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쓴이 :
앤셜리 ≪
야마오 산세이는 대안 문화 공동체를 만들고,
농사도 짓는 일본 작가 중 하나이다.
도쿄에서 태어났지만,
규슈지방의 야쿠시마 섬에 정착해 살아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전해준다.
원래 책발간이 목적이 아니고,
아웃도어 잡지에 실렸던 글들을 모아놓은 책으로
진정한 아웃도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중간중간 가미 라는 독특한 개념을 이야기하는데,
내 개인적으로는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 보인다.
(저자는 기독교인이 아니고, 불교? 도교? 쯤 되는 것 같다.)
어쨌든, 비기독교적 관점을 제외하고는
너무나 맘에 드는 책이다.
나중에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
--------------------------------------------------------------------
memo
여기
유스 토막(통나무를 잘라 놓은) 2개를 발견한 것은 3년 전의 어느 날이었다. 숲에서 그것을 발견하고 나는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것처럼 기뻤다. 그날 나는 곧바로 그 나무를 우리 집 정원 한구석으로 옮겨 왔다. 도시 사람들은 야외용 테이블 세트에 앉아 맥주를 마실 때 인생의 큰 즐거움을 느낀다지만, 내 경우는 숲에서 발견한 그 나무토막에 앉아 쉬거나 차를 마시며 눈에 익은 주변 풍경을 바라볼 때 더없이 기쁘다.
계절에 따라 쉼 없이 변화해 가는 주변 풍경 속에는 우리들이 '가미'라 불러온 존재(우리에게 진정한 기쁨과 힘을 주는 존재를 말함. - 옮긴이)의 본래 모습이 숨어 있다. 그 본래 모습을 이제부터 나는 가미라 표기해 갈 것인데, 옛 사람들이 말했듯이 가미는 풀잎 그늘에 숨어 있다. 아니, 숨어 있는 게 아니고 사실은 풀잎 그 자체가 가미라고도 말할 수 있다.
21p
석기시대 충동
비파나무에 올라가 비파를 딴다는 것은 그 나무가 재배된 것이라는 점을 별도로 한다면 석기시대의 문화에 가 닿는 행위다.
석기문화, 혹은 석기시대라고 하면 사람들은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고, 또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나의 이 섬에서의 20년 생활에서 보자면 그 문화는 현대에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문화다. 석기문화를 생활 속에 받아들임에 따라 우리들은 이 문명 사회에서는 맛볼 수 없는 새로운 풍요로움과 기쁨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석기문화란 수렵과 채집을 기반으로 한 문화이기 때문에 자연과 아주 가까이 접촉하며 배우지 않을 수 없는 문화 형태지만 그렇게 때문에 오히려 지금 우리들의 삶 속에서 더욱 소중하게 취급되지 않으면 안 되고, 되찾지 않으면 안 되는 문화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야외 활동인 등산, 폭포 오르기, 강따라 내려가기, 다이빙, 캠프, 낚시, 자전거 여행 등이 모두 그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 보면 그 바탕에는 자연과의 밀접한 관계를 되찾으려는 강한 충동이 감춰져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 충동을 나는 석기시대 충동 혹은 생명의 직접충동이라고 보르고 있는데, 그와 같은 형태로 현대에서도 석기문화는 살아 있음과 동시에 현대이기 때문에 오히려 그 문화는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있다.우리들은 관리되고 시스템화된 사회 속에서만은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아웃도어 라이프라고 하는 시대의 의상을 걸치고 실은 석기시대와 같은 직접 생명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33-34p
결코 서두르지 말 것, 집중할 것
아직 반은 날것인 삼나무에서는 톱질에 따라 좋은 향기가 퍼져 가고, 그 향기에 이끌려 톱질에 슬겅슬겅 리듬이 생긴다. 무슨 일이나 다 그렇지만 내가 이제까지 익혀 온 들일, 산일의 가장 중요한 요령은 결코 서두르지 않을 것, 집중할 것, 이 둘이다. 이 두가지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는 한 어떤 일을 해도 그 작업은 한없이 즐겁다. 그 작업을 통해 나는 내 속에서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생의 근원적인 충동(석기시대 충동), 곧 생명의 충족감과 내밀함을 손에 넣을 수가 있는 것이다.
46p
바다가 차려주는 풍요로운 밥상
25일 밤에는 조촐한 잔치가 벌어졌다. 다음 날 다시 도쿄로 돌아가는 딸애를 위한 자리였다.
스물세 살이 된 딸애는 맥주도 조금 마시고 싶다 해서 작은 캔 맥주도 세 통 사 왔다. 그날 잡은 조개류를 굽고, 냉장고에 갈무려 뒀던 뱀장어 한 마리로 조미용 양념 장국을 넣어 조리고, 저녁에는 민물새우 양식장에서 일하는 친구가 살아 있는 민물새우를 스무 마리나 보내와 그대로 모두 회를 쳤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날치잡이를 하는 친구가 보내 준 날치로 만든 쓰케아게(사쓰마아게를 섬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사쓰마아게란 간 어육에다 소금, 설탕, 녹말을 넣고, 또 잘게 썬 당근, 우엉 등을 섞어 기름에 튀긴 식품을 말한다-옮긴이)가 있어 조촐한 잔치를 차릴 생각이었는데 호화스러울 정도의 진수성찬이 돼 버렸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날의 경우, 사 온 것은 맥주 세 통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우리가 잡아온 것이거나 주변 사람들이 준 것뿐이었다.
나는 그와 같은 야식을 진정으로 풍요롭고 호화로운 야식으로 보며 기쁘게 생각한다. 민물새우 회가 왔기 때문에 한층 잔치는 호화스러워졌지만 그것이 없었더라도 그날 밤의 야식은 충분히 진수성찬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진수성찬이 가능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석기시대 문화인 수렵과 채취가 있었기 때문이다.
핵과 석유 에너지에 의거한 우리들의 문명은 그것이 배출하는 유독 물질이나 대기오염을 포함하여 우리에게 절망적인 미래밖에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태양 에너지를 비롯하여 재생 가능 에너지나 자원에 의거하는 석기시대 문명은 우리에게 태양계가 존재하는 한 끝없이 이어져 갈 문명이 가능하다는 것을 적어도 1만 년이라는 긴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 이미 증명해 보여주고 있다.
산업 혁명 이후의 불과 200년 사이에 이렇게 지구 환경이 악화된 것을 생각하면 1만 년이라는 기간은 영원에 가까운 시간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62-63p
게리 스나이더, 생명 지역주의
지구에 대한 관심이 깊어질수록 우리는 거꾸로 이 지역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곳에서 제대로 사는 게 중요해진다. 그래서 나는 지구가 곧 지역, 지역이 곧 지구라는 입장을 취하며 살아왔는데, 게리의 생명지역주의에도 당연히 그런 내용이 포함돼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93p
늘 푸른 원생림, 서부 숲길
내가 살고 있는 시라코 산에는 데즈카라는 화가가 있다. 그는 내 친구이기도 한데, 그 지역 일대에서 '발로 걷는 박물관' 모임을 주재하며, 한 달에 한 번 다양한 분야의 강사를 불러 이삼십 명이 그 숲을 걸으면서 숲을 배우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나도 아내와 아이들을 데리고 때로는 통칭 '발로 걷는 박물관'에 참가하는데, 차를 타고 지나갈 때는 결코 맛볼 수 없는 숲의 풍요로움을 몸과 마음으로 직접 느낄 수 있다.
94-95p
인디언 서머
숲 속의 골짜기 땅에서 밭농사를 지으며 사는 즐거움의 하나는 이렝 정해진 스케줄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아침에 일어날 때 오늘은 그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혹은 그래 그 일을 하자는 예정 같은 것이 얼추 생기기는 한다. 그러나 그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해야 하는 그런 일이 아니기 때문에 우연히 생기는 일이 그날 하루의 일을 결정해 버리는 일도 자주 있다.
그날 아침 눈을 뜬 것은 8시 정각으로, 이미 커튼 사이로는 아침 햇살이 가득 비쳐 들고 있었다. 아침 햇살의 밝음 정도, 커튼 전체의 밝기로 그날이 오랜만에 보는 쾌청한 날임을 알고 오늘은 밭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어났다.
늦은 가을의 이런 좋은 날씨를 일본에서는 '고하루비요리'라 부르고 미국에서는 '인디언 서머'라고 한다. 황금색 햇살이 아낌없이 쏟아져 내리는 밭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잡초를 벤다거나, 성귀를 솎아 주는 일 등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즐겁다.
102p
다음은 바다다
각재를 구하러 온 것도 아니고 날이 좋아 바다도 보고 땔감도 주으러 온 것이라고 생각을 고쳐먹고 나는 눈에 띄는 유목을 향해 걸어갔다. 모래 언덕 위에서 먼눈으로 볼 때는 적당한 크기로 보이던 나무도 가까이 가서 보면 너무 커서 어깨에 멜 수 없는 일이 자주 있다. 들어올려 어깨에 메었더라도 모래 언덕을 걸어 올라가기가 무척 힘들다. 언제나 즐겁게 일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는 나는 결코 무거운 나무를 메지 않는다.
한쪽 어깨에 버겁지 않게 멜 수 있거나 양쪽 겨드랑에 끼고 들 수 있는 정도의 나무를 시간에 개의치 않으며 천천히 차까지 나른다. 바닷가의 유목 모으기가 즐거운 것은 나무토막을 차까지 옮겨 놓고 빈몸ㅇ로 다시 바다로 내려갈 때 보는 풍경이다.
그것은 단지 놀기 위해 와서 바다를 바라볼 때와는 달리, 떌감이라고 하는 확고한 삶에 바탕을 두고 서서 마음껏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즐거움으로, 그런 의미에서는 삶을 통해서만이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라고도 할 수 있다.
110p
봄을 알리는 꽃
제비꽃을 만나면 그것이 단 한 송이의 꽃일지언정 나는 언제나 문득 발길을 멈추게 된다.
소녀가 아님은 물론 이미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내가 제비꽃에 가슴이 움직인다는 게 자랑할 바는 못되지만 우수 무렵의 들길을 걷다가 그 꽃을 만나면 지금까지 몇 번이고 썼지만, 나로서는 그것이 가미와 만난 것이 된다. 가미에도 여러 가미가 있지만 제비꽃이라는 가미는 무조건 사람을 행복 속으로 밀어 넣는 성질을 가진 가미다.
133p
우수절
아웃도어 라이프라는 최근 이삼십 년 사이에 생긴 이 새로운 문화는 주로 미국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우수와 같은 일본에서조차 사라져 가고 있는 가치관을 이런 자리에서 이야깃거리로 삼는 것은 아웃도어 문화로 향하는 독자의 행볼르 오히려 가로막는 일이 될지 모른다.
그 점을 잘 알면서도 감히 이 이야기를 선택한 것은 아웃도어 문화의 문호를 단지 무국(혹은 유럽)의 모험을 중심으로 한 기쁨에서 동양의 아웃도어라 해도 좋은, 보다 더 광범위한 일상생활 속에서 맨몸과 빈손으로도 얻을 수 있는 정신적인, 환경이나 생태계를 충분히 고려한 기쁨도 포함한 문화로 확대해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떄문이다.
올해의 경우는 2월 18일부터 3월 4일까지의 15일간을 우수절이라 부른다. 그 전의 2월 4일부터 17일까지는 입춘절이다.
음력이 확립된 것은 중국 은시대(BC 16C~BC 11C)의 황하 하류 지역으로, 일본에 전해진 것은 아스카 시대(도읍이 아스카 지방에 있던 시대로, 6세기 후반부터 7세기 중엽까지, 대륙에서 건너간 불교 문화, 특히 불교 미술이 번성한 시기-옮긴이)이다. 그 이후 1873년에 양력으로 바뀌기까지 천 년 이상에 걸쳐 일본인은 음력을 쓰며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않았고, 또 달력에 문제가 생기지도 않았다.
입춘절로부터 시작하는 일 년은 보통 15일 간격의 24절기로 나눠서 생활하기 때문에 현재의 1년 12개월이란 감각에 비교하여 우리는 적어도 두 배는 더 밀도 있는 삶을 살았던 천 년을 가지고 있는 셈이다.
...
음력으로는 일 년을 약 15일 간격으로 24절기로 나눈다고 썼지만, 실은 각 절기는 더욱 세밀하게 약 5일 간격으로 초후, 차후, 말후로 나눠져 있어서, 일괄하여 24절기 72후라고 부른다.
우수절만을 거론하면 그 초후는 '땅에 윤기가 도는 후'이고, 차후는 '처음으로 안개가 끼는 후'이고, 말후는 '초목에 새싹이 트는 후'라고, 5일 간격으로 천지의 움직임을 관찰하여 말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바쁜 현대 생활 속에 5일 간격의 계절 감각이라니 말도 안 된다며 관심도 두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그런 시대와 사회이기 때문에 오히려 또 하나의 가치관으로서 자연의 통찰 그 자체를 문화로 보는 사고방식이 확대돼 온 것이고, 그 문화의 밑바탕에는 지구 기상이란 거대한 과학의 신비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133-134p, 141p
--------------------------------------------------------------------
여기에 사는 즐거움
야마오 산세이 저/이반 역 | 도솔 | 2002년 05월
|
|
number: 346/4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