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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자서전 - 알리스터 맥그래스
≫ 글쓴이 : 앤셜리 ≪

알리스터 맥그라스 교수님의 간증문 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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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하나님
우리가 이해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_히포의 어거스틴
41p

깨달음의 창이 되는 말씀묵상
시편 기자는 "또 주의 모든 일을 작은 소리로 읇조리며 주의 행사를 낮은 소리로 되뇌이리이다" (시 77:12) 라고 고백하지 않았던가? 불교와 기독교의 묵상은 분명하게 다른 점이 있다. 특정 불교 명상학파는 사람들에게 마음의 번뇌를 모두 비운 뒤 무엇이든 마음속에 떠오르는 것에 생각을 집중하도록 가르친다. 반면 그리스도인의 묵상이란 마음의 모든 잡념을 버린 뒤 성경의 이미지(예컨대 하나님이 목자라는 이미지) 나 성경 본문에 생각을 집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성경에 근거한 믿음의 묵상은 점점 이미지에 생명을 불어넣어서 성경의 계시를 새로운 차원에서 만나게 해 준다.
예컨대 복음서 기사를 읽을 때, 나는 내가 마치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그날의 사건을 목격하는 것처럼 상상한다. 그러면 복음서 기사가 새로운 감격으로 다가온다. 또 성경에 나 자신을 대입하려면  정신적 노력을 많이 해야 했는데, 그만큼 묵상을 통해서 깨달은 말씀을 훨씬 더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 루돌프의 방법에 힘입어 나는 성경 기사의 다양한 중심인물들 곁에 서서 그들의, 그리고 나의 눈앞에 펼쳐지는 인간 구속의 드라마에 동참할 수 있었다.
이런 절차를 통해서 내 기도 생활은 말할 수 없이 풍성해졌다. 나는 성경을 단순히 개념으로만 받아들이고 읽던 습성을 벗어나게 되었다. 내 신앙의 기초가 된 역사적 사건들을 상상 속에 재현하게 되면서, 나는 그 속의 일부가 되어 말씀이 주는 도전과 격려를 받기 시작했다.
51-52p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 수련(Spiritual Exercieses)>(1548)
58p

존 스토트의 고독 훈련법 : 한 달에 하루 조용한 날 만들기
'그러던 무렵 윌킨슨 목사의 강연을 들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한 달에 하루씩 조용한 날을 내십시오. 가능하다면 전혀 방해가 없는 시골로 가십시오. 뒤로 물러서 앞을 내다보며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생각하십시오. 하나님의 심정과 시각에 사로잡히십시오. 매사를 그분의 눈으로 보려 하십시오. 여유를 가지십시오!" 나는 그대로 했다. 집에 돌아가 당장 수첩에 매달 하루씩 '조용한 날'의 표시로 Q자를 적어 놓았다. 그날을 즐기기 시작하자 그동안 그토록 버거었던 짐을 벗을 수 있었고, 그 짐으느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았다. 이 조용한 날들이 내 삶과 사역에 가져다 준 축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_존 스토트
86p

미래의 불안감을 극복하는 비밀
불안이랑 근본적으로 믿음이 부족한 상태다. 우리의 미래가 하나님의 손안에 안전히 놓여 있음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어떻게든 하나님을 재촉하고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듯 행동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앞장서서 자기 미래의 비전을 세우고 추구하기에 바쁘다. 그 밑바닥에는 모든 죄 가운데 가장 근본적인 죄가 깔려 있다. 바로 우리를 지으시고 구속하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다.
우리는 자신의 미래를 그리스도께 맡길 필요가 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한 우리의 불안을 그분께 맡겨야 한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며 살아야 할지 주님의 뜻을 정확히 알기 원하지만 그런 특권을 누리는 자는 거의 없다. ... 우리가 주님을 섬기려고만 한다면 주님은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그것을 취하여 복을 주실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직업을 가졌든 주님은 그분을 섬기는 일에 우리를 쓰실 수 있다.
91-92p

역동적 복종 :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의지적 결정
왜 나는 그와 똑같이 하지 못했던가? 염려할 정신적 에너지가 있다면 그것으로 마땅히 하나님을 더 잘 섬길 길을 (그분이 내게 처하게 하신 지금 이 상황에서) 찾아야 하건만 왜 나는 미래를 걱정했던가?
당신이 처한 자리가 어디든 하나님이 당신을 사용하실 수 있음을 믿어라. 그리고 하나님께 당신이 어디서 어떤 일을 하기 원하시는지 기도로 여쭈어라. 성경 말씀에서 생각의 방향을 찾아도 좋다.
93p

연약한 인간의 한계
대낮에 별을 보고 싶다고 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 눈은 한낮에는 별을 볼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한 기정사실이다. 어둠이 깔려야만 밤하늘의 어둠을 배경으로 희미한 별빛이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낮에도 별은 제자리에 있다. 다만 인간의 눈이 그 존재를 식별하지 못할 뿐이다.
그러나 밤이 되어 밝은 햇빛이 사라지면 우주 저 멀리서부터 캄캄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또렷이 반짝이는 깨알 같은 별빛을 볼 수 있도록 우리 눈이 조절된다. 별이 존재하는 데는 어둠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별을 보아 그 자리에 이씀을 확인하려면 바로 그 어둠이 필요하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우리 눈이 한낮에 별을 볼 수 없듯이 우리 마음도 하나님을 전부 지각할 수 없다. 인간이기에 보고 알고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한계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신앙 성장의 필수 요소다.
101p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우치는 실패의 상징물
베드로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회복했다. 회복과 소생의 필요성을 느낄 때 자신이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장소로 돌아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그곳은 내가 복음을 처음 들엇던 교회일 수도 있고 누군가 내게 그리스도를 젆내 준 방일 수도 있다. 특별한 장소는 우리의 신앙 여정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그 장소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
베드로가 다시 부름을 받은 사건은 개인적 실패의 상징물 곁에서 일어난다. 불을 보며 베드로는 자신이 그리스도를 실망시킨 순간을 떠올렸다. 우리도 그리스도를 실망시킨 순간을 떠올려 줄 물건을 하나쯤은 지니고 있다. 나한테 상처받은 사람의 사진일 수도 있고, 내 어리석은 행동이나 부주의한 말 때문에 벌어진 심각한 상황이 적힌 편지일 수도 있다. 자신의 실패를 깊이 인식할수록 우리는 다시 시작할 기회와 힘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엄청난 은혜를 절감하게 된다.
148-149p

그리스도의 능력의 상징물
그러나 과거의 실패에 대한 어두운 상징물과 더불어 우리는 그리스도의 능력과 임재의 상징물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물고기와 빵을 보면서 베드로는 주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을 떠올렸을 것이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아는 열쇠는 그분의 과거의 선하심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리스도의 선하심을 일깨어 줄 물건이 있으면 도움이 된다. 볼 수 있고 만질 수 이는 물건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런 기억을 일깨워 주는 가장 강력하고 감격스런 도구는 빵과 포도주일 것이다. 그리스도는 친히 빵과 포도주를 통해 자신을 기억할 것을 우리에게 명하셨다.
149p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하는 우리
신약 성경의 한 가지 중심 주제는 신기하게도 우리가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어두운 세상에 그분의 영광을 비춰 내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세상의 빛" (마 5:14) 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하는데, 왜냐하면 우리들은 "세상의 빛" (요 8:12) 이신 그분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계를 해와 달의 관계에 견주어 생각하는 것이 이 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어렸을 때 나는 아마추어 천문학에 늘 관심이 있어서 달과 행성과 별을 보려고 직접 작은 망원경을 만들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달이 사실상 죽어 있는 세계임을 깨달았다. 달이 밤하늘을 비출 수 있는 것은 태양 빛을 반사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달은 표면에 와 닿는 햇빛을 아주 조금밖에 반사할 수 없다.
그런데도 달은 사람들이 앞을 보며 집에 갈 수 있도록 밤길을 밝혀 줄 수 있다. 빛도 없고 자체적 힘의 원천도 없으면서 지구에 빛을 비출 수 있는 것은 달이 밝은 햇빛을 반사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달과 같다. 우리는 내놓을 만한 자체적 영광이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세상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비추는 특권을 받았다. 세상이 보고 반응할 수 있도록 말이다.
169-170p

열매 맺는 삶을 살고 싶다면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것이 그리스도께 쓰임 받는 필수 선결 조건이라는 점도 주목하기 바란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만 열매를 맺게 되어 있다. 그리스도를 섬기고 싶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아야 한다. 영적 친밀함은 별도의 선택 사안이 아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다른 봉사 활동에 우선순위를 내주면서 영적 친밀함이 없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이든 하려한다면 그분과의 인격적 관계를 가꾸는 것이야말로 꼭 해야 한다.
181p

차고 넘치는 은혜를 부으신다
나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던 1977년에 이 말을 처음 읽었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분의 은혜를 아는 것이다." _필립 멜랑톤
한동안 내 나름대로 느껴 왔던 일반 원리가 이 말속에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은 그분이 우리를 위해 이루신 일을 아는 것이다. 선물 주시는 분을 안다는 것은 그 선물을 아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을 묵상할 때 그것을 주시는 분의 후한 성품을 더 온전히 알 수 있다.
188p

우리는 그리스도가 가져다주시는 혜택만 좋아할 뿐,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은 꺼릴 때가 많다. 구원과 영생을 기쁘게 받으면서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217p

선물을 주신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도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때가 많다. 우리는 영생의 선물을 얼마든지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집중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그리스도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은 단순히 밖에 나가 사람들에게 전도하거나 중요한 교회 집회에 참석하거나 성경 공부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 뭔가 하고는 싶어 하지만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하시지는 않는다. 뭔가 그분한테서 받는 것은 즐겁지만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가꾸는 것은 싫어 한다. 뭔가 잘못됐다. 대단히 잘못됐다.
이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려면,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이루신 귀한 은혜를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분이 이루신 은헤를 묵상하느라 바빠서 정작 그분의 얼굴을 묵상하지 못하고 그분과 친해지지 못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그리스도의 인격과 혜택을 억지로 나누려고 한다. 둘을 분리하거나 서로 떼어 놓으려 해서는 안된다. 선물 주시는 분과 선물, 둘다를 사랑하는 것이 중요하다.
218-219p

한 문장의 묵상
다음에 소개하는 것은 그리스도가 당하신 인격적인 고통을 기억할 때 내가 주로 생각의 틀로 삼는 것이다.
그분은 이것을 나를 위해 하셨다. 나는 각 단어마다 생각이 명료해지도록 한마디씩 끊어 묵상을 반복하곤 한다.
219-220p

신앙 공동체의 중심이 되신 그리스도
나는 믿음의 공동체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축복을 맛보지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 디트리히 본회퍼의 <신도의 공동생활> 이라는 책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엇다. 특히 공동 기도와 성경공부를 강조한 부분이 그랬다.
263p

아홉가지 성구와 아홉가지 캐럴 예배
내게 개인적 묵상과 공동의 찬양과 경배가 하나로 어우러져 내 생각에 집중하도록 도와준 교회 예배는 그 유명한 '아홉가지 성구와 아홉가지 캐럴 예배'였다.
에배자들에게 크리스마스 메시지의 온전한 의미와 기쁨을 깨우쳐주고자 만들어진 이 예배는 어덯게 탄생했을까? 독특한 케임브리지 예배 형식의 기원은 1918년 크리스마스 이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는 1차 세계 대전의 상처와 폐허 이후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였다. 전쟁 동안 육군 군목으로 재직했던 에릭 밀너0화이트가 케임브리지 킹스 칼리지에 막 교목 겸 학장으로 부임한 터였다. 그는 강팍해지고 회의가 많아진 전후 세대의 마음을 끌 수 있도록 좀 더 현실감 있는 예배를 만들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엇다. 그때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기독교 예배에 사용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밀러-화이트는 킹스 칼리지의 유서 깊은 합창의 전통을 살려 아홉 가지 성구와 아홉 가지 캐럴 예배 형식을 개발했다. 1919년에 몇 군데 수정이 가해지긴 했지만 그 형식은 그뒤로 거의 동이랗게 지켜지고 있다.
예배의 골격은 아홉 가지 크리스마스 캐럴과 아홉 가지 성경 본문으로 구성되며, 군데군데 크리스마스 주제를 살린 합창곡이 끼어든다. 이 예배의 '본기도'의 앞 부분은 곧 이어질 아홉가지 말씀에 틀을 잡아 주면서 회중들이 뒤따를 말씀의 잔치를 풍성히 맛볼 수 있게 해 준다.
본기도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아 모두 정성과 기쁨을 다해 우리 자신을 준비해 천사의 메시지를 다시 듣도록 합시다. 마음과 가슴으로 베들레헴까지 찾아가 장차 이루어질 일을 봅시다. 목자들과 동방 박사들과 함께 어머니의 품 안에 누워 있는 아기 에수께 경배합시다. 우리가 처음 불순종하던 날로부터 이 거룩한 아기를 통해 영광의 구속이 이루어진 날까지 하나님이 뜻하신 사랑의 이야기를 성경에서 찾아 읽으며 표시해 봅시다.
...
아홉 가지 성경 말씀은 구약 성경의 위대한 희망과 기대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보여 준다.
아홉 가지 성경 말씀
창세기 3:8~15, 17~19
창세기 22:15~18
이사야 9:2, 6~7
이사야 11:1~3상, 4상, 6~9
누가복음 1:26~35, 38
누가복음 2:1, 3~7
누가복음 2:8~16
마태복음 2:1~12
요한복음 1:1~14
263-265p

이냐시오 로욜라의 그리스도와의 대화법
이냐시오 로욜라도 <영신 수련>에서 비슷한 내용을 주장했다. 로욜라는 구속의 대가와 피조물을 구속하시는 창조주의 사랑에 대해, 십자가에서 죽어 가는 그리스도와 함께 대화하는 법을 내게 가르쳐 주었다. 로욜라는 자신의 지침을 따라 십자가에서 죽어 가는 그리스도께 새각을 집중할 것을 권한다. 묵상의 순서는 이렇다.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한 다음,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해 주신 일을 묵상한다. 그러고 나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묵상한다.
우선 갈보리에 직접 가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이어서 십자가에서 죽어 가는 그리스도와 대화를 나눈다. 그러려면 먼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묵상해야 한다. 지금 창조주께서 피조물을 위해 고난 받고 있다. 원래부터 영생을 가지신 분이 죄인들을 위해 육체적 고통과 죽음을 자칭해서 당하고 계시다. 이런 묵상을 바탕으로 자기 성찰에 들어가 영적 성장과 훈련에 대한 미래의 뜻을 세운다.
...
이 훈련법이 내게 그토록 감동적 체험이 된 이유는 '내가 이해하는 그리스도'에 대해서 바로 그분 앞에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십자가의 의미를 추상적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쉽고 부담이 없는 일이다. 그런 동덜어진 접근이라면 나도 얼마든지 받아들일 수 있다. 이런 행동은 마치 당사자가 없는 데서 남 얘기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 앞에서 그분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아주 달랐다. 로욜라가 권한 훈련법은 나를 불편할 정도로 내 구주의 고통과 고난에 가까이 데려다 놓았다. 마치 그분이 바로 위에서 나를 내려다보시며, 나를 위한 그분의 희생을 내가 어떻게 생각하며 내가 그 보답으로 그분께 무엇을 해 드릴 것인지 물으시는 것만 같았다. 여러 모로 한없이 송구스러운 경험이었다. 그리슫에 대한 내 얄팍한 헌신을 깨우쳐 주었기 때문이다. 이 훈련을 통해서야 나는 내 지성의 영역에는 그리스도의 영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으나, 그 밖의 마음과 상상의 영역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77-279p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십자가 묵상
'실레지아의 천사' 라는 필명으로 발표한 요한 쉐플러의 글 속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이 아주 유익하게 제시되어 있다. 쉐펄러는 '내 것으로 적용된 신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이 내게 유익이 되려면 그 일들이 직접 내 속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삶에 흡수되지 않은 외부의 사건은 자신을 변화시킬 수도 없기 때문이다. 내게 특히 도움이 된 글은 이렇다.
"하나님은 당신 안에서 태어나야 한다. 그리스도가 베들레헴에서 천 번을 태어난다 해도 아직 당신 안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당신은 여전히 잃어버린 상태다."
"외적인 것은 도움이 안된다. 골고다의 십자가가 당신 안에 세워지지 않는 한 그 십자가는 당신을 죄에서 구원할 수 없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라! 당신이 죄와 사망에 계속 묶여 있는 한 그리스도의 부로할으 ㄴ당신에게 도움이 안된다."
이 말을 읽고서 나는 내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한사코 역사적 사건과 신학적 개념으로만 생각함으로써 그 십지가와 안전거리를 두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위의 구절들을 읽고 난 뒤 모든 것이 변화되었다. 십자가는 신학 교재에나 국한되어 있는 머나먼 역사 속의 사건이 아니라, 내 삶 속의 고간에 살아 있느 ㄴ실체가 되었다. 부끄럽게도 나느 ㄴ마르틴 루터나 존 웨슬리가 생각한 십자가의 중요성은 구구절절 설명하 ㄹ수 있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나를 새롭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전핟나는 사실에는 까막눈이었음을 깨달았다.
279-28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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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영혼의 자서전 : 알리스터 맥그라스의
알리스터 맥그래스 저 | 두란노 | 2011년 12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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