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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앤셜리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간에 있었던 일들을
다산의 저서 또는 편지, 시문 등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책이다.
책이 두꺼워 읽는데 오래걸렸지만, 읽는 동안 지루하지는 않았다.
소설도 아닌데, 읽다가 마음이 짠해 눈물이 나기도 했다.
이 이야기를 영화나 드라마로 그리면 참 좋을 것 같다.
특히, 청복을 그리며 살아간 황상이라는 캐릭터... 참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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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글을 열며 - 맛난 만남
바라기는 이 글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내 삶에서 그런 만남을 가지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를 헤아려보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만남을 반복한다. 그토록 좋고 간절했다가 끝에 가서 싸늘한 냉소로 남는 만남도 있고, 시큰둥한 듯 오래가는 은은한 만남도 있다. 나는 이 한 생을 살면서 어떤 만남을 가꾸어가야 할까?
이제 그들은 가고 남은 자취는 덤불 속에 묻히거나 수몰되고 없다. 그래도 나는 이렇게 조용히 말하련다. "이런 사람이 있었네" 라고.
7p
두 개의 견월첩 - 혜장과 다산의 만남
부쳐온 시는 청아해서 기뻐할 만했소. 지난날 거쳐 지나온 곳을 취해 그 정경을 떠올려 짓는다면 수십편의 좋은 시를 얻을 수 있을 게요.
...
마음 맞는 사람끼리 서로를 애타게 그리워하고, 글에 정을 담아 편지와 시문이 오가는 장면은 참 아름답다. 혜장은 다산의 유배생활에 잠깐 비쳐든 봄볕 같은 존재였다.
123-125p
채마밭 가꾸는 방법
다산은 퇴근을 하면 건을 뒤로 젖혀 쓴 채 대나무 난간가를 서성이곤 했다. 달이 뜨면 꽃나무 앞에서 술 한잔을 하며 시를 지었다. 도심 한가운데에 그는 자기만의 산림과 원포를 꾸몄다. 좋은 계절에 맞춰 꽃이 피면 가까운 벗들을 초대해서 시회를 열었다. 이른바 죽란시사로 불린 모임이다.
128p
마음이 편안해지곤 했다
나는 평소 채마밭 가꾸기를 좋아했다. 귀양 온 이후 더욱 할 일이 없어 오래도록 마음 속으로 바람을 지녀왔다. 하지만 땅이 좁고 힘이 달려 여태껏 착수하지 못했다. 그래도 마음으로 잊은 적은 없었다. 이웃에 작은 채마밭을 가꾸는 이가 있었다. 이따금 가서 살펴보노라면 마음이 다시 편안해지곤 했다. 내 성품의 기호를 알 만한다.
...
틈만나면 이웃 사람의 채마밭 두둑에 앉아 싹을 밀고 올라오는 각종 채소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유배지의 쓸쓸함을 가라앉혀주는 낙이었다. 내가 직접 해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는 수없이 이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다.
132-133p
초의 의순에게 보여주는 독서법
다산은 초의의 뜨뜻미지근한 태도가 못마땅했다. 그도 혜장 못지 않은 천재였다. 하지만 제 머리를 믿고 노력이 부족했다. 바깥일에 대해서는 전혀 의욕도 없었다. 다산은 그 버릇을 고쳐주려고 아예 독서법이라고 제목을 붙여 그에게 써주었다. "임금의 엄명을 받았다고 생각해라. 뒤에서 장수가 칼을 뽑아들고 돌격 명령을 내렸다고 여겨라. 호랑이나 이무기가 너를 잡아먹으려고 쫓아온다면 어찌하겠니? 공부는 그런 다급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조금의 방심 없이 몰두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마나다."
143-144p
초의를 위한 다산의 증언(贈言)
나만을 위해 수고로우면 죽을 때까지 애를 써도 조그만 공조차 이루지 못한다. 남을 위해 애쓰지 않는다면 몸을 마치도록 고결하게 지낸다 해도 1만 개의 쇠뇌가 동시에 발사되듯 괴로울 것이다.
144p
저도 그렇게 하렵니다
1805년, 고성사에서 정학연과 함께 겨울을 나며 <주역>을 공부할 때로 잠깐 거슬러간다. <주역> 이괘 구이의 효사를 읽는데 이런 구절이 나왔다. "밟는 길이 평탄하니, 유인(幽人,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조용한 곳에 숨어 사는 사람)이라야 곧고도 길하다." 고결하고 굳센 절조를 지키며 사는 은둔의 삶을 찬미한 내용이다. 그 말이 어찌나 좋았던지, 황상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감탄의 말이 자꾸 나왔다.
- 그리 좋으냐?
- 선생님! 참으로 마음에 깊이 와 닿습니다. 어찌 살아야 평탄한 길을 밟으면서도 곧고도 길할 수가 있겠습니까? 유인이란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저도 그런 삶을 살렵니다. 더 자세하게 가르쳐주십시오. 선생님!
- 네 뜻이 가상하다. 내가 너를 위해 유인의 삶에 대해 자세히 일러주마.
다음 날 아침 스승은 제자에게 밤새 지은 글 한 편을 내밀어 보였다. 스승은 제자를 위해 아예 한 권의 첩을 만들어 글로 써주었다. 뒤에 알게 되겠지만 이 글이 황상의 삶을 또 한번 송두리째 뒤흔들어놓고 만다. 제목은 <제황상유인첩>이다.
276-279p
제황상유인첩
...순창에서 나는 설화지로 도배를 하고, 문미(창문 위에 가로 댄 나무, 창 위쪽의 하중을 받친다), 즉 상인방에는 엷은 먹으로 그린 횡폭의 산수화를 붙인다. 문 옆에는 고목과 죽석을 그리거나 시를 써놓는다. 방 안에는 서가 두 개를 놓아두고, 1천 3,4백 권의 책을 꽂는다. ... 책상 위에는 논어 한 권을 펴놓는다. 곁에는 화리목(모과나무)으로 만든 탁자가 있다. 여기에 도연명과 사령운, 두보와 한유, 소식과 육방옹의 시와 <중주악부>와 <열조시집> 등을 몇 질 얹어둔다. ...
280-281p
청복과 열복
"하늘은 청복을 몹시 아낀다"는 말은 다산의 다른 글이 있다.
사람들은 삶을 연장하여 오래 살기를 원한다. 왜 그럴까? 세상에 온갖 복락이 있어도 오래 살지 않고는 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말하는 복에는 두 종류가 있다. 외직에 나가서는 대장군의 깃발을 세우고 인끈(무관이 발병부 주머니를 매어 차던, 길고 넓적한 녹비 끈)을 허리에 두르며 노랫소리와 음악 소리르 벌여놓고, 어여쁜 아가씨를 끼고 논다. 내직으로 들어와서는 높은 수레를 타고 비단옷을 입고서 대궐 문으로 들어가 묘당에 앉아 사방을 다스릴 계책을 듣는다. 이런 것을 일러 열복(熱福)이라 한다.
깊은 산속에 살며 거친 옷에 짚신을 신고 맑은 못가에서 발을 씻고 고송에 기대어 휘파람을 분다. 집에는 좋은 거문고와 오래된 경쇠(맑은 소리를 내는 악기의 종류)를 놓아두고, 바둑판 하나와 책을 한 다락쯤 갖추어둔다. 마당에는 백학 한 쌍을 기르고, 기이한 꽃과 나무, 수명을 늘이고 기운을 복돋우는 약초를 심는다. 이따금 산승이나 우객(도사)과 서로 왕래하며 소요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아 세월이 가고 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조야(조정과 민간을 통틀어 이르는 말)가 잘 다스려지는지 어지러운지에 대해서도 듣지 않는다. 이런 것을 두고 청복(淸福)이라고 한다.
<병조참판 오대익 공의 71세 수연을 축하하는 서문> 에 나오는 글이다.
284-285p
조수는 봄빛 마냥 오고 또 가고
다산은 조금 들뜬 마음으로 <다산팔경사> 8수를 지었다. 다산은 이곳의 팔경으로 불장소도 즉 담장가에 하늘대는 복사꽃 가지, 박렴비서 주렴을 치며 날리는 버들솜, 난일문치 따스한 봄날 들려오는 꿩 울음소리, 세우사어 보슬비 속에 물고기 먹이 주기, 풍전금석 비단바위 위로 뿌리를 감은 단풍나무, 국조방지 연못에 비치는 국화 그림자, 일오죽취 언덕바지의 푸른 대숲, 만학송도 온 골짝에 울리는 솔바람 파도 소리 등을 꼽았다.
303p
작약 예찬
마침내 붉은 꽃을 토해내어 불구슬이 빛을 발하고 첩첩의 잎사귀가 금수 위로 엇갈려 쌓이며 짙은 향기가 방 안까지 쏟아져 들어온다. 불타는 듯 환하고 향기는 농욱하여 천 사람이 지나가며 그 어여쁨을 부러워하고, 온갖 꽃들이 이를 살피며 제 모습을 부끄러워한다. 이것이 작약의 가장 절정의 때이니, 이는 대제학과 이조판서의 시절이라 하겠다.
328p
국화를 사랑하는 까닭
예전 죽란(서울 명례방의 집 이름)에서 살 적에 내 성품이 국화를 사랑했다. 해마다 국화 화분 수십개를 길러, 여름에는 그 잎을 살피고, 가을에는 그 꽃을 보았다. 낮에는 그 자태를 관찰하고, 밤에는 그림자를 감상했다. 무실선생(務實先生)이란 이가 지나는 길에 들렀다가 비난하며 말했다. "심하구려. 그대의 화려함이. 그대는 어째서 국화를 기르는까? 복숭아와 오얏, 매화와 살구 같은 것은 꽃과 열매를 두루 갖추고 있소. 나는 이 때문에 일삼이 이를 기른다네. 열매가 없는 꽃은 군자가 마땅히 심을 것이 못 되오." 내가 말했다. "공께서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십니다그려. 형체와 정신이 오묘하게 합쳐져 사람이 됩니다. 형체만 기르면 정신이 굶주릴 수 있습니다. 열매가 있는 것은 입과 몸뚱이를 길러주고, 열매가 없는 것은 마음과 뜻을 즐겁게 하지요.
...
다산은 <국영시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 가지 꽃 중에 국화는 특별히 빼어난 점이 네 가지가 있다. 꽃을 늦게 피우는 것이 하나요, 오래 견디는 것이 하나며, 짙은 향기가 하나요, 곱지만 야하지 않고, 깨끗하나 쌀쌀맞지 않은 것이 하나다."
331-333p
사람에게 귀한 것은 신의다
한번 헤어짐은 필연일 터. 일희일비에 연연치 마라. 사람에게 귀한 것은 무엇이냐? 바로 신의다. 무리지어 함께 즐거워하다가 흩어져 서로 잊는다면 금수와 다를 게 없겠지. 너희와 나는 1808년 봄부터 오늘까지 함께 지내며 공부했다. 형제라 한들 이보다 낫겠느냐? 내 이제 떠난다. 너희도 뿔뿔이 흩어지겠구나. 그렇다고 서로 잊어 남이 된다면 그간의 시간이 너무 슬프다. 서로 아껴 마음 나누며 지내도록 해라.
352p
내 부고를 듣거든
황상은 겉으로 꾸밀 줄 모르는 절박한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제자들처럼 스승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았다. 오로지 스승의 가르침을 새기고 또 새겨 자신의 삶 속으로 옮겨오는 일에만 마음을 쏟았다. 다산이 강진을 떠나자 그도 읍내를 떠났다. 아전으로 백성의 고혈을 빨며 탐욕스럽게 사는 삶은 견딜 수가 없었다. 백적산 깊은 골짝으로 가족과 함께 들어가 돌밭을 일궈 농사를 지었다. 예전 스승에게 삼근계를 받고 그랬던 것처럼 다른 잡생각 없이 오로지 스승이 일깨워준 유인의 삶을 일구고야 말겠다는 서원만을 되새겼다.
387p
득의의 시간
일찍이 권돈인이 늙은 소에 올라타고 터덜터덜 종일 걸어 두릉으로 정학연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한 나라의 영의정을 지낸 어른이 가마도 아닌 늙은 소를 타고 재야의 선비 집을 찾아간 일이 미담으로 전해져서 사람들 입에 널리 오르내렸다. 황상은 그 일을 적어 <권상공기우행>을 지었다.
상공께서 소를 타심 기이하고 기이하니
늙은 소 멱미레 늘어지고 눈은 처져 눈곱이 달랑달랑
네 발굽은 무거워서 채찍에도 꼼짝 않아
무겁기가 백 근인 양 깊은 생각 잠긴 듯해.
말라붙은 똥덩어리 온몸 가득 붙어 있어
꽃샘하는 강바람에도 터럭조차 안 날린다.
안장은 백 번 깁고 천 번을 다시 때워
세 겹 꼰 새끼줄로 종이 멀리 끌고 갔지.
상공께선 땅에 앉듯 안장에 기대어서
산처럼 우뚝 앉아 흰 수염을 날리시네.
...
권돈인이 늙은 소 등에 올라타고 터덜터덜 두릉을 찾은 광경이 눈에 선하다. 소 등 위에서도 그는 풍속을 살펴 기록하고 이를 가락에 얹어 금쪽같은 시를 짓곤 했다. 권돈인이 가마를 타지 않고 늙은 소를 탄 것은 이유가 있었다. 가마를 타는 것은 사람 등에 올라타는 것과 같은데, 어찌 사람 등에 말 타듯 올라타겠느냐는 애민의 마음 때문이었다.
482-483p
슬픈 해후
내 옷차림은 가진 것 없어 가볍네만, 내 마음 속에는 스승께서 남겨주신 중한 의리가 들어 있다네. 자네 꽤나 유명하더군. 서울의 고관 집을 들락거리며 으쓱대니 그래 마음이 좋던가? 예전 동천여서 골방에서 스승님 모시고 공부하던 그 때를 생각해보게.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고 가슴은 벅차서 늘 터질 듯 했었지. 그 빛나던 청년은 이제 어디로 갔는가? 스승님께서 남기시고, 자네의 손길이 닿은 그 많은 책들이 여태도 산더미처럼 묶인 채 그저 쌓여 있더군. 자네가 스승님의 제자라 할 수 있는가?
489p
배웠으나 전혀 다르다
내 생각에 그의 시가 다산 집안의 법도와 다르지 않으리라 여겼는데,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이를 이상하게 여겨 그가 배워들어간 바를 점검해보았다. 그가 말했따. "예전에 들으니, 스승께서 '두보와 한유, 소동파와 육유 등 네 분은 천고에 우뚝하다. 이 네 분을 버리고 시를 한다면 바른 법도가 아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부터 주변의 다른 작가는 거들떠보지 않고 마음을 쏟아 이 네 분의 시만 읽은 것이 50여년입니다."
5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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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명강의-001 삶을 바꾼 만남 : 스승 정약용과 제자 황상
정민 저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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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ber: 298/4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