘쓰도록 하며, 부지런한 자에게는 상을 주고 게으른 자에게는 벌을 주어야 한다.
93-94p

기이한 만남 - 2월4일
이때 나는 방관을 쓰고 소매가 넓은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그것을 보고 반정균이 물었다.
"이 복장이 선비의 평상복입니까?"
내가 그렇다고 하자 난공이 복식 제도가 예스러운 멋이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 옷은 모두 명나라의 제도를 따르고 있습니다."
내가 말하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115p

선비의 사귐에 대하여
제가 말하는 선비는 형식적인 태도 없이 천진하게 마음을 모두 툭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마치 맑은 물이나 밝은 거울을 들여다보면 비치는 것과 같고, 종이나 북이 두드리면 울리는 것과 같은, 그런 살마이 바로 제가 말하는 선비입니다. 그 정도는 돼야 재주니 학문이니 예술이니 하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 평생 스스로 노력한 것도 이런 것이고, 벗들에게도 이런 것을 바랐습니다. 이런 살마 같으면 책 속에서 만난 옛 사람이라해도 존경하며 벗을 삼고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선비와 자리를 같이하고 몇 마디 대화에 곧장 허물없는 벗이 되었으니 어떻겠습니까?
120-121p

독서
독서란 이치를 밝히고 여러 일을 처리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책이란 것은 정밀하게 읽고, 깊이 연구하며, 정확하게 보고, 진리를 얻고 나면 한갓 휴지 조각에 불과합니다. 정밀하게 읽고, 깊이 연구하고, 정확하게 보고, 진리를 얻는 일은 비록 성인이라도 부족함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니 독서는 그 공부가 끝이 없는 것으로서 학자들의 평생 사업입니다. 비록 그러하나 앎과 실천은 어느 한쪽도 없어서는 안 됩니다. 또 근본적인 일과 사소한 일을 구분하는 데에도 크게 등급이 있습니다. 여기서 잘못되면, 선에 빠져 들거나 경전의 자구에 매달려 고증하고 주석을 다는 훈고학에 빠지고 맙니다. 그러니 두렵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들의 독서는 대충대충 여러 책을 건드려 보지만 읽다 말다 하여 정밀하고 깊게 읽지 못하니 어떻게 진실을 논하겠습니까? 이따위로 독서를 하면서도 책 한 권을 다 읽으면 자기 할 일 다했다는 듯 거리낌 없이 함부로 날뛰고 망령된 행동을 합ㄴ디ㅏ. 독서가 끝나면 읽은 내용을 실천해야 하는 큰일이 있다는 사실을 몰느느 것입니다.
멀리 여행을 하려는 사람에 비유해 봅시다. 책이란 한 권의 여행 안내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행하는 사람은 우선 말에게 꼴을 먹이고 수레를 손본 다음, 여행 안내서를 보고 말을 몰아 달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말은 매 놓고 수레만 손질하면서 출발할 생각은 않고 오로지 여행 안내서만 열심히 연구한다면, 끝내 여행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
요즘은 무슨 책을 읽습니까? 그대의 독서 방법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공부는 글자에만 매달려서는 안 됩니다. 단정히 앉아 책을 폈을 때는 의관을 정리하지 않아도 저절로 정연해지고, 시선을 가다듬지 않아도 저절로 의젓해지고, 정신을 각성시키지 않아도 절로 맑아지며, 바르고 착한 생각과 떨쳐 움직이고자 하는 기상이 생깁ㄴ디ㅏ. 그러면서도 그런 것이 어떻게 생기는지 모르는 것이 바로 독서의 공입니다. 또한 독서는 지식을 얻는 것에 그칠 뿐 아니라 정신을 수양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하니, 마음을 당기는 고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학에서는 반드시 독서부터 먼저 하게 되는데, 이런 까닭이 아니겠습니까?
먼저 알고 난 다음에 실행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공통된 도리입니다. 앎이 절반을 채웠으면 반드시 실천으로 이어서 나머지 절반을 채워야 합니다. 그런 뒤라야 지식도 실천도 완전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후세의 학자들은 평생 경전을 연구하여 입만 열면 참된 지식을 말하지만, 살마의 도리와 근본에 대해서는 반밖에 모릅니다. 완전한 참된 앎을 얻고자 하면서도 나머지 반에 해당하는 실천을 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망상과 억측에 빠져 앎을 구할수록 진실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그대는 이것에 주의하기 바랍니다.
123-127p

10년만에 도착한 편지
그대가 보내 준 편지를 보고 엄성이 운명할 때의 모습이 그처럼 가여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자주:엄성은 학질을 앓다가 1767년 11월에 운명했다. 엄성은 운명하기 직전에 홍대용의 편지를 읽어 달라고 하면서 눈물을 흘렸고, 또 홍대용이 보낸 먹의 향을 맡았다고 한다.) 집에 들어가면 벽만 바라보고, 나오면 하늘에 호소할 뿐입니다.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슬프고 서글픕니다. 이런 마음은 죽어서야 그칠 테지요. 어떻게 이 쓸쓸한 마음을 차마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나는 보내주신 엄성의 초상과 유고를 보물처럼 받들어 아침저녁으로 우러보며 답답한 마음을 풀어 볼까 합니다. 또 엄성의 형님은 내형 공경하듯 하고, 그의 아우는 내 아우 아끼듯 하며 팽생 감히 잊지 못할 것입니다. 그대는 이 마음을 이해하시겠지요.
1766년 북경에서 돌아오는 즉시 7일동안 필담을 나누었던 종이와 그때 주고받은 편지들을 정리하고 편집해서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났던 숙소인 천승점이 간정동에 있기에 이 책의 제목을 <간정동 필담>이라고 붙였습니다. 거기엔 당시의 사귐과 만남의 과정이 어떠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들어 있습니다.
131p

유학
요즘 유학의 법도가 다른 학문을 배척하고 은근히 다른 학문을 이기려고 하며 자기 학문만 제일이라는 생각으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으니 정말 짜증나는 일입니다. 오로지 참된 마음으로 사실을 따라서 매일 실제를 밟아 가야합니다. 이런 진실한 바탕이 있어야 남을 공경하고, 지식을 쌓고, 자신을 수련하고, 다른 사람을 다스리는 공부를 실행으로 옮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대가 평생 닦아 온 학문에 대한 견해를 듣고 싶습니다.
133p

어려서는 유학을 공부했고, 나이 들어서는 자연이 좋아서 두어 칸의 초가를 짓고 장차 한가로이 거닐며 세상사의 그물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1774년에 외람되게도 나라에서 뜻밖의 벼슬을 내려 집에 계신 늙은 어머니를 생각하며 몇 년 동안 벼슬을 했습니다. 그렇게 수년을 보내다가 현감이 되었습니다. 봉록을 받아 어머니를 봉양ㅇ한 것은 다행이지만, 천성이 엉성하고 게을러 관직에 익숙하지 못하고, 공무 문건은 복잡하게 쌓여 생각하던 것과 너무 달랐습니다. 또 이 보잘것없는 독서마저도 날이 갈수록 멀어지고 달이 갈수록 잊게 됩니다. 내게 큰 기대를 했던 엄성을 생각하면 진땀 나고 부끄러워 견딜 수 없습니다. 늘 가슴이 답답해서 오래 있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조만간 사임하고 고향집 '애오려'로 돌아가 저술도 하고 시도 읊으며 여생을 보낸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134-135p

모든 사상은 마음을 맑게 하고.
제가 지난 몇 년간 세상 경험을 하면서 조금 깨닫게 된 것이 있으니, 각각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따르면 된다는 겁니다. 마음을 맑게 하여 세상을 구제한다는 점에선 유교니 불교니 가릴 것이 없으므로 어떤 사상이라도 현자가 되고 군자가 되는 데 해로울 것이 없습니다. 다만 인륜을 끊고 공으로 도피하는 데까지만 가지 않으면 모두 성인의 부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心)을 말하고 성(性)을 말하는 석가모니의 오묘한 깨달음이란 것은 유교의 서적에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유학을 충분히 궁구하고 캐내서 체험하고 실행하면 그 속에 쌓여 있는 오묘한 의미가 끝이 없습니다. 이런 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구하고자 한다면 세속을 초월하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는 수준을 면치 못하고, 이렇게 되면 마음에 큰 병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다만 유학의 이단이 될 뿐만 아니라 선가에서도 이단이 되고 말 것입니다.
구봉 선생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禪)에 들어가는 방법과 공부하는 절차 등을 대강 가르쳐 주셔서 저의 고루함을 깨우쳐 주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141-142p

이단의 학문에 대하여
지금 이단을 배척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 폐해에 대해 말합니다. 그러나 세상일에 어찌 폐해가 없을 수 있겠습니까? 어진 사람에게 천자의 자리를 넘겨주던 선양의 제도는 그 폐해가 찬탈로 나타났고, 학정을 일삼는 천자를 무력으로 토벌할 수 있다는 사상은 그 폐해가 왕의 시해로 나타났습니다. 정성을 들여 만든 예악은 사치의 폐해를 낳고, 각국의 제후들을 방문하여 안부를 묻는 역빙은 자기 견해를 퍼뜨리는 유세의 폐해로 나타났습니다. 성인들의 올바른 제도도 소인들이 그것을 빙자해서 행하면 이렇게 되는데, 이단 학문도 당연히 병폐가 생길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청담과 허무를 숭상함은 노자의 사상을 채히는 적이요, 부처에게 공양하면 복을 얻는다든가 윤회설 같은 것은 불교 사상에 달라붙은 마귀입니다. 청담을 버리고 도덕을 행하며, 부처에게 복을 받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기의 심성을 찾았다는 점에서 본다면, 쇠란한 시대에 태평하게 다스린 한나라의 문제와 경제라든가 왕양명과 육상산은 기특하고 현명한 것이 아닙니까?
여러 가지 이단의 학문이 있지만, 마음을 맑게 하고 세상을 구제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고, 자신을 수양하고 사람들을 다스리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것은 다들 같습니다. 그러니 나는 내가 좋은 것을 따르고, 저들은 저들대로 착하게 되도록 한다면 무슨 문제입니까? 모든 사물을 바르게 하기가 어려운데, 그중에서도 마음이 가장 심합니다. 사람마다 각각 좋아하고 숭상하는 것이 따로 있는 법이니 누가 이것을 통일시키겠습니까? 그러므로 각각 자기 방식대로 선을 닦고 각각 그 능력을 발휘하되 사사로운 욕심을 버리고 풍속을 선량하게 한다면 큰 목표가 같은데 무엇이 해롭겠습니까?
145-146p

북경의 유리창
유리창은 원래 유리 기와와 벽돌을 만드는 공장이다. 푸르고 누른 잡색 기와와 벽돌들이 모두 유리처럼 번쩍이므로, 나라에서 쓰는 각종 기와와 벽돌은 모두 '유리' 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리고 공장을 '창'이라고 한다. 유리창은 정양문 밖 서남쪽으로 5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데, 공장과 가까운 길 좌우에 시장 점포가 있다. 동쪽과 서쪽 입구에 문을 세우고 '유리창'이란 편액을 붙여 그것이 시장 이름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시장에는 서적과 비석에 새겨진 글, 종묘에서 사용된 제기, 골동품 등 온갖 물건들이 있다. 장사하는 사람들 중에는 과거 시험을 치르거나 벼슬을 얻기 위해 올라온 남쪽 지방의 수험생들이 많기 때문에, 여기에 노니는 사람 중에는 가끔 유명 인사도 끼어 있다. 시장 전체 길이는 5리쯤 된다. 가게 건물들은 다른 시장보다 호화롭거나 사치스럽지 않지만, 갖가지 진귀하고 기묘한 물건들이 쌓여 넘쳐흘렀다. 또한 시장의 위치도 예스럽고 아담한 멋이 있었다. 유리창 길을 따라 천천히 걷노라면 마치 페르시아의 보물 시장에 들어간 것처럼 그저 황홀하고 찬란해서 종일 다녀도 뭐 하나 제대로 감상할 수가 없었다.
서점은 일곱 곳이 있었다. 책은 삼면의 벽에 십여 층의 선반을 만들고 분류 표시를 해서 질서 정연하게 진열해 놓았고, 각권마다 표지가 붙어 있었다. 한 서점 안의 책만도 수만 권이나 되어 한참 고개를 들고 구경하다 보면 책 제목도 다 보지 못했는데 눈앞이 가물거리며 현기증이 일어난다.
...
유리창 길의 좌우에 있는 점포는 수백, 수천 개나 된다. 그곳에서 파는 물건들을 만들기 위해 투자되는 비용이 얼마만큼의 거액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사실 일반 백성들이 먹고살아 가는 데 꼭 필요한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이상하고 음탕하고 사치스런 물건들로 사람의 마음을 해치는 것들 뿐이다. 이상한 물건들이 불어나면 선비들의 기풍은 점점 방탕해진다. 이런 이유로 중국이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다. 슬픈 일이다.
172-173p

사람과 만물은 평등하다
옛사람들은 백성에게 혜택을 주고 세상을 다스리고자 할 때 모든 생물을 관찰하며 참고했다오. 왕과 신하의 의리는 벌을 보고, 군대의 제도는 개미를 보고, 예절은 박쥐를 보고, 그물 치는 법은 거미를 보고서 각기 배울 점을 따온 것이라오. 그래서 '성인은 만물을 스승으로 삼는다' 라고 했던 것이오. 그런데 어째서 그대는 하늘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지 않고, 사람의 입장에서만 사물을 보는 거요?"
201-202p

옛날에 어디서 주워들은 것에 매달려 있는 사람에게는 새로운 이치를 말할 수 없소. 이기려는 마음이 버릇이 되어 버린 사람과 말싸움을 할 수는 없는 일이오. 그대가 이치에 대해 알고 싶다면 예전에 주워들은 것을 싹 버리고, 이기려는 마음을 없애야 할 것이오.
206-2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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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 홍대용 선집 우리고전 100선 04
김아리 편역 | 돌베개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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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7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 우종학 앤셜리 2016-07-18 258
406 그 남자의 자동차 : 자동차 저널리스트 신동헌의 낭만 자동차 리포트 - 신동헌 앤셜리 2016-07-18 611
405 다시, 봄 : 장영희의 열두 달 영미시 선물 - 장영희 저, 김점선 그림 앤셜리 2016-07-18 416
404 공항에서 일주일을 : 히드로 다이어리 - 알랭 드 보통 앤셜리 2016-07-18 228
403 지금 이대로 괜찮은 걸까? - 마스다 미리 앤셜리 2016-07-18 175
402 사진으로 만나는 인문학 : 세상을 보는 눈을 바꿔주는 사진 특강 - 함철훈 앤셜리 2016-07-18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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