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쓴이 :
앤셜리 ≪
현택오빠가 5년 전(맞나?)쯤에 사 준 책.
이 책도 그 당시 다 읽었으나, 이제서야 메모를 올려본다. ㅎㅎ
신갈나무 잎장에서 본 숲 이야기이다.
숲과 나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숲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공부해보려고,
두꺼운 <나무와 숲>이라는 책도 사놓았는데...
아직 시작도 못했다.
얼른 읽어야지!
-----------------------------------------------------------
memo
향기로운 과육으로 유혹하라
여름에서 가을에 이르는 산길은 꽃향기 아닌 과육향기로 익어간다. 가시가 돋은 잎사귀 사이로 산딸기의 깨알같이 붉은 열매가 팽팽하게 부풀어 있다. 손으로 살짝 떼어내 입으로 가져가면 입 안은 금방 향기롭고 달콤함으로 가득 찬다. 산 속 조금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작은 포도송이같이 생긴 산뽕나무의 오디가 가는 길을 붙잡고, 산앵두나무의 그 앙증맞은 열매는 먹기에도 아깝다. 가을쯤으로 익어가면 머루의 푸른 열매가 단향을 내뿜고 숨어 있으며 보리수나무의 붉은 열매는 보기에도 시금털털하다.
벌거숭이 나무들에서 이처럼 향기롭고 단물이 나는 열매들이 만들어진다는것이 여간 신기하지 않다. 공기와 물과 빛으로 이렇듯 훌륭한 양식을 만들어내는 나무들은 세상의 어떤 마법사보다 뛰어나다.
한결같이 그 보기좋고 맛있는 열매 속에는 씨앗이 품어져 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열매를 먹을 때는 필연적으로 씨앗을 제거하거나 그것도 귀찮을 경우에는 함께 먹어야만 한다. 열매를 먹게 되는 동물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래야 뭔가 형평이 맞는 듯하지 않는가.
46-47p
겨울눈
신갈나무는 겨울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멋진 직조사의 기술만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뛰어난 포장 기술을 보여주기도 한다. 작은 공간을 아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하나도 어긋남이 없이 차곡차곡 포개는 일은 매우 숙련된 기술자만이 할 수 있다.
89p
단풍의 비밀
가을이 시작되면서 기온이 서서히 낮아지게 되면 엽록소들은 파괴되기 시작하지만 비교적 안정적인 카로티노이드는 그대로 잎 속에 남게 되고 또한 안토시아닌이 합성되어 나뭇잎은 아름다운 단풍색으로 변하게 된다. 특히 비가 오지 않아 가뭄이 계속되거나 기온이 갑자기 낮아지는 경우에는 엽록소가 급격히 파괴되기 때문에 나뭇잎은 더욱 선명하고 아름다운 단풍색을 띠게 된다. 그래서 갑자기 기온이 낮아지고 일교차가 심한 때는 단풍의 색이 유난히 아름다운 것이다.
단풍의 색은 카로티노이드와 안토시아닌의 함유율에 따라 노란색 계열과 붉은색 계열로 구분되는데 안토시아닌의 합성이 많을수록 선명한 붉은색을 띠게 된다.
107-108p
나무의 외투
나무의 외투는 가지각색이다. 자작나무는 하얀 신사복을 주로 입으며 플라타너스는 녹색의 얼룩얼룩한 옷을 즐겨 입는다. 여기다 플라타너스는 만니톨이라는 당분까지 첨가하여 비가 오는 날이면 독특한 냄새까지 난다. 한편 모과나무와 배롱나무, 노각나무는 노란색의 아름다운 무늬가 새겨진 옷을 입는다. 소나무는 거북등처럼 갈라진 적갈색의 두툼한 외투를 입고 있다. 굴참나무는 푹신푹신한 코르크 외투를 입고 있고 벚나무는 홍갈색의 얇은 외투를 입고 있다.
...
나무가 살이 찌는 방향은 중심에서부터 바깥쪽으로 살을 붙여가는 것이 아니라 바깥쪽에서부터 안쪽으로 목질조직을 밀어넣는 과정이다. 나무의 살아 있는 형성세포는 나무의 외곽 쪽으로 분열해 나가면서 안쪽으로는 오래된 세포를 쌓아간다. 즉 안으로 갈수록 오래된 세포가 남아 있는 것이다. 안쪽 세포는 생명활동을 도모했던 세포 내용물은 다 내버리고 대신 세포 속을 목질 성분으로 채워가면서 몸을 지탱하는 데 지장이 없도록 단단한 조직으로 만들어간다. 우리가 이용하는 목재가 바로 나무의 이런 속조직이다.
128-129p
대나무의 꽃
꽃을 피우고 싶은 욕망의 최고 절제는 뭐니뭐니해도 대나무이다. 대나무 꽃은 식물 중에서도 매우 특이한 경우다. 꽃 모양이야 대나무가 속한 벼과 식물들과 비슷하나 피고 지는 습성은 매우 위험하다.
기록상 나타난 대나무류의 꽃피는 주기는 짧게는 3년에서 길게는 120년까지이다. 대나무가 꽃을 피울 때는 잎이 나와야 할 잎눈이 꽃눈으로 변하면서 이 꽃눈에서 벼이삭 모양의 꽃이 핀다. 대나무도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벼와 한집안 식물이다.
대나무의 꽃이 필 때는 잎이 나지 않는다. 잎이 나지 않은 대나무는 양분을 만들 수 없으므로 한 번 꽃을 피우고 나면 영양상태가 극도로 나빠져 회복하는 데 10년 이상의 긴 시간이 요구된다. 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비축해 두었던 영양분의 거의 90퍼센트 이상을 꽃을 피우는데 소모한다. 따라서 꽃이 피고 난 대나무는 거의 누렇게 말라죽고 한참을 지난 후에야 땅밑 뿌리로부터 새로운 대나무가 자라기 시작한다. 그래서 대나무의 꽃을 '죽음을 부르는 꽃'이라고 한다. 이 운명적인 별칭을 가진 꽃의 모양은 집안의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아 화려한 꽃잎은 없고 벼나 옥수수처럼 수술과 암술로만 이룽져 있어 비극적인 죽음을 몰고 오는 꽃으로서의 극적인 면이 약화되는 듯하다.
146-147p
잡초
잡초라는 말은 다분히 인간 본위의 발상이다. 나름대로 생의 역사를 가지고 생명을 일구는 '잡초'들로서는 심히 기분이 나쁠 수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잡초라고 통틀어 무시할 것이 아니라 가끔씩 쪼그리고 앉아 이들을 들여다보는 애정과 여유를 가져보는 것도 괜찮을 듯 싶다. 이들은 나름대로 훌륭한 이름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아직 밝혀지지 않은 유전력이나 화학물질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도 있으며 또한 생태계에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이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이 자라나는 잡초가 아니라 단지 사람들이 원하지 않거나 무심한 장소에서 피어나는 소중한 생명들인 것이다.
243-244p
-----------------------------------------------------------
신갈나무 투쟁기 : 새로운 숲의 주인공을 통해 본 식물 이야기
차윤정,전승훈 공저 | 지성사 | 1999년 09월
|
|
number: 329/48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