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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앤셜리 ≪
옛날 조상들이 남긴 수필, 편지 등을 모아놓은 책이다.
옛사람들이 한문으로 남긴 글을
쉽게 한글로 번역해주신 조면희 역자(?)님께 감사인사를...
책표지나 내용을 얼핏 보면 지루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좋은 글들도 꽤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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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경복궁(景福宮) - 정도전
"지금 이곳에 도읍을 정하여 종묘에 제사드리고 새 궁궐을 준공하여 군신들과 함께 여기서 잔치를 베풀게 되었다. 그러니 경은 마땅히 이 궁궐의 이름을 지어서 이 나라와 함께 그 아름다운 이름이 영원히 없어지지 않게 하라."
신은 이 명령을 받고 삼가 손을 모아 절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시경>의 대아 편에 실려 전하는 "술에 실컷 취하고 덕에 배가 불렀다. 훌륭한 사람, 만년 동안 큰 복(景福)을 누리리라." 하는 노래에서 '경복(景福)' 이라는 글자를 따 와서 새 궁궐의 이름으로 삼자고 청하였습니다.
59p
희우정기(喜雨亭記) - 변계량
용산 입석리는 세상에서 산수 자연이 아름답기로 널리 알려져 있다.
...
효령군이 그 언덕 위에 정자를 지었는데, 그것은 휴식을 위한 것이었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말했다.
"주상(여기서는 세종)께서 일찍이 농사의 작황을 살피기 위하여 거동하셨다가 이 정자에 들르시어 나에게 주식과 말을 하사하시었소. 그 때가 마침 파종을 하던 시기였는데 비가 흡족하게 오지 못하였었소. 나는 이 정자에서 주상과 함께 술을 나누었는데, 술이 반쯤 취하였을 때에 빗줄기가 시원스럽게 내리기 시작하더니 그 날 온종일 내렸소. 그러나 주상께서 기뻐하신 나머지 이 정자의 이름을 '희우정(喜雨亭)' 이라고 지어 주셨소. 나는 너무나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 주상께서 내려 주신 그 이름을 더욱 빛내기 위하여, 부제학 신색에게 청하여 현판을 쓰게 하였소. 그리고 그 현판을 정자의 정면에 달아 놓았소. 공께서는 이 정자에 대한 기문(記文)을 지어주시오."
그 일이 있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효령군을 모시고 그곳에 가 볼 기회를 얻었다. 정자의 모양은 사치스럽지 않았고, 그렇다고 저속하지도 았았다. 화악(삼각산)이 그 뒤편에서 내려다보고 한강이 그 가슴을 씻어 주었다. 그리고 서남쪽의 여러 산이 아득히 멀리 늘어서서 연기와 안개 너머로 출몰하였다. 이 정자에서 내려다보이는 맑은 강물에서는 물고기와 개구리들이 즐겁게 놀았다. 바람을 안은 돛대, 모래 사장에 앉은 갈매기는 정자 난간 밑으로 날아다니고 주위에 빽빽이 서 있는 천여 그루의 소나무들은 푸르고 울창하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술상에 얼비쳤다. 맑은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주위에 있는 여러 소리가 섞여서 들려 오니, 마치 날개를 달고 넓은 창공을 날아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에라도 올라가 노니는 듯하여 스스로 신선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그 날 할 말을 잊고 주위만 둘러보다가 그냥 돌아왔다.
63-64p
압구정기(押鷗亭記) - 김수온
목을 길게 뽑아 사방이 탁 트인 전망을 구경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높고 험한 산을 힘들게 올라야 하고, 넓고 깊은 물 속에 들어가 많은 물새와 물고기를 구경하려는 자는 반드시 배를 타는 위험을 겪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이 높은 데 오르는 괴로움이나 배를 타는 위험을 겪지 않고서도 저자 가까이 있으며 도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호수와 산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곳이 있다. 이는 하늘이 오랜 세월 동안 고이 갈무리하고 땅이 깊숙이 숨겨 놓았다가 어떤 특정한 사람이 나타나면 그에게 넘겨주려고 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기야 어찌 아무에게나 쉽게 알려 줄 리가 있겠는가?
서울의 남쪽 5리 되는 지점으로, 양화의 북쪽이며 마포의 서쪽에 언덕 하나가 솟아 있는데, 가운데가 우뚝 높이 솟아서 그야말로 사방이 시원스레 탁 트여 보인다. 그리고 그 산의 주위에는 강물이 잔잔한 물결을 이루며 흘러가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 산 이름을 '화도(火島)' 라고 부른다. 원래 이곳은 소나 염소 같은 가축들을 기르는 곳으로서 산꼭대기는 붉게 벗겨진 민둥산이고 그 밑 부분은 풀이 우거져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상당부원군 한공은 그 언덕 위에 정자를 세우고 틈나는 대로 거기에 가서 한가롭게 노닐었다. 어느 날 그가 이 정자에 올라 한가로이 거닐 때에 갈매기 몇 마리가 울며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그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로다! 저기 날아가는 갈매기는 하늘과 바다를 집으로 삼고 바람과 달을 벗하며 사는 날짐승이다. 그들은 때때로 물 위에 떠서 밀물과 썰물을 따라 가까이 오기도 하고 멀리 떠나가기도 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한가롭게 사는 동물이다. 우리 인간이 복잡한 속세에서 벗어나 저 갈매기와 벗하여 살고 싶어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때마침 그는 중국에서 특사로 들어온 한림 예공을 정자로 초빙하여 그에게 이 정자의 이름을 붙여 달라고 청하였다. 그러자 예공은 압구정(押鷗亭:갈매기와 친하다는 뜻)이 어떠냐고 하였다.
75-76p
비해당 시축서 - 최항
나는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이 바르면 붓도 바르게 나가는 것이므로 그 글씨를 보면 그 사람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대군은 영특한 자질과 존귀한 신분으로서 능히 담박한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 자신을 단속하며 즐거이 착한 일을 행했다. 그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예술에 종사하였다. 또 비해당이라는 서재를 만들어 날마다 책과 벗하였으며, 선비들을 블러들여 옛 성인들의 학문을 담론하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그것으로 보아 그의 마음 씀씀이가 어디에 있는지를 미루어 알 만하다. 그리고 그러한 그의 마음은 서화에 나타난 저절로 법도에 맞으니, 진실로 시세에 아부하는 자들이 모방할 수 없는 바가 여기에 있다.
(비해당 시축서 : 비해당은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 이용의 호이며, 비해당 시축서는 비해당이 쓴 시첩의 서문이다.)
82-83p
나무 잘 타는 사람 - 강희맹
갑은 이 말을 듣자 오히려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땅에 있을 때에 자네가 나무에 올라가 있으면 그 높이가 그저 한 길이나 열 자쯤 되지만 내가 볼 때는 높이 올라간 사람이 왜 낮게 내려올 줄을 모르는가 하고 의아해 하며, 또 자네는 왜 저 사람은 높이 올라올 수 없는가 할 것일세. 낮고 높은 것은 사실 나나 자네가 정한 것이 아니라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익을 한꺼번에 많이 얻으려고 하면 화근이 깊어지고, 결과를 빨리 보려고 하면 도리어 실패가 빠르다는 사실일세. 그러니 나느 자네를 따르지 않겠네."
그러자 을은 할 말을 잊어버렸다. 그로부터 한 달쯤 뒤에 을이 절벽 위에 있는 높은 나무에 올라가 나무를 찍다가 떨어져서 까무러쳤다. 그리하여 그의 아버지가 그를 업고 집으로 돌아와서 오줌을 받아 그의 입에 부었더니 한참 뒤에 숨이 터져 나오고 두어 달이 지난 뒤에 비로소 물을 목구멍으로 넘겼으나, 양다리는 부러지고 두 눈은 멀어서 마치 산송장같이 되었다. 그러자 그는 아버지에게 갑에게 가서 갑이 전에 들려주었던 높고 낮은 데 대한 설명을 다시 들려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리하여 을의 아버지가 갑을 찾아와서 을의 부탁을 전하자 그 말을 들은 갑이 찬찬히 이야기했다.
"아래와 위는 정해진 위치가 없고, 높은 낮은 것은 정해진 명칭이 없습니다. 아래가 있으면 반드시 위가 있는 법인데, 낮은 곳이 없다면 어찌 높은 곳이 있겠습니까? 누구나 아래에서부터 올라가는 법이지만 높은 데 올라가면 스스로 낮다고 생각한답니다. 결국 높다는 것은 낮은 것이 쌓여서 된 것이므로 아래는 위의 한 단계가 되는 것입니다. 늘 높은 것을 추구하면 그 높은 위치도 낮게 보이기 쉽고, 올라가기를 좋아하는 자는 아무리 올라가도 낮아 보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것을 추구하는 자는 언젠가는 그 높은 지위를 잃어버리고 결국은 낮은 곳에 나아가 편안함을 구하려 하나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래에서 올라가던 자가 올라가기를 중지하고 어느 한 지점에서 머무르려고 하나 역시 그것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것으로 볼 때 낮은 것이 높은 것이 낫고, 아래에 있는 것이 위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아래에 있는 것을 싫어했으며, 높이 있는 것을 탐내고 낮게 있는 것을 싫어하였습니다.
105-106p
장의사에서 사가독서하는 선비를 부러워하며 - 홍귀달
우리 임금께서는 즉위하신 뒤에 문(文)을 숭상하셨으니, 한 시대의 훌륭한 선비들이 잇달아 과거를 통하여 벼슬길에 나가게 되었다. 그들은 베옷을 비단옷으로 갈아입고 하찮은 고니의 신세에서 저 큰 붕새로 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깃을 가다듬고 날개를 펼치기 위하여서는 조금도 쉴 겨를이 없었다. 그러한 그들의 미래를 향한 뜻이 어찌 크지 않겠는가?
병신년(1476년, 성종 7년)에 임금께서 하교하셨다.
"학문에 뜻을 둔 선비가 직책에 얽매여 있으면 글에 전념할 수가 없다. 이로 말미암아 멀고 큰 뜻을 방해받게 된다면 이는 결코 내가 선비를 불러들여 도움을 구하는 도리가 아니다. 나이 젊고 재주 있는 자로서 장차 원대한 포부를 가진 자, 약간 명을 선발하여 특별히 여가를 주어 산방에 나아가 독서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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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이들에게 장의사에 가서 아직까지 미처 읽지 못한 책을 읽게 하고, 이어서 창고지기에게 명하여 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이들의 생활 필수품을 골고루 갖추어 주니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 절은 인왕산의 백악 북쪽에 있으며, 삼각산의 서쪽에 위치하여 깨끗하고 아름다운 경치가 사시절에 펼쳐져 있고, 계곡으로 흐르는 물은 창 밖으로 청아한 음악 소리를 내면서 흘러간다. 이와 같이 맑고 시원하고 상쾌한 기운은 본래 이 절이 가진 풍류이지만 지금 이 여러 사람은 그 멋을 고스란히 누릴 수 있으니 거기에서 아침 저녁으로 얻는 소득을 이루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126-127p
돌산의 인공 폭포 - 채수
나는 본래 산수를 좋아하여 우리 나라의 명산으로 삼각산, 금강산, 지리산, 팔공산, 가야산, 비슬산, 속리산 등의 절정에 모두 올라가 보았다. 그리고 그 높고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했으며, 거기서 본 하늘과 땅의 광대함을 알았고, 또 천길 만길 솟아 있는 기암괴석들을 보았다. 그뿐만 아니라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란 소나무, 잣나무 들을 보았으며 구름이 둘러싼 사이로 맑은 시내와 깨끗한 바위들, 깊숙한 숲들이 진세의 잡념을 씻어 주고 가슴 속에 품은 생각을 키워 준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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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종남에 별장이 하나 있다. 별장의 남쪽 담 밖의 돌틈에 우물이 솟아올랐는데 물 맛이 좋고 차가웠다. 나는 대청 앞에 못을 파서 그 물을 가둔 뒤로 연꽃을 심고 연못 가운데에 괴이하게 생긴 돌을 쌓아서 산 모양을 만들었다. 다시 그 돌틈 사이사이에 소나무나 화양목 등을 왜소하게 생긴 놈만 골라 심었다. 그런데 담 밖에서 우물이 솟아나는 곳은 땅보다 석 자가 더 높은 곳이어서 그 물을 대통으로 끌어다가 땅에 묻어 내가 만든 돌산 가운데로 솟아나오게 하였다. 그러자 물이 폭포를 이루며 두 개의 계단을 흘러내렸다. 사람들은 담장 밖에서 끌어들인 물인 줄도 모르고 돌산 위에서 펑펑 솟아나는 것을 보며 그 놀랍고 신기함에 감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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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나는 물은 차고 맛있기 때문에 우리 집안과 이웃들이 아침 저녁으로 그것을 마시니 입맛에 맞다고 할 것이고, 괴이한 돌과 소나무, 잣나무 사이로 흘러서 두어 자의 절벽 밑으로 떨어지며 맑은 기운이 푸른 산봉우리에 비쳐 밤낮없이 바라보아도 싫증 나지 않으니 보는 데에도 즐거움을 준다고 할 수 있겠다. 고요한 밤, 잠이 오지 않을 때에 베개를 베고 누워 있으면 쏴아 하고 쏟아지는 폭포 소리가 마치 요란한 관현악기 소리 같아서 귀를 즐겁게 한다.
나의 집은 가난하고 벼슬도 한미하여 좋은 진주나 보배 및 아름다운 색깔 등의 눈을 즐겁게 하는 것도 없고, 기름진 음식으로 입맛을 즐겁게 하는 것도 없으며, 관현악기 같은 악기의 소리로써 귀를 즐겁게 하는 것도 없다. 그러나 다만 이 샘물로 말미암아 앞에서 열거한 세 가지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으니 진실로 담박하면서도 멋이 있다. 세상의 호걸들은 모두들 나의 이 취미를 비웃지만 나는 이것을 좋아하여 이것으로써 저들이 좋아하는 것과 바꾸지 않겠다.
138-140p
요월당 기문 - 주세붕
"꼭 이름을 짓겠다면 누대의 이름은 '빙허루(憑虛樓)'라 하고, 마루의 이름은 '요월당(邀月堂)'이라고 하는 것이 어떻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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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누대나 정자의 이름에 너무 치우친 것을 싫어하여 '만경(萬景)'이라는 이름으로 지은 데가 있기는 하지만 경치를 수로 표시하여 이름 짓는 것은 역시 혼란스럽지 않겠소? 저 달이야 해와 짝이 되어 하늘에 올라올 때에 영기를 토해 내니 만 가지 경치를 다 비추어 주지 않소? 곧 산은 달빛을 받아 더 아름다워지고, 물은 달빛이 비치면 더욱 맑아진다오. 게다가 풀이나 나무, 꽃들은 달빛 속에서 더욱 스산하여지는 것이오. 그러니 달을 미워하는 자는 도둑 뿐이고 달을 사랑하는 자는 이런 것들을 모두 사랑하는 사람이오. 한편 저 달을 사랑하는 데는 깊고 얕은 정도의 차이가 있소. 달빛 어린 풍경을 감상하는 것은 글하는 사람의 사랑이고, 달빛의 의미를 생각하며 그것을 즐기는 것은 군자의 사랑이며, 그 달이 둥글어지고 이지러지는 것을 헤아려 경계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성인의 사랑이라오. 게다가 우리는 이 마루 위에 마주 앉아 주객이 되었으니 우리 역시 사랑하는 방법을 헤아리며 저 달을 맞이하도록 합시다."
192-193p
의로운 거위 - 주세붕
경인년(1530년, 작자 36세) 2월에 큰 누님이 가락리 자택에서 돌아가셨는데 누님 집에는 두 마리의 흰 거위가 있었따. 그 거위는 누님이 돌아가시자 안마당에 들어와서 안방을 들여다보며 마치 슬퍼하기라도 하듯이 애처롭게 울어 댔다. 그 거위가 그 뒤 ㅇ러 달 동안을 이렇게 울부짖으니 온 집안 식구들은 더욱 비통해 했다.
나는 그 당시 막객으로 먼 곳에 있어서 그냥 소문만 들었을 뿐인데 다음 해 봄에 무릉촌의 집이 완성되어 그 두 마리 거위를 그리로 옮겨 왔는데 모두 수컷이었다. 나는 그 당시 쓸쓸하고 심심하기도 한 터였는데 마침 그들을 데려다가 벗을 삼은 것이다. 그들의 것털은 눈같이 깨끗하여 티끌 하나도 묻지 않았었다. 그들의 울음은 무엇인가 서로 의사를 주고받는 것 같았으며 모이를 쪼고 마시는 것도 반드시 함께하였다. 그들은 늘 내 주위를 돌면서 나를 매우 따랐다. 나는 정성을 다해 모이를 주고 돌봐 주었는데 그 해 10월 14일 밤에 한 마리가 죽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거위 둥지를 가 보니 살아 있는 거위가 죽은 놈을 날개로 덮고 애처롭게 울고 있었다. 그 울음 소리가 온 집안으로 펒 가니 보기에도 민망하고 안타까웠다. 얼마쯤 뒤에 마을 소년이 죽은 놈을 갖갔는데 산 거위는 죽은 놈을 찾아 다니기라도 하듯 집안의 아래위로 돌아단ㅆ다. 그 후 10여 일 동안을 그토록 애처로이 울부짖더니 마침내는 목이 쉬어 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거위를 보면서 생각하였다. 저놈은 하찮은 미물인데도 주인에게 그렇게 충성스럽고 벗에게도 저렇게 의로우니 이 얼마나 기이한가? 내가 보기에 이 세상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항 친구를 파는 사람도 많은데 나라에 충성하는 사람은 과연 몇이나 되는가? 아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물건 중에 사람이 가장 귀중한 존재인데 미천한 저 짐승은 군자에게나 있음직한 지조를 갖ㅆ고 가장 신ㄹㅇ스럽다는 인간이 도리어 저 미천한 것만도 못하단 말인가? 그러니 사람의 옷을 입고 행동은 말이나 소같이 하는 자를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짓믕의 가죽을 썼지만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진 것을 그냥 짐승이라고 천하게 여겨야 할까?
거위야! 거위야! 나는 너를 매우 공경한다. 사람이 되어 나쁜 마음을 가진 자를 너와 같이 독실한 마음으로 돌리고자 하니 그럴 수가 없구나!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이런 까닭으로 여기에 의로운 거위의 일을 기록항 둔다.
195-196p
율곡을 제사하는 글 - 정철
아하! 이런 것을 어찌 속인과 늬논하겠습니까마는 어떤 일에 대하여서도 기쁨이나 분노를 나타내지 않았고, 죽고 사는 것을 개의치 않았으며, 얻는 것이나 잃는 것, ㅇㅇ화와 욕됨을 염두에 두지 않아 바깥의 자극이 마음 속을 움직이지 못하였으니, 이는 모두 타고난 성품 때문이었소. 막힌 것을 터 주고, 민첩하게 주선하며, 일을 당하여 거침없이 해결하는 것은 공이 아니면 누구도 못하는 것이었소. 임금을 어버이처럼 사랑하고 나라를 자기 집처럼 아끼어, 강호에 숨어 살 때나 조정에 벼슬할 때를 막론하고 조금도 변하지 않을 사람이 바로 공이 아니었소? 충성과 선의로써 사람을 대접하고 물질로써 다투지 않으니, 사람들이 모두 공을 군자라고 일컬었소. 공의 덕은 넓고 커서 포용하지 않는 것이 없어, 악한 자를 상대할 때에도 말과 얼굴에 불편한 기색을 나타내지 않으니 이는 공의 기개 때문이오.
아하! 조정의 의논이 둘로 나뉘어 끓는 물처럼 소용돌이치고 불처럼 타오르는 때를 당하여, 공은 그것을 조절하는 데 전력을 다하였소. 차라리 자기가 한 말을 여러 번 바꾸는 한이 있어소 선비들의 소망을 잃게 한다든가 국사를 망치려고 하지 않았으니 그 뜻한 바가 참으로 가상하오이다. 그러나 마침내는 이 때문에 참소를 입어 불측한 지경까지 빠졌다가 임금의 총명에 힘입어 벼슬길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었소. 바야흐로 임금의 은총을 융숭하게 입어 큰 발자국을 내디딜고 하는 즈믕메 갑자기 대들보가 무너져 버렸소이다. 공의 생전에 나는 공에게 디개하는 바 컸었는데, 지금 이렇게 돌아가시니 너무나 중요한 것을 빼앗긴 것 같소이다.
222-223p
침류대기 - 이수광
정업원동은 창덕궁의 서쪽에 있는데 숲과 골짜기가 깊숙한데다가 그 골짜기로부터 시냇물이 흘러낼와서 저절로 서늘하고 아름다운 운치가 있었다.
나는 일찍이 실록국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조석으로 이곳을 통과하게 되었다. 그러나 늘 직책에만 얽매이다 보니, 한 번도 조용히 찾아볼 수 없어서 오로지 한탄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유희경 군을 따라 금천교에 올라갔다가 그 달이 아래로 시냇물이 흐르고, 그 시냇물 위로 무수히 떨어진 꽃잎들이 떠내려오는 것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다.
"아마 무릉도원이 여기서 멀지 않나 보군. 이 물을 따라 올라가면 만리장성의 노역을 면하기 위하여 피난 왔다가 수백 년 동안 죽지도 않고 살아 있다는 그 진나라 사람도 만나 보겠군."
그러자 유군이 고즈넉이 웃으면 말했다.
"이 물의 상류에 내가 살고 있네. 나는 그곳에 누대를 지어 놓았는데 마침 복숭아꽃이 활짝 피었다네. 어젯밤에 비바람이 몹시 불더니 아마 오늘 그 꽃잎들이 많이 떨어졌나 보군. 공이 만일 가 보겠다면 내 마땅히 이곳의 주인으로서 기쁘게 맞이하겠네."
나는 기쁜 마음으로 그를 따라갔다. 한 백 발자국 남짓 올라가자 오른쪽에 경치 좋은 곳이 있었따. 그곳이 바로 그가 사는 곳이었다. 흐르는 물이 맑고 찬데, 그 물가에 돌을 쌓아 누대를 지었다. 그 누대의 섬돌은 흐르는 물 위로 한 자 남짓 높게 쌓여 있었따. 그래서 물을 베고 있다는 뜻으로 '침류대' 라는 명칭을 붙인 것인가?
이 누대의 아래위에는 다른 꽃이라고는 없고 오직 복숭아나무 수십 그루가 개울물의 좌우에 늘어서 있어서, 그 나무에서 떨어지는 꽃들이 붉은 비가 되어 물 위로 떠내려갔다. 그리고 이 개울은 한 폭의 비단을 펼쳐 놓은 듯 출렁출렁 춤을 추었다. 옛날 사람이 일컫는 무릉도원이라는 곳도 여기보다 낫지는 않을 듯하다. 당나라 사람 조영이 그의 시에서 "무릉도원 멋을 저잣거리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한 뜻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감탄하여 말하였다.
"옛날 유신이라는 자는 천태산의 도원에 들어가서 신선을 만나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군이 바로 유신 같은 사람이 아닌가? 나는 지금 다행스럽게도 이 신비스러운 경지를 보았으니 무릉도원을 찾아갔던 어부의 느낌이 나와 같았겠지. 내 이 물에 들어가서 이 물로 입을 가신다고 하여 방해될 것이 있겠는가?"
우리는 서로 마주 보며 한바탕 웃은 뒤에 물가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굳이 땅을 베고 눕지 않아도 들려 왔고, 나의 귀는 굳이 씻지 않아도 깨끗해졌다. 속세의 티끌 하나 묻어 있지 않은 곳이라서 온갖 잡념이 가시니, 정신과 기운이 저절로 맑아져서 바람이 불지 않아도 날아갈 듯하였다. 속세를 벗어난 경지가 참으로 이런 것인가? 그리고 또 나는 이곳의 경치를 보고 유군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이 물이 복잡한 도시에 가까이 있는데도 숲속에 깊숙이 숨어 있으니, 마치 옛날 은사가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흐름이 얕고 좁은데도 물이 더럽지 않고 깨끗기만 하니, 이는 마치 훌륭한 사람의 덕성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래서 유군이 스스로 훌륭한 은사와 비교하면서 이 누대를 침류라고 이름 지은 것임을 알겠다. 그리하여 나는 유군에 이렇게 말했다.
314-316p
빠진 이를 아쉬워하며 - 김창흡
무술년(1718년, 숙종 44년) 은 내 나이 예순여섯이 되는 해이다. 앞니 한 개가 까닭 없이 빠져 나가니 입술은 일그러지고 말이 새어 나왔으며 얼굴까지도 한쪽이 비뚤어졌다. 거울을 가져다가 얼굴을 바라보니 마치 딴사람을 보는 것 같아 까닭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가 돌이켜 자세히 생각해 보니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가 생기고 빠지는 동안 많은 절차를 겪는다.
...
하루아침에 이가 빠져 버리고 나니 빠진 이 사이로 물이 새고 밥은 딱딱하여 부서지지 않으며 때로 고기를 씹으려고 하나 마치 독약이라도 먹는 듯 얼굴이 찌푸려진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서 스스로 자신의 체력을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까 하고 근심한다. 그렇지 않아도 쇠약한 몸이 음식을 못 먹고 굶주려야 하니 이것이 민망스러운 바이다. 그렇다고 어떻게 하겠는가? 먹고 마시는 일은 그냥 되어 가는 대로 살기로 하자.
나는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읽지 못한 책이 많으니 이제부터라도 만년의 세월을 보내기 위하여 아침저녁으로 시골 풍경을 바라보며 흥얼흥얼 글이나 낭독하려 한다. 그리하여 깜깜한 길을 촛불 하나로 밝히듯 인생의 근원을 음미하려 하는 바이다. 그래서 책을 펴고 읽기 시작하자 이가 빠져 벌어진 입 사이로 흘러나오는 소리가 마치 깨진 종소리 같아서, 바르고 느린 마디가 분명하지 않고 맑고 흐린 소리가 구분되지 않으며 소리의 높낮이도 분간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낭랑한 목소리를 내려고 하였으나 결국 소리가 말려들어가고 만다. 나는 쓸쓸히 읽던 책을 덮어 버렸다. 그러자 마음은 점점 게을러져 갔다. 인간의 근원을 찾으려는 이 마음을 무엇으로 유지한단 말인가? 이것이 이가 빠지고 난 뒤에 나의 마음을 가장 슬프게 하는 바이다.
그 동안 겪어 온 인생을 돌이켜 생각해 본다. 내가 비록 늙었다고 하나 몸이 가볍고 건강한 것만은 자신해썽ㅆ따. 걸어서 산에 오르거나 말을 타고 며칠 동안 쉬지 않고 천릿길을 가도 다리가 아프다거나 등이 뻣뻣해지는 일이 없어서 내 나이 또래들과 비교해 볼 때에 누구보다 낫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만족해 하였다. 그리하여 노쇠한 것도 잊고 건장하다고 자부하였으며, 어떤 일을 당하여도 겁내지 않고 달려들어 처리하였으며, 마음이 내키면 아무리 먼 길이라도 달려갔다가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곤 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벌여 놓은 일이 너무 많아서 수습할 수 없게 되자 나는 내 몸을 이 시솔 구석에 숨겨서 평생 문 밖에도 나가지 않겠따고 결심하고는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은 마치 버릇처럼 되어서 저녁이면 후회하면서도 아침이면 다시 되풀이하여 일을 벌이곤 하였다. 이는 자신이 할 일에 대해 나이에 따라 표준을 세워 놓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지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면 모두들 놀라고 또 내 처지를 슬퍼할 것이니, 내 아무리 잠시나마 내가 늙었음을 잊으려고 한들 될 수 있는 일이겠는가? 이제부터라도 나는 노인으로서 분수를 지켜야겠따.
옛날 성인들의 예법에 사람이 예순 살이 되면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군대의 일에 종사하지 않으며, 새삼스레 학문과 친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였다. 나는 일찍이 <예기>를 읽었으나 여기에 대한 이론에는 동의하지 않고 함부로 일을 저지르곤 하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 동안 먹었던 마음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조용히 들어앉아서 만년을 맞이해야겠다. 빠진 이가 나의 어리석은 마음을 깨닫게 해준 것이다.
옛날 성리학의 창시작인 주자도 눈이 어두워진 것이 계기가 되어 마음과 성품을 기르는 데 전념하게 되었으며, 그러게 되자 더 일찍이 눈이 어두워지지 않았음을 한탄하였다. 아마 그것이 바로 이가 빠진 나의 심정일 듯하다. 모양이 일그러졌으니 조용히 들어앉아 분수를 지켜야 하고, 말소리가 새니 함부로 떠들지 말아야 하며 고기를 씹기 어려우니 부드러운 물음식을 먹어야 하며,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지 못하니 그냥 마음 속으로나마 읽어야겠따.
조용히 들어앉아 있으면 정ㅅ니이 안정되고, 말을 함부로 하지 않으면 실수가 적을 것이며, 부드러운 음식만 먹으면 복을 온전히 가질 것이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글을 읽으면 조용한 가운데 인생의 도를 찾을 수 있을 터이니 그것의 편리함이 또한 많지 않은가? 그러니 늙음을 잊고 함부로 행동하는 자는 경망한 자이고, 늙음을 한탄하며 슬퍼하는 자는 속된 사람이다. 경망하지도 않고 속되지도 않으려면 늙음을 편히 여겨야 하는데, 늙음을 편히 여긴다는 것은 마음 내키는 대로 휴식한다는 뜻이다. 그리하여 담담한 마음으로 세상을 살다가 미련없이 죽음을 맞이애햐 할 것이다. 그리고 눈으로 보는 감각의 세계에서 초탈하여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 곧 인생을 즐겁게 하는 일일 것이다.
429-431p
마장전 - 박지원
옛날 병을 앓는 사람이 의원에게 약을 지어 와서 본처인 아내에게 그 약을 달이라고 하였더니, 달여 온 약의 양이 늘 일정하지 않았다. 그는 본처에게 성의가 부족함을 나무란 뒤에 그 약을 첩에게 달이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첩이 달여 오는 약은 그 양이 똑같았다. 그는 매우 고맙게 생각하며 그 첩이 약을 어떻게 달이는지 눈여겨보았다. 첩은 약을 달인 뒤에 약의 양을 살펴보고 그것이 많을 때에는 그 많은 양만큼 쏟아버리고 모자라면 물을 더 보태는 것이었다.
이것으로 보아 귀에 대고 나직나직하게 속삭이는 말은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이고, 새어 나가지 못하게 당부하는 말은 깊이 사귈 수 있는 사람끼리의 교제가 아니다. 그리고 우정이 깊으니 얕으니 하고 떠드는 것은 믿을 수 있는 친구끼리 할 말이 아니다.
44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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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글 백가지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조면희 옮김 | 현암사 | 200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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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ber: 328/4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