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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 우종학
≫ 글쓴이 : 앤셜리 ≪

이전에 우 교수님이 내신 무크따 라는 책이 교양이라면,
이 책은 그 내용을 조금 더 전문성있게 깊이있게 다루는 책이다.

무크따 책을 통해서,
내 신앙과 과학과의 괴리를 속시원하게 없앨 수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는 좀 더 디테일하게 그 내용을 알 수 있어 좋았다.

작가의 전문성을 살려, (작가는 천문학 박사이다.)
앞부분에는 우주의 역사 부분이 나오는데, 그 부분도 참 볼만하다.

교회에 그리스도인 전문 과학자들이 꼭 필요하다는 내용에 크게 공감이 간다.
나 같이 무지한 일반인을 위해,
우 교수님이나,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님 같은 분이 꼭 필요하다.

과학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많은 젊은이들,
창조과학만 알고, 진화에 대해서는 반감이 큰 한국교회의 목사님들이
꼭 한번씩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위한 만화책으로도 나오면 참 좋을 듯...

ps. 그런데 표지와 제목은 참 old 하다.
좀 심하게 이야기하면 표지와 제목만 봐서는 읽기 싫어지는 느낌? ^^;;
좀 더 세련된 이름으로 지었다면 좋았을텐데.
우 교수님 및 출판사가 북 디자인할 비용이 없어서 그런 듯, 편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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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과학으로 점철되는 현대사회의 흐름과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과학으로부터 유리되어 고립된 모습을 보인다. 스마트폰과 위성통신 및 첨단기술과 같은 과학문명의 이기는 매일 누리고 있지만, 과학이 던지는 자연의 역사나 그 신학적 의미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고 과학을 통해 드러나는 창조 역사의 놀라움과 풍성함도 누리지 못한다. 과학을 통해서 자세히 들여다본 자연의 세계는 놀라울 정도로 조화롭고 정교하며 또한 인간의 이성에 도전하는 새로움으로 가득하다. ... 하지만 작금의 한국교회의 상황을 보면 과학의 영역은 마치 무신론자들의 손에 넘어가 있는 듯하며, 그리스도인들은 과학을 통해 누릴 수 있는 복에서 완전히 멀어져 있는 듯하다.18p

무신론자 청년의 주장처럼 과연 과학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증명한 적이
있었던가? (반대로 신이 존재한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과학이 제시한 적도 없다.) 과학은 자연세계를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존재인 신이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확실한 답을 해줄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과학은 자연세계의 인과관계를 체계적으로 알려주는 하나의 설명 체계일 뿐이기 때문이다. 과학은 우리가 오감으로 느끼고 만지고 볼 수 있는 다양한 경험적인 데이터를 이용해서 자연현상에 대한 인과관계를 찾고 그 원리를 밝혀내는 학문이다.20p

우리 은하 너머에 또 다른 은하가?
우리 동네에서 가장 덩치가 좋은 큰 형님과 작은 형님에 해당하는 안드로메다 은하와 우리 은하를 포함한 약 20~30개의 은하들이 모여 있는 이 그룹을 국부 은하그룹(local group)이라고 부른다.국부 은하그룹과 같이 우주의 거시구조로 나가면 지구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흥미로운 현상이 벌어진다. 바로 시간과 공간이 엮이는 현상이다. 우주에서는 시간과 공간이라는 개념이 서로 묶여 시공간이 된다. 가령 지금 스마트폰을 꺼내어 은하의 사진을 찍는다면 우리는 언제의 모습을 보는 걸까? 우리가 찍은 사진에는 약 260만 년 전의 안드로메다 은하 모습이 담긴다. 왜냐하면 안드로메다 은하를 떠난 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는 데 약 260만 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55p

거대한 시공간의 의미
우리가 살아가는 물리적인 우주는 극히 협소하고 제한될 수밖에 없지만, 우리의 마음과 생각 안에 그리고 우리의 기도 안에 얼마만큼 넓은 세계를 품느냐에 따라서 거대한 우주를 품고 살 수도 있다. 직접 발을 딛고 여행해볼 수 없는 세상도 우리는 우리의 인식의 세계 안에 품고 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그리고 우리의 지성 안에 품는 만큼 내가 살아가는 우주는 넓어진다....광대하신 하나님의 창조 작품인 우주를 배우고 품는 일은 우리의 시선을 넓게 열어준다. 오늘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다툼과 욕망의 열매들을 우주라는 시공간의 거대한 흐름에 비추어보면 그 허망함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창조세계의 광대함은 우리의 죄 된 본성이 집착하는 보잘겂없는 욕망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나님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성품을 찬양하면서 나의 인격이 변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창조세계에 눈을 열어 하나님의 지혜와 경륜을 볼 때 우리는 자연스레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64p

우주의 시작
우주의 팽창을 기초로 해서 정밀한 관측과 이론들을 통해 천문학자들이 측정한 우주의 나이는 약 138억 년이다. 풍선이 커지는 팽창 속도를 알면 현재의 풍성 크기를 만들기 위해 얼마만큼의 시간이 걸렸는지를 계산할 수 있는 것처럼, 우주의 크기가 시간에 따라 커지는 우주방정식을 풀면 우주의 크기와 우주의 나이를 측정할 수 있다.69p

우주와 지구와 생물의 역사
지구상의 생물의 역사는 어떨까? 지구에서 가장 오래된 생물의 화석은 대략 5억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이전 시대는 미생물의 흔적들이 화석으로 남아 있으며 최초의 생명체는 대략 35억 년에서 41억년 전에 발생했다. 다양한 생물종이 담겨 있는 화석의 나이를 측정해보면 지구의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 단순한 종들이 먼저 나오고 복잡한 종들이 나중에 출현한다는 생물 역사를 알 수 있다. ... 우주와 지구와 생물의 역사를 종합해보면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우주와 지구와 생물의 역사가 흘러왔다는 것으르 알 수 있다.이렇듯 과학을 통해 밝힌 우주의 역사를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매우 긴 시간동안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알 수 있다.72-73p

우주가 가리키는 창조주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창조주를 믿는 시각으로 자연세계를 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 역사와 섭리를 보며 감격하게 되고 창조주를 찬양하게 된다. 이 관점이 바로 우리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관점이다. 복음주의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가 지적했듯이 실패한 자연신학을 되살려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변증하려는 시도는 성공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자연신학의 실패를 넘어 과학을 통해 창조의 풍성함을 누리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75p

과학의 한계
과학은 그리 위대하지 않다. 과학이 우리 삶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낭만주의적인 과학은 20세기가 되면서 무너졌다. 20세기 초는 뉴턴으로 대표되는 고전 물리학에서 아인슈타인으로 대표되는 현대 물리학으로 넘어오는 과정이었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 탄생하면서 뉴턴의 기계론적 우주관에 입각해 과학이 자연세계를 완벽히 기술할 수 있을 것이라던 기대는 산산조각났다.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는 과학이 자연현상을 완벽하게 결정적으로 기술하는 대신 확률적으로 기술할 수밖에 없다는 자연세계의 미결정성 혹은 우리 인간의 인식론적 한계를 알려주었다. 수학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바로 괴델이 발견한 불완전성 원리다. 불완전성
원리는 어떤 수리 논리 체계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참인지 거짓인지를 증명할 수 없는 명제가 포함되어 있고 그 수리 논리 체계에 모순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쉽게 말하면 불완전성 원리는 어떤 진리 체계도 참이라고 밝힐 수 없다는 뜻이며, 수리 논리 체계의 근본적인 불완전성을 드러내고 인간 인식에 근원적 한계가 있음을 보여준다.과학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물리학자들은 과학의 한계를 분명히 받아들인다. 가령
과학이 모든 자연현상을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빅뱅의 경우는 어떨까? 약 138억 년 전이라고 알려진 빅뱅의 시점 이후는 과학을 통해 우주의 역사에 대한 기술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앞에서 다룬 것처럼 우주의 팽창과 거시구조의 진화, 별과 은하의 탄생은 천문학과 물리학을 통해 상당히 설득력 있게 설명된다. 하지만 태초의 빛이라고 할 수 있는 우주배경복사가 나온 시점인 우주 나이 38만 년 전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빛이 우리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서 우주의 나이가 1초가 되지 않은 시점까지 가는 일은 상당히 어렵다. 왜냐하면 빛과 정보를 얻을 수 없는 관측 불가능한 영역의 우주를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론 물리학을 통해 우주의 초기상태를 다양하게 연구 중이지만 우주 나이가 플랑크 시간인 10의 43제곱 분의 1초보다 작았던 시기는 현대 물리학으로 기술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과학이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내용은 빅뱅뿐만이 아니다. 지구에서 어떻게 처음 생명체가 탄생하게 되었을까에 대한 질문에도 엄밀한 과학적 설명은 부족하다. 무생물의 세계에서 생물의 세계로의 변화는 우주의 탄생인 빅뱅과도 같은 엄청난 변화를 필요로 한다. 밀러의 실험과 같은 간단한 실험들이 여러 가지 힌트를 주고 있지만 화학진화라고 불리는 무생물의 시대에서 생명체가 출현한 과정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세번 째로 인간의 의식에 대한 기원도 여전히 안개에 가려져 있다. 인간의 몸의
구조나 유전자의 유사성 등에 대해서는 진화의 과정으로 설명되고 있지만 과연 동물들과 다른 인간의 의식이 어떻게 출현하게 된 것인가에 대해서는 뇌과학이나 진화심리학 등의 새로운 학문이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엄밀한 설명이 부재한다.79-80p

과학의 특성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데이터가 얻어지고 기술이 개발되어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다면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지 못하던 기존의 과학 내용은 수정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과학은 절대적 진리가 아닌 당대 최상의 설명이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자연세계의 인과관계를 설명해주는 하나의 설명 체계이기 때문에 사실 과학은 신의 존재를 믿는 유신론을 지지하거나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자연세계의 인과관계를 설명해주는 과학은 유신론과 무신론에 대해서 중립적이다.82-84p

성경은 과학과 모순되는가?
성경이 어떤 종류의 책인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읽기 쉽다. 성경에서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성경에서 과학 지식을 찾으려는 경향을 갖기 쉽다. 하나님과 구원에 관한 신학적 메시지를 담은 특별계시로서 성경을 읽지 않고, 그 대신 자연사의 흐름을 담은 백과사전이나 과학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과학 교과서로 성경을 읽는다면 수많은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97-98p

창세기 1장에 대한 이해
미국의 목회자인 팀 켈러는 창세기1장과 2장의 순서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1장과 2장 둘 다를 문자적인 의미로 볼 수는 없다고 지적한다.(팀 켈러의 글은 바이오로고스 웹사이트에서 찾아볼 수 있다. biologos.org)
105p

고대 근동 우주관
창세기 1장은 고대 근동 지역 사람들이 생각했던 우주의 모습 하나하나를 하나님이 창조한 것으로 묘사한다.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 물로 나누시고" 라는 표현은 당시의 창세기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당대의 상식을 따라 우주 창조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 이런 표현들이 있기 때문에 실제 우주의 모습이 고대 근동 지역 사람들이 알고 있었던 우주의 모습 그대로라고 주장하는 것은 오류다. 성경에 표현된 대로 지구가 평평하고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 있으며 하늘 위에 물층이 있었다는 표현이 문자 그대로 실제 우주의 모습을 기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면 성경으르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110p

당대의 문화와 상식을 배경으로 쓰인 본문
창세기 1장은 고대 근동 지역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갖고 있던 상식과 우주관을 토대로 그들이 알고 있던 우주의 모습 하나하나를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기술한 것이다. ... 성경에서 고대 근동 지역의 상식을 읽어내서 그것을 토대로 과학을 판단하려 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 대표적인 실수가 바로 천동설-지동설 논쟁이었다. 시편 104편에 나오는 구절을 근거로 성경은 지구가 움직일 수 없다고 가르친다면서 천동설을 옹호했던 끔찍한 역사적 실수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112-113p

하나님의 창조 방법에 관해 묻고 답하려면, 창조의 방법에는 별 관심이 없는
성경책을 열심히 들여다보기보다는 창조의 방법이 낱낱이 기록된 자연이라는 책을 읽고 연구해야 한다.114p

성경은 창조주를, 자연은 창조세계를 보여준다
성경은 창조의 방법(how)에 관한 과학책이 아니라, 창조주가 누구인지(who)를 알려주는 특별계시의 책이다....
우리는 성경과 자연을 통합적으로 봐야 한다. 이 두 책은 서로 모순되거나
양자택일해야 하는 책이 아니다. 성경을 통해서는 창조주가 누구인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지를 배울 수 있다. 반면에 자연이라는 책을 통해서는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가 어떻게 펼쳐졌는지 배울 수 있으며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와 지식이 얼마나 풍성한지 배울 수 있다.... 이 두 가지 책 중에서 하나를 소홀히 한다면 우리는 창조우와 창조세계에 관해
매우 불완전한 배움을 얻을 수밖에 없다. 자연이라는 책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100억 광년이 넘는 광대한 우주와 100억 년이 넘는 장구한 시간을 창조하고 다스려운 하나님이 아니라 그저 인간에게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지어주신 제한된 지구의 신 정도로 축소하게 된다. 반면에 성경이라는 책을 무시하면 우리는 결코 이 광대한 시공간의 우주가 왜 존재하는지, 광활한 우주에서 먼지처럼 작은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 답을 찾을 수 없다. 우리는 성경과 자연을 함께 또한 적합하게 읽으면서 창조주와 창조세계에 관해 배워가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경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고, 또한 자연이라는 책에 드러난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와 지혜 그리고 오래 참으심에 깊이 감격하고 하나님을 더 높이 찬양하게 된다.115-117p

과학의 도전
과학이 기독교에 던지는 진정한 도전은 과학이 발견해내는 창조의 새로운 비밀들을 우리가 어떻게 신학적으로 이해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지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상식이었던 시절에, 과학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움직인다는 지동설을 알려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천사들이 끌고 다닌다는 생각이 상식이었던 때, 중력 법칙에 의해 천체의 운동을 설명한 뉴턴의 과학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생물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특별한 방법에 의해서 완성된 형태로 창조되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던 시절에, 생물들은 공통 조상에서 진화했다는 것이 과학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았고 그 충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비밀들이 발견될 때마다 인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기독교는 커다란 심리적 충격에 직면했다. 그러나 과학이 발견한 내용들은 사실 창조주가 창조하신 과정과 역사에 담긴 창조주의 지혜들이었다. 그리스도인들이 충격을 받았던 이유는 그동안 생각했던 창조의 그림과는 너무나 다른 새로운 내용을 과학이 밝혀내기 때문이다. 과학은 창조주가 없음을 밝혀내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우리가 몰랐던 창조의 비밀들을 밝혀낼 뿐이다. 성경은 그 텍스트가 한정되어 있지만 과학은 자연이라는 책을 읽어내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내용들을 밝혀내고 있다.이런 충격은 사실 과학이 주는 도전이 아니라 우리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그동안 우리가 그려왔던 창조세계에 대한 이해가 과학에 의해 바뀔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과학의 내용을 기존의 신학의 틀 안에 어떻게 비판적으로 수용할 것인지 묻고 연구해야 한다. 과학이 전지는 진정한 도전은 바로 이것이다. 그동안 생각했던 인간과 우주에 대한 관점을 고집하고 거기에 갇혀 있다면 결코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새로운 모습을 이해하거나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발견할 수 없다. 결국 인간과 우주에 대한 우리의 관점이 계속 변해야 한다.과학이 발전할수록 심리적 충격이 있겠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 과정은 성경이 변하거나 우리가 믿어온 하나님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하니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변하는 것일 뿐이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우리 눈 앞에 펼쳐져 있으며 과학을 통해 자연이라는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우리는 자신의 관점이 변하고 지혜가 성장하는 것을 경험한다. 그것이 과학과 신학의 대화의 역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내용이다. 우리가 창조주를 분명히 믿고 인정할 때는 창조의 내용이 어떤 놀라움으로 드러나더라도 혹은 과학이 새롭게 밝혀낸 결과가 주는 충격이 아무리 크더라도 우리의 신앙은 원칙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이것이 과학의 도전에 대한 기독교의 응답이다.127-129p

과학주의 무신론은 과학의 결과를 무신론적으로 해석하는 하나의 시각, 혹은 하나의 철학적 견해일 뿐이다.134p

무신론자들의 공격 때문에 신앙이 흔들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교회는 적절한 도움을 주고 있는지 한번 돌아봐야 한다. 이 책을 읽고 있는 여러분의 교회나 청년공동체 혹은 직장 등에서 과학이 걸림돌이 되어 신앙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어떻게 도와야 할까? "더 열심히 기도해!" "금식기도나 철야기도를 해봐!" 라는 식의 조언은 그들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듯하다. 그들을 위한 기도는 우리가 해야 한다. 공동체가 그들의 방황과 고통을 품고 중보기도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그들을 괴롭히는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한 이성적인 답변이다. 파고드는 의심을 풀어낼 수 있는 합리적인 설명, 그것이 바로 그들에게 진정한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합리적인 설명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믿음은 이성을 넘어서는 영역까지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기독교 신앙이 과학의 잣대에 의해 무너질 만큼 허술하지 않다는 것을 합리적으로 풀어내 주어야 한다.과학주의 무신론의 공격에 대해서는 지성적 접근이 필요하다. 무신론을 주장한다는 이유로 과학주의 무신론자들의 말을 그냥 무시하거나 그들의 인격을 저주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 주장을 믿고 따르라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그 내용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과학주의 무신론의 주장이 과연 기독교 신앙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는지 내가 먼저 살펴보고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어려움을 겪는 그리스도인들을 적절하게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한발 더 나아가 과학주의 무신론자들이 기독교 신앙에 관해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그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바가 과연 무엇인지, 믿지않는 자들에게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설명해줄 수 있어야 한다. 베드로가 초기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했던 그 충고는 오늘날에도 정확하게 적용된다.'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들에게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벧전 3:16).'135-136p

물질은 어떻게 기원했는가
빅뱅의 시점에 어떻게 막대한 에너지가 기원했는지에 관해서 과학은 아직 신통한 대답을 우리에게 주지 못한다. ... 빅뱅 우주론이 등장한 이후 많은 과학자들이 빅뱅 자체를 설명하려고 시도하고 있지만 빅뱅 자체에 관한 과학적으로 엄밀한 설명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았다. 이론 물리학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초끈이론이라든가, M이론이라든가, 혹은 다중우주와 같은 다양한 시나리오들이 제시되고 있지만 이런 설명은 아직 빅뱅 자체의 기원을 설명하는 엄밀한 과학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 이론들을 입증할 수 있는 경험적인 증거들이 아직 나오지 않았고 이론적인 면에서도 이 이론들은 완성된 이론이라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향후 과학이 어떻게 발전할지에 대해서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옳다. 오늘날 과학이 밝히지 못한 내용이라고 해서 앞으로 몇백년 뒤에도 밝힐 수 없다고 가정하는 것은 그리 지혜롭지 못하다. 그러나 현대과학이 물질의 기원을 엄밀하게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145-147p

물질은 누가 만들었는가?
"신은 누가 만들었는가?" 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통해 도킨스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신은 인간이 만들어낸 상상의 개념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 도킨스의 주장대로 우리 인간이 신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면 신을 만들어낸 인간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는가? 물질이 진화 과정을 통해서 인간을 만들어냈다고? 그렇다면 그 물질은 누가 만들었는가?149p

유신론자도 아니고 무신론자도 아닌 불가지론자의 입장에서 판단한다면 이런 생각도 가능할 것이다. 유신론은 스스로 존재하는 전능한 신을 전제로 하는 셈이고, 무신론은 물질이 스스로 기원했다고 전제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유신론이나 무신론이나 둘 다 전제를 갖는 것이고 어느 전제가 옳은지는 현대 과학으로 판단할 수 없다. 유신론이나 무신론은 각각 신과 물질이 스스로 존재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서 자신들의 주장을 펴고 있을 뿐이다.150p

증거와 경험
우리의 삶은 증명되지 않으며 과학적 증거가 불충분한 수많은 믿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내 아내는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그 고백이 사실인지 아닌지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증명할 수 있을까? 남편을 위한 다양한 행동이 사랑의 증거로 채택되어 엄밀하게 증명할 수 있을까? 나를 사랑한다고 고백하지만 사실은 경제적 혹은 심리적 유익을 누리기 위한 합리적 선택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아무리 사랑을 고백한다고 해도 사실은 그녀 자신도 속고 있는 것이 아님을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증명할 수 있을까? 글쎄다. 그렇지만 나는 과학으로 증명되기 때문에 그녀의 사랑을 믿는 것이 아니다. 증거에 기반한 증거주의적 판단에 의해 사랑을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사랑을 경험했기에 믿고 받아들인다. 과학적으로 엄밀하게 증명되어야 할 영역도 우리 삶과 사회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모든 것을 과학의 잣대로 판단하겠다는 식의 증거주의는 우리 삶을 피폐하게 할 뿐이다.기독교 신앙은 과학적 증거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이 신을 믿는 이유는 신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증명되기 때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증거보다는 경험에 근거한다. 첫째는 2천 년 전에 팔레스타인 땅에 살았던 예수라는 분의 삶과의 만남이다. ... 그분의 삶에 대한 기록은 우리가 가진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이다. ... 기독교 신앙은 일차적으로 성경에 기초한다.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말은 성경에 계시된 신을 믿는다는 뜻이다. 성경이 전해주는 구름같이 허다한 믿음의 증인들이 살아간 삶의 내러티브를 자신의 삶으로 경험하며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의 여정을 걷는다. 둘째는 2천 년의 교회사를 통해 내려오는 신앙의 고백과 내가 속한 교회 공동체가 경험하는 하나님 때문이다. 과학으로 증명되지는 않지만 개인과 공동체가 경험한 사랑과 은혜는 우리의 삶을 끌어주는 하나의 지도가 된다. 셋째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삶에서 인격적인 하나님을 경험한다. 152p

수학으로 표현되는 다양한 패턴이 자연법칙들로 기술된다. ... 우리가 묻고 싶은 것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우주가 이렇게 수학적인 속성을 갖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우리 인간은 이성을 통해서 수학을 이해하고 수학이라는 언어를 가지고 우주의 비밀들을 파악하고 기술한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게 되었을까? 우주는 어떻게 해서 수학적인 본성을 갖게 되었고 우리는 또 어떻게 그 수학을 이해하고 우주의 자연법칙을 이해하게 되었을까? 이 질문은 과학으로 답하기에는 너무나 어려운 철학적 주제가 이날 수 없다.156-157p

물질은 누가 만들었는가? 자연법칙은 어떻게 기원했는가? 우리는 어떻게 우주를 이해하게 되었을까? 기독교는 이 세 가지 질문에 어떻게 답할까?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디곡교 세계관에 따르면 우리는 이 세가지 질문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을 얻을 수 있다. 스스로 존재하는 하나님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였고 그래서 에너지와 물질이 존재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자신의 지혜와 지식의 풍요함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동일하고 오래 참고 신실하신 성품을 반영한 창조세계를 창조하셨고, 창조세계를 운행하는 원리로서 자연법칙을 부여하셨다. 그래서 자연세계는 자연법칙에 의해 질서 있게 운행되고 인과관계를 따르며 예측 가능하기도 하다. 기독교의 창조주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한 뒤에 우주가 스스로 운행되도록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우주를 붙들고 다스리면서 자연법칙에 따라 우주가 운행되도록 섭리하고 있다. 이것이 창조주에 대한 기독교 신앙의 고백이다. 그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에 따라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다. ... 하나님의 본성을 반영한 창조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조세계를 관찰하고 이름 짓고, 창조 세계의 운영체계인 자연법칙을 파악할 능력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인간에게 부여하며 놀라운 지식과 지혜를 인간들에게 나눠주셨고 그래서 우리는 우주를 이해할 수 있는 이성을 갖게 되었다.157-158p

안타까운 점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신앙을 뒷받침하는 지적인 토대를 거의 갖고 있지 않거나 혹은 너무 약한 토대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누가 신을 만들었는가"와 같은 성립하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무신론자들과의 대화나 토론에서 밀리고 만다.159p

우주의 시작에 신은 필요하지 않다?
우주의 시작이 과학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호킹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 주장은 신이 과학법칙을 통해 우주를 창조했다는 명제와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163p

<신을 옹호하다> 라는 책을 낸 테리 이글턴은 도킨스와 그의 동료 히친스의 기독교 이해가 너무 피상적이라며 신랄하게 비판한다....
마르크스주의자인 이글턴은 오히려 기독교 복음의 진수를 꿰뚫어 보고 있다.
우리나라 상황으로 번역하자면, 목사의 성추행, 대기업으로 전락한 교회, 샤머니즘과 기복 신앙을 파는 타락한 종교문화, 여성에 대한 불평등 등에 관해서는 도킨스나 히친스의 비판에 공감하지만 그러나 사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그는 대변한다. 그러면서 예수의 삶은 희생과 섬김의 삶이었고 그의 가르침은 오히려 정의와 사랑을 강조했으며 성경은 자유주의자들의 낭만적인 생각보다 훨씬 더 인간과 세상에 대한 회의를 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종교라고 일갈한다. 특히 기독교의 표면적인 문제들에만 주목하여 그것을 마치 기독교의 본질인 양 얄팍하게 풀어내는 도킨스와 히친스가 사실은 종교보다 더 큰 해악인 자본주의의 문제에 대해서는 놀라울 정도로 침묵한다는 점을 신랄히 짚어낸다. 도킨스가 뛰어난 과학자일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철학적, 사회학적 깊이가 없는 과학적인 거의 기독교에 대한 무모한 공격을 이글턴은 얄판한 치기 정도로 일갈하는 셈이다.166-167p

과학중의 무신론은 과학이 아닌 과학에 대한 해석이다
과학을 무신론이라는 철학과 섞어서 비빔밥으로 만들어 내놓을 때, 과학과 무신론을 가려낼 줄 아는 그리스도인 과학자가 필요하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정설이 된 과학결과들이 어디까지이며 또 어디서부터는 과학적 엄밀성이 떨어지는지, 또 어떤 내용이 단지 무신론자들의 철학적 주장에 불과한지를 구별해주어야 한다.이 일은 결국 전문 과학자들의 몫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교회는 전문성의 부재라는 심각한 병을 앓고 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 과학자도 많고 대학교수들도 많다. 그러나 이들은 자기 전공 분야의 전문성은 갖고 있지만 그 전문성을 교회나 신앙의 영역에서는 별로 발휘하지 않는다. 어쩌면 소위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개인의 영성과 교회라는 범주 안에서만 하는 일이고 직장은 직정의 규칙대로 사는 이원론적 경향이 팽배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교회에서도 과학에 대한 전문성이 요구된다. 과학주의 무신론자들이 과학이 무신론의 증거라고 주장할 때 그들의 논리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과학자들이다. 전문성을 가진 과학자들이 침묵한다면 한국교회의 지성적 토대는 튼튼해질 수 없다.172-173p

자연적 방법은 신의 섭리가 아닌가?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방법은 기적에 국한되지 않는다. 자연세계를 보면 하나님은 자연법칙을 통하여 창조하고 섭리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과학은 자연을 다룬다. 자연은 사람의 힘이 가해지지 않은, 저절로 일어나는
일을 뜻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과학으로 설명되는 자연현상이 왠지 신을 배제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중력에 따라 스스로 운행되는 행성의 운동이나 스스로 자기복제를 하는 세포나 자연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종의 분화도 비슷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가 확연하게 보이지 않고 과학으로 검출되지 않더라도 이 모든 자연현상은 하나님의 섭리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이자 고백이다179,183p

기적 안에 하나님을 구하다
경쟁사회를 헤쳐나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기적을 바란다. 미래가
걱정되기도 하고 경쟁이 힘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복음의 진보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강권적인 일하심과 기적을 구하기보다는 내가 조금 더 편안히 살고자 다른 사람을 누르고 1등을 하고자 기적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심정은 충분히 이해된다. 그러나 비스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 그들의 눈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전능한 신을 빽으로 삼아 반칙을 저지르는 사람들로 보인다. 자신의 영달과 목적을 위해 신을 이용하는 반칙자로 보인다. 내일로 다가온 시험을 앞두고 우리는 이렇게 기도한다. 오늘 하루 갑절의 능력을 주셔서 1등 하게 해달라고. 그렇다면 일주일전부터 열심히 노력한 다른 사람은 뭐가 되는가?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에게만 갑절의 능력을 준다면 그것은 공평한 일일까?사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기적들을 잘 베풀어주시지 않는다. 왜 그럴까? 우리가
믿는 신이 전능하지 않기 떄문일까? 그렇지 않다. ... 하나님은 고난과 어려움의 상황에서 우리를 들어올려 피난처로 옮기실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분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는 우리 곁을 묵묵히 지키며 우리를 격려하시는 분이다. 물위를 뛰게 만들어서 1등 하도록 만드는 분이 아니라 힘든 삶의 여정 속에서 내가 지칠 때마다 나를 위로하시고 옆에서 동행하시는 분이 바로 성경이 제시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184-185p

하나님의 질서 있는 자연법칙이야말로 기적이다
기적에 관한 이해하기 쉬운 설명으로는 C.S.루이스의 <기적> (홍성사, 2008) 을 권한다. 8장에는 자연법칙과 기적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188p

주일학교를 떠나겠다는 선언
학교에서 배운 과학과 교회에서 배운 성경이 서로 모순된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에게는 과학이 신앙을 흔드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도대체 이런 심각한 상황은 어디서 기원할 걸까? 한 가지 이유는 성경을 읽는 방법을 제대로 훈련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경의 저자가 의도하지도 않은 내용까지 성경에서 읽어내려고 하거나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주시려는 메시지가 아닌 내용까지 성경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심각한 오류에 빠질 수 있다. 210p

과학이 옳다고 하면 왠지 기독교 신앙을 버리는 느낌이다. 반면에 창조과학이 옳다고 하면 왠지 과학을 부정해야 할 듯하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이 문제를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이다. 물론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거나 구원의 핵심에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며 애써 외면할 수도 있다. 만일 이 문제가 독자 여러분에게 구원의 핵심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앞에서 제시한 일화에 등장하는 아이처럼 주일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할지도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문제는 구원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지구의 연대 문제가 어떤 살마에게는 기독교 신앙을 지킬 것인가 혹은 버릴 것인가를 결정하는 심각한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216p

지구의 연대에 관한 혼란
지구의 연대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 왜 중요한지 정리해보자. 첫째, 과학이 걸림돌이 되어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을 버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기 위해서다. 둘째, 비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지 않도록, 복음의 진보를 위해서 우리는 이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220p

창조과학자들은 탄소연대측정법을 비롯한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
결과들도 인정하지 않는다.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이란 다양한 원소들이 시간에 따라 동위원소가 반감되는 원리를 이용하여 생성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으르 말한다. 지질학뿐만 아니라 자원 탐사를 비롯한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사용되는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이 부정확하다고 부정하는 것은 사실 음모론에 가깝다. 창조과학자들이 젊은 지구론을 주장하기 위해 기존의 과학을 공격해온 역사를 보면 놀랄만한 편집과 왜곡의 역사가 존재한다. 심지어 유명한 지질학자도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에 오류가 있음을 인정했다고 왜곡한다. ... 그러나 실제로 라우프가 쓴 논문을 찾아보면 인용된 글 다음에 바로 연대측정 결과가 부정확한 이유가 누출이나 오염 등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석의 연대측정법으로 방사성동위원소 측정법이 정확하고 신뢰할 만하다고 결론을 내린다....
라우프는 오염이나 누출의 문제가 있는 경우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의 결과는 신뢰할 수 없지만 그런 문제들을 잘 피하면 방사성동위원소 측정법은 과학적 방법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런데도 창조과학자들은 라우프가 언급한 핵심 결론은 빼버리고 마치 연대측정법의 전문가가 그것의 오류를 인정했다는 식으로 인용한다. 229p
과학의 발전과 성경 해석의 변화
성경은 믿을 수 있지만 과학은 믿을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은 그래서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 성경 자체와 나의 성경 해석 사이에는 간극이 있기 때문이고 나의 성경 해석도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이나 성경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경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성경 해석이 변하는 것도 성경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장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만큼 성경이 원래 의미하는 메시지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앙의 성숙을 뜻한다.271-272p

성경은 "누가" 창조주이고 "누가" 구원자인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반면에 자연이라는 책은 창조주가 "어떻게" 우주를 창조하고 섭리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 과학연구를 하는데 성경을 더 중요한 수단으로 삼고 자연을 보조적 수단으로 삼는다면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다. 그런 잘못된 주장을 하는 분들도 실제로 자기 삶에서는 아이의 기도가 막히거나 주택매매에 관한 질문이 있거나 수영을 배울 때 성경보다 관련 서적들을 읽을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283p

창조를 이해하는 틀
역사가 보여주는 이런 과정들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까? 가장 중요한 점은 당대의 과학을 기독교 신앙과 너무 강하게 결합하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과학은 주로 자연현상의 인과관계를 다룬다. 즉 하나님이 어떻게 창조하셨는지 창조의 방법을 주로 다룬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와 창조신학은 특정한 창조 방법 자체에 좌우되지 않는다.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창조했든 자연적 방법을 통해 창조했든 간에 하나님이 창조주가 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천동설 방식으로 태양계를 만들었든 혹은 지동설 방식으로 태양계를 만들었든 그것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주요한 메시지가 아니다. 성경은 누가 창조주인가에 초점을 두고 있으며 그 핵심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기 위해 계시된 것이다.338p

하나님은 평범한 우리를 사랑하신다. 비록 우리가 보잘것없어도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사랑하신다. 우리가 특별한 이유는 무언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거꾸로 평범한 우리를 하나님이 사랑해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특별한 존재로 탈바꿈하는 것이다.창조주 하나님이 인간을 선택하여 언약관계를 맺고,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면서 인간은 참 인간이 되었다는 존 스토트의 관점, 즉 "호모 사피엔스에서 호모 디비누스"로의 변화는 참 의미심장하다. 3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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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우종학 저 | 새물결플러스 | 2017년 0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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