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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스미는 : 영미 작가들이 펼치는 산문의 향연 - 버지니아 울프 등
≫ 글쓴이 : 앤셜리 ≪

마크 트웨인, 찰스디킨스, 버지니아 울프, 조지 오웰, 윌리엄 포크너, 도로시 세이어즈 등
영미 작가들의 에세이를 모아놓은 책.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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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녹스빌:1915년 여름 - 제임스 에이지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 동네의 저녁이다.
저녁 식사는 여섯시였고 사십 분 후면 끝났다. 아직 햇빛이 남아 부드럽고 흐릿하게 조개 속껍질처럼 반짝였고 그 흐릿한 빛 속에서 모퉁이 탄소등이 켜지고 메뚜기가 울기 시작하고 반딧불이가 날아다니고 이슬 맺힌 풀밭에 개구리 몇 마리가 팔딱거릴 무렵 아버지들과 아이들이 밖으로 나왔다. 아이들이 먼저 무작정 서로 별명을 외치며 달려 나가고 나면 십자멜빵을 맨 아버지들이 한가로이 뜰로 내려섰다. 옷깃을 풀어헤친 아버지들의 목이 길고 수줍어보였다. 어머니들은 부엌에 남아 그릇을 씻고 말리고 치우며 평생 반복되는 꿀벌의 여행처럼 흔적없는 자신의 발자국을 되밟고 아침에 먹을 코코아 가루를 계량해두었다. 앞치마를 벗고 어머니들이 밖으로 나오면 치마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어머니들은 현관 베란다 흔들의자에 말없이 앉았다.
내가 지금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의 저녁놀이가 아니라 아이들의 놀이와는 거의 관계없는 그 시대의 분위기이다. 가족의 아버지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각자 자기 공간인 잔디밭에서 부자연스러운 조명 아래 물고기처럼 창백한 셔츠를 걸치고 거의 다를 것 없는 얼굴로 호스로 물을 뿌리는 아버지들. 호스는 집집마다 벽돌 기반 위로 튀어나온 수도꼭지에 연결돼 있었다. 호스 주둥이를 조정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대개 길고 상쾌하게 물을 분사할 수 있게, 손에 쥔 주둥이에서 물이 나와 오른팔과 걷어붙인 소맷부리로 똑똑 떨어지다가 쉿 하고 길고 느슨하고 낮게 구부러지는 원뿔을 그리며 너무도 부드러운 소리를 내도록 조정된다. 처음에는 미치광이 같은 격력한 소리, 다음에는 여전히 음을 고르는 불규칙한 소리, 그러다가 고른 소리로 가라앉으며 여느 바이올린처럼 물줄기 크기와 모양에 따라 정확히 조율된 음을 연주한다. 아주 다양한 음색이 하나의 호스에서 나온다. 아주 다양한 음색의 합창이 소리가 들리는 곳에 있는 여러 호스에서 나온다. ... 새로 가세한 호스가 거센 콧김으로 방점을 찍고 호스 주둥이를 장난스럽게 놀리는 몇몇 남자들이 꾸밈음을 연주하며 어느 한 호스라도 멈추면 하느님이 참새 한 마리도 잊지 않으시듯 빈자리가 남는다.
...
그러나 남자들은 이제 하나씩 호스를 끄고 물을 빼어 돌돌 만다. 이제 두 사람만, 이제 한 사람만 남았다. 소매 멜빵을 한, 유령 같은 셔츠가 혼자 남았다. 캄캄한 초원에서 고개를 들고 우리가 있는지 묻는 몸집 큰 가축의 얼굴처럼 점잖게 의아해하는 그의 순한 얼굴이 보인다. 그 역시 사라진다. 이제 사람들이 현관 앞 베란다에 앉아 부드럽게 의자를 흔들며 부드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거리를 쳐다보고 자기들 영역에 서 있는 나무들, 새들의 매달린 천국, 새들의 격납고를 쳐다볼 시간이다.
...
거칠고 축축한 뒤뜰 풀밭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퀼트를 펼쳤다. 우리 모두 그곳에 눕는다. 엄마, 아빠, 삼촌, 이모 그리고 나도 그곳에 눕는다. 처음에 우리는 앉아 있었는데 그러다 한 사람이 눕자 모두 따라 누웠다. 엎드리거나 옆으로 눕거나 등을 대고 눕는다. 그들은 말이 많지 않고 조용히 이야기한다. 별로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 전혀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 아무 이야기도 아닌 이야기, 별들은 드넓고 살아 있다. 별 하나하나 달콤한 미소처럼, 매우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가족 모두 나보다 크고 잠자는 새의 목소리처럼 부드럽고 의미없게 조용히 말한다. 한 사람은 화가, 삼촌은 집에서 산다. 한 사람은 음악가, 이모는 집에서 산다. 한 사람은 내게 다정한 우리 엄마, 한 사람은 내게 다정한 우리 아빠. 어쩌다 여기에 그들이 있다. 모두 이 지상에. 이 지상에 있는 슬픔을, 여름 저녁 밤의 소리에 둘러싸여 퀼트 위에 누워있는 슬픔을 누가 말할까? 우리 가족을, 우리 삼촌을, 우리 이모를, 우리 엄마를, 우리 착한 아빠를 하느님이 축복하시길. 아, 그리고 그들으르 친절하게 기억하시길. 그들이 어려운 시간에도, 그들이 떠난 시간에도.
34-39p

오버롤스 작업복 - 제임스 에이지
이 실용적인 주머니들의 복잡한 솔기는, 이중삼중으로 꿰맨 실이 여전히 하얄 때는, 진한 옷감을 배경으로 무척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따라서 새로 구입한 오버롤스 작업복의 아름다움으로 청사진 같은 아름다움을 꼽을 수 있다. 그것은 일하는 남자의 지도이다.
...
늙은 오버롤스는 몸의 돌출된 부위에는 달라붙어 평화롭게 잠들고 무릎 아래처럼 헐렁하게 걸쳐지는 곳은 축 늘어지고 흐트러져서 형태를 잃고 주름이 지는데 아마 어떤 조각가도 표현한 적 없는 모습일 듯하다. 색깔은 대단히 희미해지고 퇴색해서 파랑색보다는 주택의 목재와 천재의 얼굴에 빛나는 광채처럼 매우 잔잔한 은빛으로 보인다. 색깔과 천이 아주 오랜 세월과 경험을 거친 것처럼 편안해 보이고 존재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것도, 형태가 잠들고 떠밀려 다니는 것도 인내하는 듯 보인다. 어깨는 앞에서 말했던 꿰맨 눈송이의 그물로 완전히 덮였다. 단추는 백내장처럼 눈이 멀고 헐거워진 구멍에서 미끄러진다. 엉덩이 전체와 무릎, 팔꿈치는 해지고 천 조각이 덧대어졌는데 덧대진 천 조각도 원래 옷감과 더불어 나이가 들고 부드러워지다가 어깨의 깃털에 점점 가까워진다.
43, 46p

어린 시절의 고통 - 토머스 드 퀸시
눈부시게 쏟아지는 햇빛에서 나는 시체 쪽으로 몸을 돌렸다. 사랑스러운 아이의 형체가 누워 있었다. 천사 같은 얼굴이 있었다. 사람들이 흔희 생각하는 대로 누나의 모습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들 집안 사람들은 이야기했다. 정말 변하지 않았나? 이마는, 침착하고 고귀한 이마는, 진짜 똑같을지 몰랐다. 하지만 얼어붙은 눈꺼풀, 그 눈꺼풀 아래 몰래 번진 어둠, 대리석 같은 입술, 고통을 끝내달라고 거듭 탄원하는 것처럼 손바닥을 맞댄, 뻣뻣해진 두 손, 이런 것들을 생명으로 착각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나는 왜 그 천상이 입술로 달려가 눈물을 흘리며 영원히 입 맞추지 않았을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한동안 나는 움직이지 못했다. 두려움이 아니라 위압감이 나를 덮쳤고 그렇게 서 있는 동안 엄숙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귀가 들었던 것 중 가장 애절한 바람이. 애절하다! 그 말로는 조금도 그 바람을 표현할 수 없다. 그것은 백세기 동안 필멸의 들판을 휘몰아친 바람이었다. 나는 그 뒤로도 여러 번 여름 날, 태양이 가장 뜨거울 때 그날과 똑같은 바람이, 그날과 똑같이 공허하고 엄숙하게, 멤논처럼, 그러나 성스러게 부는 소리를 느꼈다. 그리고 평생 동안 나는 어쩌다 보니 똑같은 소리를, 똑같은 상황에서, 곧 여름날 열린 창문과 주검 사이에 서서 세 번 들었다.
52-53p

윌리엄과 메리 - 맥스 비어봄
1899년 4월 내가 그들 집에 머물 때 첫 날 밤 둘만 남게 되자 윌리엄이 새 소식을 알려주었다. 사실 그날 저녁 내내 나는 뭔가 조금 달라진 점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메리가 더 쾌활했다가 덜 쾌활했다가 했고 어딘지 모르게 달라지고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는 듯 느껴졌다. 윌리엄은 일이 잘 풀리면 9월에 아이가 태어난다고 말했다. "메리는 무척 행복해해." 그러고 보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물론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좋은 일이지." 그가 곧이어 덧붙였다. "아들이나 딸을 갖는 거 말이야." 나는 그에게 아들이 좋은지 딸이 좋은지 물었다. "아, 어느 쪽이든." 그는 힘없이 대답했다. 분명 불안하고 두려운 듯했다. 나는 그런 감정을 떨쳐내라고 그를 애써 설득했다. 다행히 윌리엄은 그런 불안과 두려움을 메리에게는 내보이지 않았다. 메리는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명은 메리의 아이를 태어난 지 한 시간 만에 앗아갔고 메리도 함께 데려갔다.
...
윌리엄과 메리가 자주 떠오르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다가 더 자주 떠오를 때도 있다. 특히 작년 늦가을에는 두 사람이 자꾸 떠올랐다. 내가 머물던 숙소 가능 길에 지나치는 작은 기차역 이름을 보면 늘 두 친구의 이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
메리의 오두막이 여전히 있었다. 윌리엄과 메리의 오두막. 오두막을 바라보고 서서 나는 분명 진부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인간사의 무상함이야 조금도 새로울 게 없지만 나처럼 어느 정도 나이 든 후에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차가운 햇살 아래 길고 젖은 풀과 잡초가 무성한 작은 황야에 서서 떠난 이들을 떠올릴 때는 이런저런 느낌이 많을 수밖에 없다
73, 75p

삶의 리듬 - 앨리스 메이넬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최소한 운율은 있다. 생각의 궤적을 따라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복되는 주기성이 마음의 경험을 지배한다. 거리는 가늠되지 않고, 간격은 측량되지 않으며, 속도는 확실치 않고, 횟수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도 되풀이되는 것은 분나 지난 해 마음이 겪었던 것을 지금은 겪지 않으나 다음 주나 다음 해에 다시 겪을 것이다. 행복은 사건에 달려 있지 않고 마음의 밀물과 썰물에 달려 있다. ... 해결되지 않은 무거운 근심조차 잠시나마 마음의 평화를 허락한다. 후회도 머물지 않는다. 되돌아온다. 즐거움은 불시에 우리를 찾아온다. 즐거움의 궤도를 눈여겨봤다면 길목에서 기다릴 수도 있었을 텐데, 갑자기 발견하지 않고 예상했을 텐데. 아무도 그 길을 눈여겨 보지 않는다. 내면 관찰자들의 일기는 케플러의 주기 같은 것을 밝혀낸 적이 없다. 그러나 토마스 아 켐피스는 주기를 측량하지는 못했지만 주기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는 수도원 독방에 원소들과 함께 혼자 앉아 고통의 심연에서도 견뎌낼 힘을 찾을 수 있음을 깨달았고, 기쁨이 다가올 때 영혼을 자제시키는 기억이 있음을 배웠다.
...
사람은 삶의 주기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거나 늦게, 너무 늦게 깨닫는다. 왜냐하면 경험이 쌓여야 알 수 있는 문제인데 누적된 증거가 없는 탓이다. 삶의 후반기에 이르러서야 주기성의 법칙을 확실히 깨닫게 되고 어떤 것이 지속되리라는 희망이나 두려움이 없어진다. 젊은이의 슬픔이 너무도 절망에 가까운 것은 젊음의 무지 때문이다. 젊은 시절에 위대한 성취를 꿈꾸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삶은 너무나 길어 보이고, 너무도 많은 것을 담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삶에 필요한, 삶이 가져야만 하는 그 모든 간격-열망과 열망, 행동과 행동 사이의 간격, 잠을 위해 멈추는 시간들처럼 피할 수 없는 멈춤들-을 모르기 때문이다. 또한 숨 돌릴 휴지기가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 불행한 젊은이에게 삶이란 불가능해 보인다. 사람의 일에는 밀물과 썰물이 있다는 셰익스피어의 구절에 더 미묘한 뜻이 있다는 것을-감히 셰익스피어의 말에 의미를 덧붙이자면-깨닫는다면 마음에 평화가 있으리라.
81, 85p

두꺼비에 대한 몇 가지 생각 - 조지 오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누구든 돈 한 푼 내지 않고도 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누추한 거리에도 봄은 이런저런 신호를 보낸다. 굴뚝 사이로 보이는 파란 하늘이 더 파래지기도 하고 공급 폐허에 남은 한 그루 딱총나무에 새기 있는 초록 싹이 돋기도 한다.
...
봄을 비롯한 계절의 변화를 보며 즐거워하는 일이 위험한가? 더 정확히 말해 우리 모두 자본주의 체제의 족쇄에 묶여 신음하거나, 어쨌든 신음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래하는 검은 새나 노랗게 물든 시월의 느릅나무처럼 돈 한 푼 들지 않을뿐더러 좌파 신문 편집장들이 계급 관점이라 부를 만한 게 없는 자연 현상 덕택에 삶이 종종 살 만하다고 말한다면 정치적으로 비난받을 일인가? 분명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 내 경험에 따르면 내가 기사에서 "자연"을 호의적으로 언급하기만 해도 비난 편지가 날아온다. 대개 이런 편지들의 키워드는 내 글이 "감상적"이라는 것이지만 두 가지 생각이 섞여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실제 삶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그게 무엇이든 일종의 정치적 침묵을 조장한다는 생각이다. ... 다른 하나는 이제 기계의 시대가 닥쳤으므로 기계를 싫어하거나 심지어 기계의 지배를 제한하려는 시도는 퇴보적, 반동적이며 조금 우스꽝스럽게 보인다는 생각이다.
...
돌아오는 봄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이 노동이 절감된 유토피아에서 행복할 이유가 있을까? 그 사람은 기계 덕택에 생긴 여가 시간에 무얼 할까? ... 우리가 어린 시절 사랑했던 나무와 물고기, 나비 그리고 두꺼비 같은 것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다면 평화롭고 만족스러운 미래가 조금 더 가능해질 것이며, 강철과 콘크리트만 떠받들라고 가르친다면 우리 인류는 남아도는 에너지를 서로 증오하고 지도자를 숭배하는 일에 쏟아붓게 되리라 나는 믿는다.
96-99p

산처럼 생각하기 - 알도 레오폴드
어미 늑대가 있는 곳으로 내려간 우리는 늑대의 눈에서 맹렬한 초록 불꽃이 사그라지는 걸 보앗다. 그 눈동자에는 내가 처음 보는 무엇이 - 그 어미 늑대와 산만 알고 있는 - 있었다. 나는 그날 이후 내내 그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때 나는 젊었고 방아쇠를 당기고 싶어 좀이 쑤셨다. 늑대가 적어질수록 사슴이 많아질테니 늑대가 없는 세상은 사냥꾼 천국이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초록 불꽃이 꺼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늑대도 산도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104p

소나무의 죽음 -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처음에 나무는 얼마나 장엄하게 기우는지! 마치 살랑거리는 여름 바람에 흔들릴 뿐이라는 듯, 한숨 한번 쉬지 않고 원래 있던 공중으로 되돌아오려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제 나무는 산비탈에 퍼덕 바람을 일으키며 계곡의 안식처에, 결코 일어나지 않을 그곳에 깃털처럼 부드럽게 드러눕는다. 전사처럼 초록 망토를 두르고서 마치 서 있는 일에 지쳤다는 듯 고요한 기쁨으로 땅을 끌어안고, 자신을 이루던 원소들을 흙을 되돌려 보낸다. 그러나 귀 기울여보라! 당신은 보기만 했지 듣지 않았다. 이제 귀청을 울리는 쿵 소리가 이곳 벼랑까지 울리며 나무도 신음소리 없이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린다. 나무는 땅을 덮쳐 끌어안고 자신을 이루던 요소들을 흙과 뒤섞는다. 그리고 이제 모두 다시 영원히, 눈도 귀도 고요해진다.
110-111p

구불구불한 길 - 힐레어 벨록
구불구불한 길은 사람을 결코 지치게 하지 않는다. 길마다 성격이 있고 영혼이 있다. 이 길에서 저 길로 걸어 다니다 보면 많은 사람과 함께 여행하거나 여러 친구와 어울리는 기분이 든다.
133p

용서 - 도로시 세이어즈
프랑스 작가 라 로슈푸코가 잘 지적했듯 우리가 이미 상처를 입힌 상황에서는 기억해두면 도움이 될 만한 생각이 있다. 용서가 배상금을 지불하느냐, 지불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와 반드시 관련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용서의 목표는 자유로운 관계의 정립이다. 자유로운 관계는 상호 비난 속에서도, 어느 쪽이 더 피해를 입었는지 세세히 따지는 과정에서도 자랄 수 없다. 양쪽이 똑같이,
즉시 뉘우친다면 서로 즉시 용서하는 것이 정당한 관계일 것이다.
...
다른 사람들-모두 대단히 신분이 높은-은 예수가 가진 눈부신 치유의 힘을 정면으로  모두 보고도 악마라 말했다. 그것은 용서받을 여지가 없는 근본적인 타락이다. "마음이 너무 굳어버려서" (철창에 갇힌 사내가 말했다)  "뉘우치지 '못하게'"된 타락이다.
161-162, 164p

어떤 질문 - 리처드 라이트
남자는 그렇게 긴 설명을 바라진 않았겠지만 나는 우리 사이에 무시무시하게 입을 벌린 부끄러운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길게 말했다. 비현실적인 대화를 남부의 견고한 현실로 끌어내리고 싶었다. 물론 그 대화는 현실적이었다. 내가 잘 먹고 사는지 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물음은 내가 평생 알고 있던 어두운 공포를 환한 대낮으로 끌어냈다. 북부에서 온 그 백인은 자기가 얼마나 위험한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다른 백인이 매장에 들어왔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180p
 
서문 - 윌리엄 포크너
어느 날 문득 거의 잊고 지내던 한 폴란드 작가에게 언제나 답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람의 마음을 북돋는 것. 글 쓰는 사람 모두 마찬가지다. 예술가가 되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가벼운 오락거리를 쓰는 사람도, 충격을 주기 위해 쓰는 사람도, 자신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쓰는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다.
184p

 애서가는 어떻게 시간을 정복하는가 - 홀브룩 잭슨
책 읽기 좋을 때는 아무 때나다. 아무 도구도 필요없고 시간과 장소를지정할 필요도 없다. 책 읽기는 낮이든 밤이든 어느 시간에든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이다. 책 읽을 시간이 있고, 책을 읽고 싶을 때가 바로 책 읽기 좋은 시간이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건강하거나 아프거나 책은 읽을 수 있다. 이유 없이 도는 사소한 연상 작용으로 문득 책이 읽고 싶어질 때가 있다.
...
찰스 램은 여름에는 책을 많이 읽지 못한다고 했다. 시를 읽을 때는 쌀쌀한 날 촛불을 켜고 읽는 걸 좋아했다.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난 걸출한 자들과 시간을 보내니 겨울밤이 얼마나 즐거운가!'
요즘에도 이런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겨울이 일년 중 책 읽기에 특히 좋은 시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겨울에 시와 수필을 읽으면 한층 더 기분이 좋다. 바깥은 온통 춥고 습한데도 우리는 푸른 잔디와 꽃이 만개한 나무, 봉오리 맺힌 꽃, 파란 하늘의 세상으로 순간이동할 수 있으니 말이다.
...
이 모든 의견 하나하나가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애서가들은 "책을 막 사서 집에 들고 온 때만큼 책 읽기에 좋은 때는 없다." 는 윌터 롤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220, 227p

나의 이탈리아어 독학기 - 마크 트웨인
그들은 내게 이탈리아어로 말하고 나는 영어로 대답한다. 나는 그 사람들 말을 못 알아듣고 그 사람들은 내 말을 못 알아듣는다. 그러니 서로 해로울 게 없고 모두 만족스럽다. 공정해지려는 노력으로 내가 어쩌다 주워들은 이탈리아 말을 대화에 덧붙이면 사람들 반응이 좋다. 나는 아침 신문을 읽으며 알게 된 단어를 써 먹는다. 단어가 신선할 때 써야지 그렇지 않으면 이곳 기후에서 쉽게 상해버린다. 해질 녘이면 희미해지기 시작해서 다음 날 아침이면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괜찮다. 아침을 먹기 전에 신문에서 다시 새로운 단어를 배워 머리에서 사라지기 전에 집안 일손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
...
나무와 꽃에 둘러싸여 아늑하고 적막한 이곳에서 꿈꾸듯 첫 주를 보내는 동안 나는 바깥소식을 듣지 못했다. 나는 그런 생활이 꽤 마음에 들었다. 신문을 마지막으로 본 지 4주기 지나니 삶에 새로운 매력과 우아함이 깃들고 진짜 기쁨에 가까운 느낌이 가득 차오르는 듯 했다. ... 그래서 엄격하고 제한된 뉴스 다이어트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이탈리아 신문을 훑어봤다. 이탈리아 신문을, 오직 이탈리아 신문만 읽을 작정이었다. 말 그대로 신문만, 사전도 찾지 않고 읽기로 했다.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과식과 소화불량을 막을 수 있을 터였다.
...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신문을 읽는 일에는 다른 일에서 맛볼 수 없는 큰매력이 있다. 우리는 신비하고 불확실한 것에 늘 매력을 느끼기 마련이다. 무엇을 읽어도 뜻을 전적으로 확신할 수 없다.  ... 뜻이 분명치 않은 단어 하나가 차갑고 실용적인 확실성을 지닌 문단 전체에 몽롱한 금빛 불확실성의 베일을 드리우기도 한다. 저속하고 흔한 사건이 그 한 단어 덕택에 매혹적이고 아름다운 미스터리에 둘러싸이게 된다. 당신이라면 그 우아한 단어이 의미를 확실히 알아내기 위해 사전을 끄집어내겠는가? 그 단어를 마땅히 반기겠는가?
243, 245, 251p

마슈하드 가는 길 - 로버트 바이런
운전사는 차에서 펄쩍 뛰어내리더니 탈영병들을 붙잡고는 그들이 살려달라고 끙끙거릴 때까지 주먹다짐을 벌인 끝에 버스로 다시 끌고 왔다. 탈영을 주도했던 사내가 내 옆자리에 다시 앉으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팔짝 뛸 차례였다. 나는 그 사내를 내 옆에 앉힐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사내는 내 손을 붙들어 까칠까칠하고 침 묻은 자기 턱수염에 갖다 대더니 온통 입맞춤을 퍼부어대는 게 아닌가. 내가 거칠게 떠미는 바람에 사내는 대자로 나가떨어졌고 나느 반대쪽으로 펄쩍 뛰어내려 이제는 기진맥진해서 정신이 몽롱해진 비참한 운전사에게 그 사내와 더 이상 접촉하느니 마슈하드까지 내 발로 걸어가겠노라고, 내 주머니에 든 버스 요금도 주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그러자 여자들이 이번에는 그 사내에게 소리를지르며 악담을 퍼부었다. 사내는 풀이 죽은 채 뒤 칸으로 끌려갔다. 우리는 포차라도 박살낼 듯한 속도로 신성한 도시 마슈하드로 출발했다.
운전사와 나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우리는 웃었다.
258-25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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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삶이 늘 시적이지는 않을지라도
버지니아 울프, 「나방의 죽음」
F. 스콧 피츠제럴드, 「잠과 깸」
제임스 에이지, 「녹스빌: 1915년 여름」
제임스 에이지, 「오버롤스 작업복」
토머스 드 퀸시, 「어린 시절의 고통」
윌리엄 포크너, 「그의 이름은 피트였습니다」
맥스 비어봄, 「윌리엄과 메리」
앨리스 메이넬, 「삶의 리듬」

2 내가 바람이라면
존 버로스, 「철새들의 행진」
조지 오웰, 「두꺼비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알도 레오폴드, 「산처럼 생각하기」
알도 레오폴드, 「내가 바람이라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소나무의 죽음」
마저리 키넌 롤링스, 「돼지 빚을 갚다」
힐레어 벨록, 「구불구불한 길」

3 어떤 질문
조지 오웰, 「마라케시」
버지니아 울프, 「야간 공습 중에 평화를 생각하다」
도로시 세이어즈, 「용서」
리처드 라이트, 「살아 있는 짐 크로우의 윤리」
리처드 라이트, 「어떤 질문」
윌리엄 포크너, 「서문」

4 소소하고 은밀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색깔 없는 것은 1페니, 있는 것은 2페니」
G. K. 체스터튼, 「장난감 극장」
제임스 서버, 「제임스 서버의 은밀한 인생」
홀브룩 잭슨, 「애서가는 어떻게 시간을 정복하는가」
오스카 와일드, 「읽을 것이냐, 읽지 않을 것이냐」
케네스 그레이엄, 「행복한 여백」

5 길 위에서
마크 트웨인, 「나의 이탈리아어 독학기」
로버트 바이런, 「마슈하드 가는 길」
찰스 디킨스, 「덜보로우 타운」
찰스 디킨스, 「베로나」
메리 헌터 오스틴, 「걷는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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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스미는 : 영미 작가들이 펼치는 산문의 향연
버지니아 울프 등저 / 강경이, 박지홍 편 / 강경이 역 | 봄날의책 | 2016년 09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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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5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뭐지? - 마스다 미리 앤셜리 2019-02-07 113
484 다이고로야 고마워 - 오타니 준코 앤셜리 2019-02-07 86
483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 우종학 앤셜리 2018-06-02 213
482 나를 부르는 숲 - 빌 브라이슨 앤셜리 2018-05-04 189
481 내 영혼의 자서전 - 알리스터 맥그래스 앤셜리 2018-05-04 130
480 천천히, 스미는 : 영미 작가들이 펼치는 산문의 향연 - 버지니아 울프 등 앤셜리 2018-05-04 219
479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 로버트 뱅크스 앤셜리 2018-05-04 364
478 아무튼 서재 - 김윤관 앤셜리 2018-05-04 329
477 믿음이란 무엇인가 - 알리스터 맥그라스 앤셜리 2018-05-04 151
476 채소의 인문학 - 정혜경 앤셜리 2018-05-04 263
475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싶다 : 성호사설 선집 - 이익 앤셜리 2018-05-04 125
474 세상의 마지막 밤 - C. S. 루이스 앤셜리 2018-05-04 108
473 무명배우, 10문장으로 영어 강사 되다 - 김번영 앤셜리 2018-05-03 894
472 토종 씨앗의 역습 - 김석기 앤셜리 2018-05-03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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