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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앤셜리 ≪
조선후기 문인인 이덕무가 쓴 글들을 소설처럼 각색해서 만든 책이다.
이덕무의 생각들도 좋아하지만, 마치 이덕무가 직접 쓴 글처럼 상상의 나래로 글을 쓴 안소영 님도 한번쯤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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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내 마음 속의 백탑
나지막하게 엎드린 초가지붕과 기와지붕들 위로 탑이 홀로 높이 솟아 있었다. 탑은 하얗고 기다란 촛대처럼 보였다. 그 위를 달빛이 촛농처럼 고요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두울수록 더욱 은은하게 빛나는 탑의 못브을 정신없이 바라다보고 있는데, 탑도 눈길을 길게 늘여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 눈길과 눈길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 서늘하고도 흰 탑 하나가 내 가슴 속에 성큼 들어와 서는 듯했다.
아니면 개천 물소리가 경쾌하게 들려오던 어느 봄날, 천천히 운종가를 거닐다가 문득 탑이 서있는 옛 절터 쪽을 바라보던 때였을까.
흰옷 차림의 사람들은 봄을 맞은 저잣거리를 구름처럼 바쁘게 흘러 다니고 있었따. 딱히 필요한 물건을 사러 나온 것은 아니었지만, 내 발걸음은 모처럼 여유롭고 가벼웠다. 그러다 홀낏 옆으로 눈을 돌렸을 때, 고개를 길게 늘여 빼고 세상 구경을 하고 있는 탑의 윗몸이 보였다. 햇살을 받은 탑은 더욱 눈부셔 보였고, 탑의 몸에 묻은 초록빛 이끼들도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정신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순간, 환하고도 흰 탑 하나가 내 가슴속에 사뿐 들어와 서는 듯했다.
39-40p
백탑 아래 맺은 인연
백탑 아래 동네에서 오고 가며 어울리던 그 무렵, 나와 벗들은 <백탑청연집> 이라는 시문집을 펴내었다. 연암 선생의 글도 들어 있었다. 제목은 박제가가 붙였는데, '백탑 아래 맺은 맑은 인연을 기린다' 는 뜻이다. 그 때 우리의 사귐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이 있을까.
45-46p
어찌 눈으로만 책을 읽는다하는가
나는 책과 지내며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생각을 모아 문집을 만들었다. <이목구심서>란 제목을 붙였는데, 글자 그대로,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생각한 것을 적어 놓았다는 뜻이다.
55p
얼버무려 말하지 말라!
가끔 아이처럼 쪼그리고 앉아서 땅바닥을 들여다본다거나,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박제가를 볼 떄가 있다. 그의 눈길을 좇아가 보면, 땅 위를 꼬물꼬물 기어 다니는 벌레나 나뭇잎 사이에 걸린 거미줄에 닿곤 했다. 내가 옆에 있는 것을 문득 깨달은 박제가는 겸연쩍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제는 저 거미줄만 보았을 뿐, 거미의 꽁무니에서 실이 나오는 것은 미쳐 보지 못하였습니다. 거미는 어제도 오늘도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을텐데요.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합니다. 제가 마음을 기울여 들여다보면 볼수록, 모든 사물은 제 모습을 더 세밀하게 보여 주니까요."
사물뿐이겠는가,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길거리에 오고 가는 사람들은 많지만,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기울이기 시작하면 그는 비로소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특별한 모습으로 다가오게 된다. 좀 더 마음을 기울이면 그가 살아온 이야기, 그의 가슴속에 담은 생각들을 알게 된다. 더욱더 마음을 기울이면,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벗이 되리라. 박제가와 나처럼. 우리와 다른 벗들처럼.
마음을 기울여 들여다보면 볼수록 점점 더 세밀해지는 자연을 그는 시로 노래하였다. 갓 스물이 되었을 무렵, 박제가의 시는 참으로 영롱하고 아름다웠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잎, 가을날 나뭇잎 하나 매달린 나무의 쓸쓸함. 푸르다는 한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득한 하늘이 그의 시에 담겨 있었따. 비 갠 오후, 거미줄에 맺힌 빗ㅁ방울처럼 반짝이는 시였따. 그림과 글씨도 모두 아름다웠는데, 그가 그린 가을 국화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코끝이 싸한 가을냄새가 나는 듯했다.
75-76p
사근사근 상추쌈 소리
언젠가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박제가는 이런 이야기를 했다.
"유득공의 마음속에는 우물 하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근심 걱정도 한 번 담갔다 하면 사뿐하게 걸려져 밝은 웃음으로 올라오게 하는 우물 말입니다."
정말 그의 가슴속에는 근심 걱정을 담갔따 걸러내는 우물 하나가 있는 것일까. 심각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살짝 들어 올리는 그의 우스갯소리는 그 우물에서 튕겨 올라온 시원한 물방울일까. 그 물방울이 우리에게도 튕겨져 시원하고 명랑한 기분에 온몸이 젖어 유쾌해지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의 마음 속에 고인 물은 끝도 없이 깊고, 결코 마르는 법이 없을 것이다. 나의 벗들의 근심 걱정을 수없이 담갔따 길어 올려도 조금도 마르는 버이 없이 늘 새롭고 싱그러우니 말이다.
85-86p
그 어머니에 그 아들
유득공이 우리에게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열두 살쯤 되었을 때란다. 집 안에는 밤늦도록 등불이 환했다. 아랫목에서는 어린 유득공이 책을 읽고 있고 윗목에서는 어머니가 바느질을 하고 계셨다. 방 안에서는 책장이 한 장 두 장 넘어가는 소리. 나직이 글 읽는 소리와 옷감이 미끄러지는 소리. 간간이 실패 굴러가는 소리만이 들려오고 있었따. 아버지가 없는 집안에서 어머니와 아들이 서로를 의지하는 소리였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유득공이 한쪽 구석에 놓아둔 책을 가지러 가다가 그만 등잔을 넘어뜨리고 만 것이다. 한창 바느질을 하고 있던 치맛감에 등잔 기름이 묻어 얼룩이 졌다. 새어 나온 기름이 다 지어 곱게 접어 둔 저고리에까지 번졌다. 며칠 밤을 지새우며 치마저고리에 공들인 어머니의 수고가 문제가 아니었다. 그들 모자로서는 그런 고급 비단을 물어낼 능력도, 마련할 길도 없는 게 더 큰 문제였다.
"그대로 주저앉아 울고 싶었지만 숨이 턱 막혀 눈물도 나오지 않더군요. 그런데 어머니가 제게 뭐라고 하신 줄 압니까?"
유득공은 그때 일을 생각하니 다시 목이 메는지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이왕 엎질러진 것. 어쩌겠느냐? 너무 걱정하지 말라.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이튿날 어머니는 바느질을 맡긴 집을 찾아가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옷감만큼의 대가를 바느질삯으로 갚기로 했다. 그때는 물론, 그 뒤에도 그 일로 유득공을 나무라거나 꾸짖지 않으셨다 한다.
오히려 지금까지도 그때 일을 수도 없이 되풀이해서 생각해 보고 가슴에 담아 두는 것은 유득공이었다. 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어머니의 담담하면서도 차분한 목소리느느 그의 마음속에 오래오래 남아있다고 했다. 어쩌겠느냐, 너무 걱정하지 마라. 하도 여러 번 들어서 그런지 내 귀에도 자연스럽게 익은 말이다.
잘못을 저지른 그를 감싸 주며 다독이던 그날 밤 어머니의 목소리.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물려준 핏줄은 서러웠지만, 사랑이 담긴 어머니의 목소리는 그의 가슴에 따스한 피를 돌게 했다. 나의 벗 유득공은 그러한 따스함을 세상과 벗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87-89p
아침 해가 빛나는 나라
한백겸이 죽기 보름 전까지 <동국지리지>를 붙들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유득공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도 내 삶이 다하는 그날까지 무언가를 붙들고 싶습니다. 내가 끝까지 부여잡은 그것이, 후대 사람들에게 감동과 감탄 뿐 아니라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94p
북쪽 하늘 흙먼지 냄새
무엇보다 나는 그가 몰고 오는 낯선 곳의 흙먼지가 묻어 있는 바람이 좋았다. 나 또한 집을 떠나 이곳저곳 다닌 적이 많다. 하지만 나의 길은 내키지 않는 더부살이를 하러 친척 집으로 가는 것이었기에 근심만 깔린 길이었따. 그러나 백동수의 길은 호기심과 두근거림, 설렘이 있는 여행 본래의 길이었다.
106p
벗을 보내며
박제가는 소매 속에서 두툼한 편지를 꺼내 백동수에게 주었다. '가난한 날의 특별한 벗' 으로 백동수를 기억하는 편지의 첫 구절은 이랬다.
"하늘 아래 가장 고귀한 우정은 가난할 때의 사귐이라 합니다. 벗과의 사귐은 술잔을 앞에 두고 무릎을 맞대ㅗ 앉거나 손을 잡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차마 말하고 싶지 않은 것도 저절로 말하게 되는 것. 여기에 벗과의 진정한 사귐이 있습니다."
121p
책을 만나러 온 어린 벗
"연암 선생님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귀한 책을 볼 수 있다고 하기에 구경하러 왔습니다."
...
그의 이름은 이서구라 했다. '서'는 글이나 책을 뜻한다. '구'는 홑자리 수 가운데 가장 클 뿐 아니라, 크고 많다는 것을 뜻할 때 쓰는 수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름 자체가 온 세상의 모든 책을 뜻하는 셈이었다.
내가 그의 나이만 할 때, 거처하던 집의 이름을 '구서재'라 하였다. 말이 서재지, 허름한 창고였다. 따로 방이 없던 나느 봄가을에는 그곳에서 책을 읽으며 보냈다. '구서' 란 책을 읽는 독서, 책을 보는 간서, 책을 간직하는 장서, 책의 내용을 뽑아 옮겨 쓰는 초서, 책을 바로잡는 교서, 책을 비평하는 평서, 책을 쓰는 저서, 책을 빌리는 차서, 책을 햇볕에 쬐고 바람을 쏘이는 폭서를 말한다. 책과 관련된 모든 것을 그곳에서 하겠다는, 젊은 시절의 호기로운 서재 이름이었다. 앞과 뒤가 바뀌긴 했지만 그의 이름을 들으니, 그만 할 때 책에 파묻혀 지내던 내 지난날이 생각나 더욱 호감이 갔다.
124-126p
문턱이 닳고 책장도 닳고
새로운 책을 구해 책상 위에 올려놓으면 나는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책장을 펼치면 바람결에 와삭거리는 아득한 풀밭이 그 속에는 들어 있을 것만 같다. 서늘한 풀냄새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며 나는 가보지 않은 길, 내 발자국으로 인해 새로워지는 길을 떠나려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풀잎들을 꼭꼭 다지며 걷는 것도 좋겠지. 아니면 그만의 길을 위해 내가 눕힌 풀잎들을 다시 일으켜 세워 놓거나.
아무리 책을 좋아하는 벗이라 해도, 책의 향기를 코끝으로 먼저 느끼는 예민한 후각과 책을 만질 때마다 설레는 손끝의 미세한 떨림까지 시시콜콜 나누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이서구와는 굳이 이러한 느낌과 취향을 꺼내어 나눌 필요도 없었따. 그도 역시 그렇였으므로, 책의 표지라야 기름 먹인 종이에 붓으로 제목을 쓴 것은 모두 같은데도, 우리는 제목의 위치, 글씨체, 책을 묶어 놓은 솜씨까지 꼼꼼이 살펴보며 평가하였다. 언뜻 보면 비슷비슷하지만, 책을 만든 사람이 추구하는 아름다움과 담아 놓은 애정은 조금씩 달랐다. 여기에 이제까지 그 책을 읽어 온 사람들의 흔적까지 보태면, 더욱 신비로워진다.
127p
우리를 벗이라 할 수 있을까
내 머리가 차츰 희끗해지고 그의 젊음이 무르익어 감에 따라 젊은 벗에 대한 내 우정은 깊어졌고 기대 또한 커 갔따. 언젠가는 내가 아끼는 책 두 권을 빌려 주면서 이런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나는 예전부터 우리나라에는 좋은 책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해 왔소. 이이의 <성학집요>와 유형원의 <반계수록>, 허준의 <동의보감>이오. 하나는 유학, 하나는 경제, 하나는 사람을 살리는 의학이오. 유학은 사람됨의 근본을 공부하는 학문이니 아무리 거듭해도 아쉬움이 없지만, 대부분 여기메나 몰두할 뿐 다른 것은 소홀히 하는 것이 안타깝소. 그대는 침착하고 슬기로워 바탕과 재질을 갖춘 데다 나이 또한 한창이니, 다른 분야도 폭넓게 공부하기 바라오. 그러면 창고 속에서 누렇게 뜬 곡식과 같은 나처럼, 이 세상을 헛되이 살았다는 탁식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오. <반계수록>과 <동의보감>, 두 책을 보내니 가까이 두고 꼼꼼히 읽기 바라오."
135p
그대 위해 빈배 남겨 두리
언젠가 귀한 책을 들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집으로 갔을 때였다. 그는 문득 이런 시를 ㅈ어 나에게 주었다.
고요히 마주 앉아 촛불 켜고 노닐면서
십 년 동안 강북에서 이웃하며 살았네.
세상을 등지고 돌아가 지내려 하노니
그대 위해서도 낚싯배 남겨두리.
오랜 벼슬살이에 젊은 그는 벌써 피로해진 것일까. 대궐 밖에서 만날 때마다 그는 부쩍 시골로 내려가 지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였다.
"앞으로 처자와 함께 시골로 내려가 밭 갈며 살려 합니다. 일을 하다 틈이 나면 책을 읽고, 또 연구한 것을 글로 써서 남기고, 한 권 두 권 쌓이는 것을 보며 늙어 가는 것을 잊고 싶습니다. 어떠십니까, 청장관도 생각이 있으십니까?"
136-137p
나의 벗들을 사로잡은 책
사람과 마찬가지로 책 또한 저마다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 잔잔하게 마소 짓는 사람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는 책이 있는가 하면, 꼬장꼬장한 스승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책도 있다. 무엇보다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것은, 그가 뿜어내는 독특한 매력에 만도 모르게 푹 빠져 들게 되는 책이다. 젊은 시절, 나와 벗들을 다함꼐 사로잡은 책은 바로 담헌 홍대용 선생의 <간정동회우록>이었다.
담헌 선생은 1765년부터 이듬해 4월까지, 청나라에 가는 사신 일행을 따라 북경을 방문하고 돌아오셨다. 그곳에서 중국 선비 세 사람을 만나 평생 잊을 수 없는 벗이 되었다. 그때 중국의 벗들과 주고받은 이야기, 오고 간 편지들을 모아 만든 책이 바로 <간정동우회록>이다.
북경에는 진귀한 옛 문헌들과 골동품들이 모여 있느 ㄴ유리창 거리가 유명하다고 한다. 간정동은 유리창에 있는 작은 골목으로, 선생이 중국 선비들을 만난 곳이다. 조선의 선비 담헌 선생과 중국 선비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서 붓으로 글을 써 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헤어질 무렵에는 서로 눈물을 흘리며 아쉬워했따고 한다.
나와 벗들은 거듭 되풀이해서 읽으며 그 책에 깊이 빠져 들었따. 박제가와는 이런 이야기도 주고 받았따.
"밥을 먹다가도 이 책을 생각하면 숟가락질하는 것도 잊고 맙니다. 세수를 하다가도 마저 씻기를 잊을 정도이지요. 어느 하늘 아래, 이런 사귐이 또 있을까요?"
"그러게 말일세. 나 역시 읽을 때마나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네. 이 책을 읽고 마음이 뻐근해지지 않는다면, 그런 사람과는 벗으로 사귈 수 없을 것 같네."
다른 벗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나처럼, 책을 볼 때마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막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때 우리들은, 왜 이 책에 그토록 깊이 빠져 들었던 것일까?
그전에도 나는 중국에 다녀온 사람들이 쓴 글을 여러 번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까지의 기록들은 스쳐 지나가는 낯선 곳의 풍경만 담아 놓았을 뿐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사람들의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에 대한 이야기는 있어도, 가슴속에 담아 놓은 생각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날마다 내가 읽는 옛 사람들의 책을 그곳의 선비들도 읽고 있으리라. 그렇다면 그들의 깨우침과 생각은 어떤 것일까, 나는 늘 궁금했다.
담헌 선생의 책에 나오는 주국 선비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따. 우리처럼 날마다 책을 읽고, 그 속에서 깨우침을 얻었따. 때로는 옛글들을 평가하며, 잘된 글을 발견하면 기뻐하기도 했다. 부질없이 흘러가는 세월에 소스라치게 놀라다가, 다시 옷깃을 여미며 하루하루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는 사람들이었다.
중국과 조선이 국경을 가까이 한 이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오고갔지만, 담헌 선생과 중국의 선비들처럼 벗으로서 아름다운 관계를 맺은 적은 없었따. 나라가 다르고 말씨가 다르고 옷차림이 다르고 풍습이 다른 것을 따지기보다는 서로의 마음속에 담긴 생각을 먼저 보아씩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같은 나라 사람들과는 사귀기가 쉽지 않았다.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고 적다는 이유로, 가진 것이 있고 없다는 이유로, 서로가 속한 당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미리부터 사람들 사이에 금을 그어 놓았기 떄문이다.
나는 담헌 선생과 중국 선비들 사이에서 오고 간 글에, 내 느낌과 생각을 덧붙여 다시 정리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제목을 <천애지기서>라고 붙였다. '아득히 멀리 떨어진 낯선 하늘 아래에서 자신을 알아주는 ㅂ서을 맍나다' 라는 뜻이다.
148-150p
이 세상의 중심은 나
저 실 뭉치 위의 매듭을 중국이라 생각하면, 그 자리가 언제나 가운데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 공처럼 둥근 지구에서는 어느 나라도 자신이 으뜸이며 가운데라 우길 수가 없다. 선생의 말씀처럼,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어떠한 나라든지 가운데가 될 수도 있고 중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나의 처지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신분의 굴레가 있는 현실 속에서 나와 같은 서자들은 변두리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 사람의 일생을 놓고 보면 누가 중심이고 누가 변두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자심의 삶에서는 스스로가 중심인 것이다.
1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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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 안소영
안소영 지음/강남미 그림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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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ber: 383/4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