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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셜리 ≪
예전 통섭의 식탁이라는 책으로 미리 만나본 최재천 교수님의 또 다른 책이다.
자연관찰을 통해 세상 사는 이치를 생각해보는 그런 이야기들이다.
그런데 오래 전(15년전)에 나온 책이라, 시대가 변한 요즘과 좀 안맞는 이야기도 종종 나온다. (주5일 근무 같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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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꿀벌 사회의 민주주의
어찌 보면 매우 어수선하고 시끄러운 과정이지만 벌들은 점차 가장 훌륭한 꿀을 발견한 정찰벌 주변에 모이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는 전 군락의 일벌들이 그 정찰병이 발견한 꿀이 있는 곳으로 함께 일을 나간다. 여왕벌이 군림하는 사회지만 이 모든 과정에 여왕의 입김은 전혀 미치지 않고 오로지 민중의 뜻만이 있을 따름이다. 완벽한 의미의 다수에 의한 정치, 즉 민주정치가 벌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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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벌들은 거짓 공약을 남발할 수 없다. 그랬다가는 금방 들통이 나기 때문이다. 어느 정치인이 자신의 공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인가는 그가 당선된 후에야 확인될 수 있는 까닭에 시민단체들이 작성하는 후보들의 성적표는 좋은 지침이 될 것이다. 다만 시민단체들 모두 그들이 진정 시민을 위한 모임임을 명심하여 결코 군림하지 아니하고 늘 봉사하는 자세를 잃지 않길 바랄 뿐이다.
32p
고래들의 따뜻한 동료애
자연계는 언뜻 보면 늙고 병약한 개체들은 어쩔 수 없이 늘 포식자의 밥이 되고 마는 비정한 세계처럼만 보인다. 하지만 인간에 버금가는 지능을 지닌 고래들의 사회는 다르다. 거동이 불편한 동료를 결코 나 몰라라 하지 않는다. 다친 동료를 여러 고래들이 둘러싸고 거의 들어나르듯 하는 모습이 고래학자들의 눈에 여러 번 관찰되었다. 그물에 걸린 동료를 구출하기 위해 그물을 물어뜯는가 하면 다친 동료와 고래잡이배 사이에 과감히 뛰어들어 사냥을 방해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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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래들은 또 많은 경우 직접적으로 육체적인 도움을 주지 않더라도 무언가로 괴로워하는 친구 곁에 그냥 오랫동안 있어주기도 한다.
48p
종교가 왜 과학과 씨름하는가
종교가 스스로 모래판에 내려와 과학을 붙들고 씨름을 하려 할 때 나는 참 서글프다. 과학은 이른바 형이하학이지만 종교는 형이상학 중에도 으뜸이 아니던가. 과학은 모든 걸 증명해야 하는 멍에를 지고 있지만 종교는 그럴 필요가 없다. 믿음은 증명보다 훨씬 더 위대하기 때문이다.
53p
동물들은 모두가 서정시인
특별히 화려한 귀뚜라미 연주를 듣고 싶은 이들이 있다면 늦은 여름밤 서울대 교정으로 초대하겠다. "호르르르륵 호 호 호" 하는 왕귀뚜라미의 연주가 꾀꼬리 뺨친다. 밤늦게 그들의 음악을 배경으로 연구실에 앉아 있노라면 '방에는 글 읽는 소리, 부엌에는 귀뚜라미 소리" 라는 우리 옛 속담의 평화로움이 내 온몸을 적신다.
137p
동물도 거짓말을 한다
"자네는 세상이 다 부러워하는 서울대생이네. 물론 자네의 노력으로 들어온 곳이지만 한편으로는 자네의 복일세.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말일세. 이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월등한 능력을 부여받았고 누구보다도 성공할 가능성이 많은 사람이 아닌가? 그런 자네가 거짓말도 불사하며 나만의 이득을 위해 산다면 저 바깥에 있는 자네보다 훨씬 덜 가진, 그래서 아무리 노력해도 자네만큼 잘살 수 있는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이 세상을 어찌 살라는 말인가. 능력있고 복받은 자들이 더 가지려고 움켜쥐면 이 세상은 날로 어두워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래서 가진 자의 거짓말은 그 죄과가 그만큼 더 무거울 수 밖에. 나와 한 가지만 약속을 하면 이번 일은 없었던 걸로 하겠네. 지금 이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오로지 정도만을 걷겠다고 나와 약속하게. 그래도 자넨 절대 굶어죽지 않을걸세."
149p
개미와 베짱이의 진실
이솝 우화가 아니더라도 개미는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부지런한 동물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옛말에 '개미가 천 마리면 멧돌을 굴린다' 했는가 하면, '천 길 제방도 개미 구멍으로 무너진다'고도 했다. 실제로 개미 굴 앞에 앉아 내려다보면 쉴새없이 드나드는 개미들의 모습에 감탄할밖에. 하지만 개미들은 군락 전체로 볼 때 부지런한 것이지 한 마리 한 마리를 놓고 볼 때는 결코 부지런한 동물이 아니다. 물론 종에 따라 다르고 군락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어느 군락이건 일하는 개미들이 전체의 3분의 1을 넘지 않는다. 열심히 일하는 개미들에 비해 두 배는 족히 되는 개미들이 꼼짝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기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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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정당이 스스로 개미라 칭할 때 대부분은 놀고 먹는 것처럼 보이는 일개미에 비유하는 것인지 아니면 국민들은 일개미처럼 죽어라 일하도록 만들고 그 위에 군림하는 여왕개미가 되고 싶은 것인지, 개미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하는 나로선 뭔가 석연치 않다.
168-170p
원앙은 과연 잉꼬부부인가
새들 중에서도 갈매기만큼이나 암수가 공평하게 자식 양육에 동참하는 예는 그리 흔치 않다. 조류학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갈매기 부부는 거의 완벽하게 열두 시간씩 둥지에 앉아 서로 알을 품는다. 그리고 나머지 열두 시간은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아들이는 바깥일을 본다. 바깥양반이나 집사람의 개념이 전혀 없는 사회다. 남녀평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갈매기가 우리 인간보다 훨씬 앞선 동물들이다.
이에 비하면 갈매기 부부의 금실은 실로 탄복할 만하다. 갈매기 부부는 비번식인 겨울에는 서로 헤어져 살지만 해마다 번식기가 되면 어김없이 같은 장소로 날아와 지난 여름 함께 신방을 꾸렸던 짝을 찾는다. 물론 지난 해의 결혼생활이 그리 순탄치 않았다면 다시 말해서 자식들을 제대로 키워내지 못한 경우에는 미련 없이 서로 갈라서기도 한다. 그러나 성공적으로 자식들을 기른 부부는 애써 서로를 찾는다. 겨우내 또는 먼 바다로의 긴 여정에 둘 중 누구에게라도 불해잉 닥쳐 돌아올 수 없게 되었ㅇㄹ 때 며칠 씩 짝을 찾아 우는 소리는 우리 인간의 귀에도 마치 사랑하는 임을 그리며 통곡하는 절규처럼 들린다.
185-186p
언어는 인간만의 특권인가
촘스키 박사는 나에게 동물들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잘라 말했따.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스스로에게 말하기 위해 생겨났다는 것이다. 나는 요사이 까치들이 서로 무슨 말을 하고 사는지 연구하고 있따.물론 한 까치가 내는 소리에 다른 까치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는게 고작이다. 하지만 나는 종종 까치들이 트림을 하듯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마주 지껄이던 까치도 그 소리엔 대꾸하지 않는다. 동물들이라고 독백을 하지 않는다는 증거는 없다.
195p
우리 몸에도 시계가 있다
사랑하는 연인과 함꼐 있는 시간은 너무도 빨리 흘러 할 수만 있다면 끈으로 묶어 붙들어두고 싶지만 듣기 싫은 강의 시간은 왜 그리도 천천히 흐르는지, 시간을 절약해주는 온갖 문명의 이기들이 속속 개발되어 우리네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있건만 왜 우리는 날이 가면 갈수록 더욱 바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에디슨을 탓하랴마는 그가 전구를 발명한 이래 우리의 잠은 예전과 같지 않다. 동굴에 살던 시절 우리 인류는 해가 지면 대충 잠자리에 들어야 했다. 하루에 적어도 여덟 시간은 자야 건강에도 좋고 제대로 된 생활을 할 수 있따. 잠은 일생의 3분의 1을 허비하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3분의 2를 위한 준비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248p
게으름은 아름답다
서양 사람들은 부지런한 동물로 비버와 개미를 든다. 비버(beaver)라는 단어는 명사로도 쓰이지만 때론 동사로도 쓰인다. 동사로 쓰일 때는 '부지런히 일하다' 라는 뜻을 지닌다. 비버의 근면함은 그 이름에 이미 담겨 있다. 북미 대륙에 사는 비버는 튼튼한 이로 상당히 굵은 나무들을 베ㅓ다 둑을 만들어 강물을 막는다. 그들이 벌이는 토목사없은 그 규모로 보나 기술로 보나 인간을 뺨칠 수준이다. 그러나 그렇게 부지런해보이는 비버도 사실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 일하지 않는다.
'개미와 베짱이' 우화를 예로 들지 않더라도 개미의 부지런함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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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개미는 군락 전체로 보면 늘 바삐 움직이는 것 같지만 일개미들을 따로 놓고보면 쉬는 시간이 더 많다. 실제로 한 군락에서 한순간이라도 일을 하고 있는 일개미들은 대게 전체의 4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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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과학자 김용준 교수님은 자주 "교수를 놀게 해야 학문이 발전한다"고 역설한다. 개미 군락에서 놀고 먹는듯이 보이는 4분의 3의 개미들은 사실 노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일들에 대비하여 힘을 비축하고 기다리는 개체들이다. 개미들은 진화의 역사를 통해 사회의 구성원 모두가 늘 쉬지 않고 일해야 하는 체제 속에서는 갑자기 예기치 못한 변을 당했을 때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들 정부의 위기대처 능력은 우리에 비할 바가 아니다.
창조적인 일에 종사하는 이들은 바로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반성적 게으름'을 즐기며 '무용한 지식'을 창출할 수 있도록 해줘야 우리의 미래가 밝아질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인문학의 위기가 엄습하더니 이젠 기초학문부터 흔들리고 있다. 서울대를 비롯한 전국의 대학에 석사와 박사과정 지망생이 현저하게 줄고 있다. 밤낮 없이 창조적인 부담감에 시달리면서도 손에 쥐는 것은 쥐꼬리만큼인 학자의 길이 버거울 따름이다.
250-25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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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최재천 저 | 효형출판 | 2001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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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ber: 376/4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