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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앤셜리 ≪
호시노 미치오라는 일본사진작가가 알래스카에 머물며 느낀 이야기를 적은 에세이이다. 그가 찍은 사진도 글 사이에 간간이 있다.
인간이 자연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할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만드는 책이다.
특히, 쥐가 땅속에 숨겨둔 겨울양식과 말린 생선을 바꾸는 알래스카 할머니 이야기는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쥐와도 물물교환을 하는 할머니라니!추운 곳을 여행하는 것은 딱 질색인데...
이 책을 읽고나니 알래스카의 툰드라 흙냄새를 맡아보고 싶다.
그리고, 호시노 미치오가 쓴 다른 책들도 한번 읽어보고 싶고, 그가 찍었다는 사진들도 한번 모아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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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에스키모가 된 밥 율
어느 날 쉬솔릭 근처 산에서 곰과 마주쳤어.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 이 근방에서
곰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총을 쏘았어. 처음 잡은 곰이었어. 한창 젊었던 나는 자랑스러운 기분으로 날아갈 것만 같았어. 머리부터 꼬리끝까지 다 생활에 이용하는 거야. 아무런 의문도 없었어.날이 저물기에 그날은 가죽만 벗겨서 둘러메고 캐리가 기다리는 캠프로 돌아왔지.
그리고 다음날, 그 자리로 고기를 가지러 갔어. 그런데 놀랍게도 바로 그 자리에서 또 곰을 만났지 뭔가. 당황했지. 고기는 벌써 충분했어. 예전에 쉬솔릭에서는 한 번에 곰 세마리를 사냥한 에스키모 이야기가 유명했었지. 나에게도 그런 기회가 온 거야. 하지만 그건 내가 믿어온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 아닌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방아쇠를 당기고 있더군. 총알은 급소를 벗어나고 곰은 숲속으로 도망쳤어. 핏자국이 덤불 속으로 죽 이어져 있더군.문득 주위를 둘러보니 저쪽 언덕 위에도 곰 한 마리가 있는게 아닌가. 믿어지지가
않더군. 아무 생각 없이 마구 방아쇠를 당겼지.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혼란에 빠졌어. 어느새 날이 저물어버렸어.이틑날 아침, 같은 자리에 가 보니 다친 곰이 다리를 끌면서 산을 올라가더니 금방
시야에서 사라지더군.그 일을 잊을 수가 없어. 어릴 적 따뜻한 가정을 모르던 나에게 늘 평화를 주었던
자연을 내가 배반한 거야. 알코올에서 헤어나지 못한 어머니를 생각했어. 나도 결국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내가 믿는 것하고는 딴판으로 인간이란 얼마나 나약한 존재란 말인가, 생각했어...이 대목에서 밥은 목이 멨다. 나는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32-33p
카리부의 여행을 찾아서
6월이 되었다. 시절은 벌써 백야의 계절. 24시간 쏟아지는 태양은 금세 눈을 녹이고
북극권의 봄은 달음박질로 찾아온다. 베이스캠프 주변의 눈은 다 사라지고 툰드라는 향기로운 흙내를 풍긴다. 마침내 강물이 열리고 반년 동안 잠자고 있던 대지는 천천히 기지개를 켜듯 꿐틀대기 시작한다.카리부의 작은 무리는 몇 번인가 이 계곡을 지나갔다. 마침내 그 자취도 보이지 않게
되고, 계절은 봄에서 초여름으로 옮겨갔다. 카리부 떼는 어디를 여행하고 있을까. 결국 올해도 만나기는 틀린 걸까.어느 날 아침. 먼 산비탈을 그리즐리(북미산 큰 회색곰 - 옮긴이) 가 걸어가고
있었다. 들판에서 곰을 만난다는 것. 그것은 어떤 체험일까. 저기 한 마리 곰이 있을 뿐인데도 광대한 풍경은 묘한 긴장감을 띠게 된다.며칠 뒤 툰드라 저쪽에서 검은 이리가 나타났다. 백야의 신비한 분위기 속에서
이리는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아직 점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먼 거리인데도 이릐는 문득 나를 알아차리고 섬광처럼 달려서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지평선으로 사라지는 그 까만 점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내가 감동한 것은 분명 이리 때문이 아니라 그를 둘러싸고 펼쳐진 공간 때문이었다. 그 배후에 있는, 지금까지 이리가 살아온 눈에 보이지 않느 공간, 그래서 풍경은 이리나 곰 한 마리만으로도 하나의 완성된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56p
에필로그
한 에스키모 노파와 툰드라에서 보낸 가을날을 기억하고 있다. 그 노파는 흙을 꼭꼭
디뎌가면서 쥐구멍을 찾고 있었다. 쥐는 겨울에 대비하여 에스키모포테이토라 불리는 새끼손가락만한 뿌리를 저장해 놓는다고 한다. 구멍 하나를 찾아내서 파보자 정말로 한 움큼의 에스키모포테이토가 나왔다. 노파는 그 중에 절반만 꺼내고는, 그 대신 가져온 말린 생선을 넣어 두고 구멍을 다시 흙으로 메웠다. "왜?" 하고 묻는 나를, 노파는 그것도 모르냐는 눈초리로 쳐다보았다.노파의 행동은 많은 것들을 말해준다. 얽히고설킨 생명의 결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
생각해보면 우리도 다르지 않다. 다만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 사회에서 살고 있을 뿐.244p
가까운 자연, 먼 자연
오키나와 땅을 처음 밟으며 받은 인상은 나의 뿌리에 있는 풍경을 만나는 듯한
신비스러운 그리움이었다. 새파란 하늘로 이어지는 좁은 길, 풀숲에서 풍기는 후끈한 열기, 거대한 야자집게, 밤에 길가 덤불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이, 그리고 전에 언젠가 느끼고 있었던 시간의 흐름... 아, 어릴 때 이런 풍경 속에 있었던 적이 있었어. 그것은 언지 데자부 같은 체험이었다.특히 바다의 아름다움에는 숨이 막혔다. 처음 스노쿨링을 하며 바다밑을
들여다보았을 때, 나는 이 남쪽 섬을 앞으로 여러 번 찾게 될 것이라고 화긴했다. 마음속의 일본 지도가 크게 확대되는 느낌이었따.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늘 생각하는 것은, 그 지방의 풍경을 내 것으로 만들려면
거기서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스크린을 바라보는 것과 같아서 풍경은 결코 나와 참된 언어를 나누려 하지 않는다. 그런 여행은, 하면 할수록 세계가 그저 좁아지기만 할 뿐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그를 좋아하게 되면 풍경은 비로소 푹과 깊이를 띠게 된다. 오키나와의 아사토 씨는 나에게 그런 사람이다.아사토 씨를 어떤 말로 소개해야 할까. '오키나와와 잘 어울리는 사람' 이라고 하면
될까. 사람은 저마다 풍경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하는데. 아사토 씨의 모습은 한없이 따뜻한 풍경으로 떠오른다. 바닷바람이 몸에 밴 우민추(오키나와의 이토 만 출신의 어로 노동자를 이르는 오키나와 말. 이들은 어릴 때부터 거의 맨 몸으로 잠수하여 해산물을 채취하는 훈련을 받고 평생 물일로 살아간다.-옮긴이)의 모습은 누구나 금방 반할 만큼 남자답다. 한 지역의 옛이야기는 가타리베(고대에 조정에서 신화나 전설을 말하는 것을 소임으로 하는 사람. - 옮긴이)를 통해서 비로소 생명의 숨결을 얻는다지만, 이는 노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진짜 가타리베는 남 앞에 나서기 좋아하는 재담꾼이 아니라 그저 가만가만 이야기를 꺼내고야 마는 사람일 것이다. 내향적인 아사토 씨의 노래는 그래서 더욱 마음을 파고드는지도 모른다. 한나절을 바닷물과 희롱하다가 선선한 저녁시간에 기분 좋게 지친 몸으로 아사토 씨의 야에야마 민요를 들으면서, '아아, 내가 지금 오키나와에 있구나.' 하고 생각하곤 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두 개의 소중한 자연을 가지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가까운
자연, 그리고 좀처럼 갈 수 없는 먼 자연이다. 먼 자연은 비록 가볼 수는 없지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것이다. 거기에 그런 자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무엇인가를 상상할 수 있고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알래스카에서 사는 나에게는 오키나와가 바로 그런 세계다. 그리고 그곳에는 늘 볕에 그을린 아사토 씨가 바닷바람을 가르며서 있다.261-262p, 264p
해설
결과가 처음 의도대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거기서 보낸 시간은 분명히 존재한다. 결국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거기서 보낸 다시없이 소중한 그 시간이다.뺨을 어루만지는 북극 바람의 감촉, 여름철 툰드라의 달콤한 냄새. 백야의 희뿌연 빛
못보고 지나칠 뻔한 작은 물망초...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 풍경에 마음을 족므 얹어서 오감의 기억 속에 남겨놓고 싶다. 아무것도 낳지 않은 채 그냥 흘러가는 시간을 소중하게 누리고 싶다. 경황없는 세상의 삶과 평행을 이루며 또 하나의 시간이 흐르고 있는 것을 마음 어디에선가 항상 느끼면서 살고 싶다.그런 것들을 언젠가 내 아들에게 전해줄 수 있을까.
<여행하는 나무 - 물망초>
257p
옮긴이 글
호시노의 친구가 남긴 글을 빌려 끝을 맺도록 하자.
그는 이제 없다. 우리는 이 사실에 익숙해져야 한다. 남아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일은 그의 사진을 보는 것. 글을 읽는 것. 그의 생각을 더 깊이 아는 것. 그의 됨됨이를 잊지 않는 것. 그것뿐이다.2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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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글,사진/이규원 역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0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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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ber: 368/483
