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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씨앗의 역습 - 김석기
≫ 글쓴이 : 앤셜리 ≪

토종 씨앗의 역습이라...
제목은 좀 이상하지만 토종씨앗의 중요성에 대해 잘 풀어놓은 책이다.
지금도 많은 토종 씨앗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사라지고 있다고 하니
참 안타까운 일이다.
국가 차원에서 토종씨앗을 지키는 일을 대대적으로 진행한다면
참 좋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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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토종씨앗 지킴이, 할머니들
토종 씨앗을 수집하러 농촌을 찾아가면 할머니들이 반갑다. 저 멀리 100m 밖에서도 할머니만 보이면 "할머니!" 하고 소리치며 달려가게 된다. 씨앗을 수집하러 농가를 방문하는 낮 시간이라 대부분 논밭으로 일하러 나가실 때가 많기에 사람을 만나는 일이 가장 귀하고, 특히 할머니들만 만나면 토종 씨앗이 하나라도 나오기에 더욱 그렇다.
할머니들은 젊은 남성이 소리치며 달려오면 멀리서 한참을 쳐다보신다. 이 촌에 어인 남자인가, 혹시 내 손주가 찾아와서 부르는 것인가 하여 그러실 때가많다. 할머니와 만나면 우선여기까지 이렇게 찾아온 자초지종을 말씀드린다. 그러면 처음에는 대부분 손을 내저으시며 "나는 그런 거 몰라. 가서 할아버지한테나물어봐" 하시곤 한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파리처럼 달라붙어야 한다. 이때 가장 좋은 건 콩이나 팥 씨앗에 대해 묻는 것이다. 어느 집이나 콩이나 팥 씨앗에 대해 묻는 것이다. 어느 집이나 콩이나 팥은 꼭 1~2가지 정도 토종 씨앗을 재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러한 잡곡들은 씨앗을 받기 위해 굳이 수고를 더하지 않아도 수확을 하면 그것이 곧 씨앗이 되는 수월함 때문이기도 하다. 할머니에게서 반응이 오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어간다. "할머니 제가 나중에 이 일 거들어드릴게요" 하는 말이라도 건네면 할머니들은 못 이기는 척 집으로 가자고 말씀하신다. 나중에 정말 거들어드릴 때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더라도 할머니들은 바쁜데 어서 또 다른 데 가보라며 이해해주시기도 한다.
한편 할아버지들은 할머니들과 사뭇 다른 반응을 보이셔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할아버지들은 일단 의심하신다. 이놈들이 무엇을 훔치러 온 놈들이 아닌가 경계심을 놓지 않고 하나하나 캐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요즘 농촌에 좀도둑이 얼마나 많은가? 하도 농산물 절도가 빈번하여 평창군에서는 경찰서 마당을 농민들에게 빌려주어 그곳에서 고추를 말리는 진풍경까지 연출되고 있다. 그러니 할아버니들의 낯선 이에 대한 경계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할아버지들의 질문은 매우 날카롭다. 무얼 하는 사람들이냐, 어디서 나왔느냐, 그렇다면 어디서 나왔는지 증명할 자료는 있느냐 등등 조서를 작성하듯이 꼼꼼하게 물으신다. 그 시험에서 통과하면 이제 수집단의 이야기를 들으시는데, 돌아오는 답은 이렇다. "씨앗? 그런 건 할머니들이 잘 알지. 가서 할머니에게 물어봐, 여보!"
우여곡절 끝에 할머니와 함께 집에 도착하면 눈을 크게 뜨고 곳곳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해야 한다. 물론 대놓고 뒤지면 도둑이나 다름없으니 지나가는 길에 쓰윽 매서운 눈초리로 확인, 확인, 또 확인해야 한다. 텃밭에는 어떤 작물들이 자라고 있는지, 또 퇴비간에는 어떤 작물의 부산물이 버려져 있는지, 처마 밑이나 마루에는 어떤 수확물이 매달려 있고 놓여 있는지, 창고는 어디이며 혹시 대화를 풀어나가기에 좋을만한 이야깃거리는 보이지 않는지, 집 안 구석구석에 특이사항은 없는지 말이다. 이러한 관찰은 토종 씨앗을 수집할 때 매우 중요하다. 이 일에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지나가며 집만 보아도 저 집에 토종이 있을지 없을지 판단할 수 있는 반 점쟁이가 다 된다. ...
할머니가 가장 흔한 콩이나 팥 씨앗을 내오시면, 그것이 참 예쁘고 좋아서 그럴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씨앗 칭찬을 실컷 하는 편이 좋다. 농사짓는 사람에게 씨앗 칭찬은 자식 칭찬과 다를 바가 없다. 기분이 좋아진 할머니가 기다려보라며 장독대로 가서 장독 뚜껑을 열어 페트병에 든 씨앗을 가져 오시기도 하고, 신발장 위에 신문지로 꽁꽁 싸놓은 씨앗을 꺼내 오시기도 하고, 부엌 찬장의 유리병에 잘 갈무리해놓은 씨앗을 들고 오시기도 한다.
...
토종 씨앗을 보전하고 계신 분들에게 씨앗을 얻으면서 "왜 토종씨앗을 가지고 계신가요?" 하는 질문을 하곤 한다. 그러면 다양한 답을 하시는데, 대략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이유로 토종 씨앗을 보전한다고 하신다. 첫째, 맛이 좋다. 신품종을 구해서 심어보면 토종 같은 맛이 안 난다. 심지어 신품종은 맛대가리가 없다는 말까지 하신다. 둘째, 조상에게 받았다는 책임감이다. 이 씨앗들이 내 후대에 어떻게 될지는 몰라도 내가 물려받은 이상 나에게서 끊기게 할 수 없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잇으시다. 셋째, 그냥 심던 것이니 계속 심는다. 일종의 습관처럼 받고 심고 가꾸고 거두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시는 것이다.
재미난 건, 할머니들이 시집을 올 때 혼수품으로 곡식의 씨앗을 가져오는 일이 많았다는 점이다. 할머니들에게 현재까지 보전하고 있는 콩이나 팥의 연원이 어떻게 되는지 묻는 과정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말 가운데 시부모에게 물려받았다는 이야기 외에도 "이건 내가 시집올 때 가지고 온 것이지" 라는 말이 있다. 이는 문화적으로 퇴화된 씨앗을 새롭게 고치는 행위일 수 있다. 신품종의 경우 그 품종의 능력이 퇴화되는 것에 맞추어 4~5년을 주기로 '종자갱신'이라는 걸 하기를 권장하는데, 과거 혼수품으로 다른 마을의 씨앗을 들여오는 일이 그와 비슷한 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일종의 '새로운 품종'을 도입하는 것과 같은 셈이다.
64-67p

토종 지킴이들의 소멸
이제 짧게는 10여 년, 길게는 한 세대 정도 뒤에는 그나마 토종 씨앗을 보전하고 있었던 세대들이 농촌에서도 퇴장하게되는 상황이 되었다. 한 노농의 죽음은 그것이 단지 한 사람의 소멸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토종씨앗의 소멸로도 이어질 것이다. 자칫하다가는 토종 씨앗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현실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92-93p

개발시리 조
2008년 제주의 어음리에서 토종 씨앗을 수집하다 만난 개발시리 조. 1994년의 논문에 나온 납음리 인근이다. 그 품종이 10여 년이 지나서도 농민과 함께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알아듣기 힘들어, 개발시리인지 게발시리인지 이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직접 손바닥에 올려 보여주셨다. 이로써 모든 의문이 단박에 사라지고 '개발'임을 알았다.
160p

그곳에서 꼭 사먹는 전통 음식인 오메기떡도 바로 제주의 조로 만든 떡이다. 지금이야 오메기떡을 떡으로 즐기지만 원래는 술을 빚기 위한 술떡이었다고 한다. 그러니 제대로 오메기떡을 즐기려면 오메기술을 마셔야 하는 셈이다. 제주의 오메기술은 지금 떠올려도 입안에 군침이 흐를 정도로 맛있는 술이다. 내가 먹어본 막걸리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정말 맛있었다. 실제로 제주 사람들도 조로 만든 음식 중 최고가 술이고, 다음이 밥이며, 가장 못한 것이 떡이라고 꼽는다.
162p

씨앗으로 쓰려고 따로 매달아놓은 조 이삭의 모습. 요즘은 가장 좋은 걸 시장에 내다팔고 속칭 B급 이하를 재배한 농민들이 먹지만, 토종 씨앗을 재배하는 농부는 늘 가장 좋은 걸 이듬해 씨앗으로 쓰고자 따로 빼놓는다.
163p

토종 씨앗으로 전통음식을 살리기
근래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전통 음식 복원사업에 대해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요즘 궁중이나 양반가의 음식을 복원하는 여러 사업들이 행해지고 있는데, 그것이 과연 진짜 전통 음식일까? 이러저러한 옛 요리책을 찹조하긴 하지만 서양의 레시피처럼 재료의 양이라든지, 조리시간, 불의 세기 등등 자세한 사항은 적혀 있지 않아 복원하는 사람의 주관적인 경험 등에 의존하는 경향이 크다. 또한 그 재료의 문제는 어떠한가? 지난 100년 사이에 계속 살펴본 것처럼 토종 씨앗은 급속도로 사라졌다. 그 말은 곧, 토종 씨앗을 재배하여 수확한 농산물로 만들어 먹었던 음식도 함께 사라지거나 변했다는 뜻이다. 전통 음식을 복원하려면 그 재료부터 가능하면 당시의 것으로 마련하는 노력이 곁들여져야 하지 않을까? 여러 전통 음식 복원사업을 볼 때마다 재료에 대한 이야기는 쏙 빠져 있어 늘 아쉽게 생각하던 대목이었다.
164-165p

전통 농업에 어울리는 토종 씨앗
토종 씨앗은 다수확을 목적으로 하는 신품종과 달리, 그런 상황에서 적응하며 살아와 농약과 비료가 없거나 부족해도 농사가 괜찮게 된다. 아니 어떤 씨앗은 오히려 농약과 비료가 투입되면 농사가 망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토종 씨앗은 토종 농법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 고 표현한다.
181p

옛날 농민들이라고 키가 작은 벼에 여러 이점이 있다는 걸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 왜 그들은 굳이 애써서 키가 큰 벼를 선택한 것이띾? 그건 볏짚 때문이다. 쌀 말고 볏짚도 과거에는 귀중한 자원이었다. 볏짚의 양이 충분해야 초가집의 지붕도 교체하기 좋고, 소중한 농사꾼이던 소를 사육하는데도 도움이 됐다. 어디 그뿐인가, 각종 생활도구를 만들 때도 볏짚이 중요하게 사용되었다. 새끼줄도 꼬아야 하고, 멍석이며 가마니, 동구미, 신발 등 여러 가지를 볏짚으로 만들어야 했다. 볏짚이 충분히 생산된다면 그를 위해 쌀을 조금 포기하더라도 괜찮을 것이다.
182-183p

토종 씨앗을 수집하러 다니면서 흔하게 볼 수 있는 풍겨이 마늘밭 고랑에 상추가 자라고 있는 모습이었다. 도대체 저것이 무슨 풍경인지 밭주인 할머니를 붙들고 꼬치꼬치 캐물었다. 결론은 원래 마늘밭 두둑에 상추를 심었는데 이제는 비닐을 까니까 거기에는 못 심어서 고랑에다 씨를 뿌린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효과가 있는 걸까? 궁금하여 직접 마늘밭 두둑과 빈 두둑에다 상추 씨를 뿌려보았다. 이걸로 정확한 비교실험은 될 수 없지만, 마늘밭에 뿌린 상추가 싹이 더 잘 트고 이후에 자람새도 더 좋았다. 마늘과의 상호작용 때문인지, 마늘밭의 밑거름 때문인지 그 이유를 알 길이 없어 아쉽지만 나는 지금도 습관처럼 마늘밭에 상추를 뿌리게 되었다.
184-185p

미국의 정치가 벤자민 프랭클린은 인간을 '도구를 제작하는 동물(Toolmaking Animal)' 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192p

미시간 주립대학의 연구팀이 53종의 곤충을 대상으로 식물과의 상호작용을 연구한 결과, 일반적으로 식물의 질이 떨어져 영양분이 적으면 곤충이 덜 번성한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식물의 다양성이 곤충의 번성을 억제한다는 사실을 발견햇다. 곤충들이 번성하려면 필요한 영양분의 범위가 그리 넓지 않은데 1~2가지 작물로 대규모 단작을 행할 경우 그들이 번성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이 마련된다. 그러나 농지에 작물을 포함하여 여러 식물이 다양하게 자라 영양분의 범위가 너무 풍부하거나 빈약하면 곤충들이 덜 번성한다는 것이다. 다양한 식물에 둘러싸인 곤충들은 영양분이 많은 고품질 식물보다 영양분이 적은 저품질 식물에 훨씬 더 많은 타격을 받는다며, 작물다양성을 살려 여러가지 작물을 섞어짓기하거나 서로 다른 유전자형을 지난 품종을 재배하는 방법을 권한다.
211p

박쥐는 많은 곤충을 잡아먹음으로써 농업에 이로운 효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박쥐들이 사라짐으로써 농업 부분에서 1년에 37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본다고 추산한 바 있다.
81p

토종종자모임 씨드림
흙살림 토종연구소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231p

토종 씨앗에서 시작하는 생태적인 사회를 꿈꾸며
새로운 시대의 문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더이상 양에 집착하지 않는다. 과거와 같은 절대적인 배고픔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고 상대적인 빈곤이 더 큰 사회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쌀을 예로 들면, 커다란 밥그릇에 꾹꾹 눌러 담아 수북하게 쌓인 흰쌀밥을 원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쌀 생산량이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시끄러운 시절이다. 사람들은 집에서 1년에 쌀 한가마도 다 먹지 못한다. 어떻게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 애를 써야 하는 시대는 끝났고, 이제는 사람들의 다양한 수요와 입맛에 맞출 수 있는 더욱 다양한 품종의 고품질 쌀이 필요하다. 그것이 지금 시대의 요구이고, 토종 씨앗이 그에 부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2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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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세상을 바꾼다! 귀농총서-56
토종 씨앗의 역습 한국 농업의 다양성을 위하여
김석기 저 | 들녘 | 2017년 0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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