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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앤셜리 ≪
영화로 먼저 접했던 소설이다.
영화를 본 건 아니고, 예고편만 보았는데 무서운 스릴러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어보니, 스릴러라기보다는 환타지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소설은 주인공들의 이름은 전혀 표기하지 않고, (예를 들자면 검은 안대를 한 노인 이런 식이다) 간단한 설명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을 표현한다.
그리고 마치 내가 눈이 먼 것 처럼 누가 이야기한 것인지 모르게, 대화 내용도 큰따옴표로 별도 표기하지 않는 독특한 문체를 가진 소설이다.
크게 소설을 나누자면,
교도소 안에서의 더럽고 추악한 인간 모습을 그린 전반부와
교도서 밖 의사의 집에 안착하여 행복한 모습을 그린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나는 그 중에서도 의사의 집에서 행복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 새벽에 빨래를 하며 목욕을 하며 담소를 나누는 세 여자들의 모습을 묘사한 부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나는 이 눈 먼사람들의 결말이 어떻게 될지 무척 궁금해서
새벽까지 읽었는데... 결말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여기에 적지는 않겠다.
결론은 속도감있게 깊게 빠져들며 읽을 수 있는 소설책이고,
우리가 보는 것들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볼 수 있도록 화두를 던지는 책이라는 것.
강추까지는 아니지만, 한번쯤 볼만한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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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의사만 한마디했다. 내가 다시 시력을 회복한다면, 나는 다른 사람들의 눈을 주의깊게 볼 거야, 마치 그들의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방금 그들의 영혼이라고 했소, 검은 안대를 한 노인이 물었다. 아니면 그들의 마음일 수도 있고요, 이름은 상관없습니다. 바로 그때, 마치 별로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에게서 예상치 못한 지혜로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처럼 놀라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우리 내부에는 이름이 없는 뭔가가 있어요, 그 뭔가가 바로 우리예요.
388p
계속 두들겨대는 빗소리에 잠을 깼는지, 건너편 건물에서도 눈먼 사람 몇 명이 차가운 유리창에 머리를 갖다대고, 유리에 불어대는 그들의 숨결로 밤의 음산한 기운을 쫓으며, 지금처럼 하늘에서 비가 떨어지는 것을 마지막으로 보았던 때를 떠올리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 말고도 저 건너에 벌거벗은 세 여자, 태어날 때처럼 벌거벗은 세 여자가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한다. 그 여자들은 미친 것 같다. 아니 미친 것이 틀림없다.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웃들이 보는 발코니에서 빨래를 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런 모습으로는. 우리가 모두 눈이 멀었다는 것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이것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오. 비가 그들의 몸 위로 얼마나 심하게 쏟아지는지. 비는 그들의 젖가슴 사이를 간질이며 흘러, 어두운 치골에 머물다 사라졌다가, 마침내 허벅지를 흠뻑 적시며 아래로 떨어져내린다. 어쩌면 우리가 잘못 판단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이것이 이 도신의 역사에서 일어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할지도 모른다. 거품이 종잇장처럼 발코니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나도 그 거품과 함께 갈 수 있다면, 깨끗하게 정화된 벌거벗은 몸으로 끝도 없이 떨어져내릴 수 있다면.
...
쏟아지는 비 아래 미의 세 여신이다. 그러나 이런 순간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는 법이다. 이 여자들이 여기에 나온 지도 한 시간이 넘었다. 이제 추위를 느낄 때다. 추워요. 검은 색안경을 썼던 여자가 말했다. 의사의 아내가 말했다. 옷은 더 어쩌지 못하겠군요. 신발은 이제 아주 깨끗해요. 이제 세 여자가 자기들 몸을 닦을 차례다. 그들은 머리를 물에 적시고, 서로의 등을 닦아 준다. 그들은 눈이 멀기 전인 어린 소녀 시절 정원에서 술래잡기를 할 때처럼 깔깔거리며 웃는다. 동이 텄다. 첫 햇살이 세상의 어깨 너머로 들여다보다가 다시 구름 뒤로 숨었다. 비는 계속 내리지만 빗줄기는 가늘어졌다. 여자들은 부엌으로 돌아가, 몸의 물기를 말리고, 이사의 아내가 화장실 장에서 가져온 수건으로 몸을 문지른다. 그들의 몸에서는 비누 냄새가 강하게 난다. 그것이 인생이다.
394-3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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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저/정영목 역 | 해냄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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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ber: 355/4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